그날은 나도 같이 아침공양올 했다. 밥올 받아 정좌하고 스님의 원력 앞에 앉으니 이대로 그냥 출가해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든든환 스숭의 품과 도닦는 자리,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랬더니 내 앞에 금강역사가 양쪽에 딱 보위하고 서는 것이었다. 이대로 여기서… 그러다가 아니지, 결혼도 해야 되겠고 다른 할일도 생각나고…. 그러는데 스님이 갑자기 “불퇴전 !”하고 한 제
자의 법명올 불렀다. “예”하니까 “불퇴전의 뭇이 무엇고?” “불전에 나아 간다는…” 그러자 스님은 크게 꾸짖어 말씀하셨다. “그게 아니고, 다시는 뒤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란 말이다!”
바로 나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불퇴전 ! ’ 바로 그 자리에서 돌아서지 말아야 하는데…나는 알량한 생각으로 천겁을 놓친 것이었다.
그 후로도 향상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여러 가지 화두들을 생각하면서 생활했다. 풀린 듯하다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매력있는 것이 스님의 화두 ‘눈올 껌뻑껌뻑하는 이놈’이었다. 스님이 필시 이것을 풀고 견성했으리라. 이것 하나만 풀면 이 인생에 보}l 한 건하는 것인데 !
나는 고등학교 선생을 하면서도 눈을 껌뻑껌뻑하고 앉아 있는 수많은 아이들올 보면 이렇게 묻곤했다.
“이 눈을 껌벅껌뻑하는 아이들아 너그들은 어디서 와서 이렇게 앉아 있냐. 이 주인공들아! 응?” 그러면 아이들은 그저 눈만 껌뻑껌뻑하고 쳐보았다. 그리고 틈틈이 경전들을 들여다 보았다. 그 말씀들이 너무나 삶에 도움이 되었다. 물론 성경도 원고 교회도 가보았다.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봄을 기다리던 학교생활이 끝나고 나는 회사에 취직했다가 한겨레신문사에서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나의 닦은 작은 재주가 사회를 위해서 쓸 수 었다는것이 매우 보람스러웠다. 그래서 그림 덕분에 여러 스님들도 알게 되었다. 명진, 보천, 일선, 오성… 스님들과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맑기 때문이다. 이미 욕망의 길을 버리고 도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마음 든든하고 존경스렵다.
그림을 그리다보니까 별것 아닌 사랍도 좋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최근에 그림 때문에 만난 일선이란 젊은 스님에게서 다시 그 ‘눈을 껌뻑껌뻑 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그 나, 그 자리’ 에 대해 이야길 들었다. 그때 그것이 풀리는 것 같았다. 매우 기했다. 바로 그건데 말이다! 스님이 가고나자 나중앤 다시 혼돈스러워지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소중한 인식이었다.
나같이 생활 속에서 이따금 불경의 말씀을 생각해 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의 주제를 놓치지 않고, 어제보다 나아지는 오늘을 보는 것이 즐겁다. 하물며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나는 가끔 스님네들이 ‘한소식’한다는 말을 들었다. 마치 광맥을 찾는 사람들이 노다지를 캔 것을 얘기하듯. 그러나 그것은 전문가만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야 하는, 그런 소식이 아닐까. 불교로 보면 그 한소식이란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법과 네 가지 진리와 여닮 가지 바른 길, 우주의 성품이 본래 평등원만함, 그리고 내가 우주를 경영하고 완성해가는 주인공 바로 그 자라는 사실이 아닐까.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만큼의 소식이다.
2 소귀에 경읽기
나는 아마추어이지만 불교를 사랑한다. 그러면서 늘 아쉬운 것이 있다.
몇 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다. 상가집은 대개 그렇듯 염불 녹음을 틀어놓았다. 그런데 거의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사람들은 그냥 제례에 쓰이는 음악 처럼, 또는 내용을 모르는 팝송을 듣듯이 듣고 있었다.
그야말로 소 귀에 경읽지였다. 공덕중에 가장 큰 공덕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공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나 알아들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산중절에서도 때로 큰 소리로 녹음된 염불소리를 튼다. 확실히 염불은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효고}는 있다. 그러나 아는사랍은 알아듣는지 몰라도 우리 귀엔 외국말이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셰 계실 때------.” 그러면 얼마나 쉽고 좋올까. 회심곡 같은 것이 와 닿지 않은가.
그리고 절 기둥에 붙어 있는 한문글귀도 마찬가지다.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깨달음의 실마리론 줄 수 있는 귀중한 말씀들일텐데 대개는 알 수가 없다. 그건 결코 오늘월 사는 대중이 무식해서가 아니다. 만약 쉬운 한글로 풀어 적혀 있다면 절에 오가는 일반대중들이, 아이나 어른이나, 그 글귀를 보고 한번씩 되뇌어보며 의미를 새겨볼 것이다. 그리고 언챈가 그 뜻을 알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 그것이 불교가 대중화되는 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아마도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렇게 내려오니까 그렇게 계속 쓰는것이 아닐까.
또 한가지는 스님들이 한문올 통해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한문올 써야 그 ‘맛’이 온다는 것인데 그건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원래 불법이 인도 말로 되었을텐데 그러면 인도말이라야 그 맛이 제대로 올 것이 아닌가.
한글로 옮기기 어려운 것은 그대로 두더라도 가능한 한 전리가 단절되고 특권화되지 않게 하는 노력이 있었으면 한다. 아마도 젊은 스님들 중에는 그런 의식을 가진 분이 많으리라.
다 알고 있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기대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