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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련대회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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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 조성렬 1987년 07월 65호
지난 5월 중순의 일이다. 청주시에 있는 풍주사(風住寺)에서 대불련 충북지부와 공주지부의 연합 수련회가 있어 강사로 참석한 일이 있다. 수련회가 시작되기 전 주지스님께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주지스님께서 조용히 몇 명을 부르셨다. 우리는 대학생 수련회라 혹시나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봐 염려가 되어 부르시는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주지스님의 말씀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이번 수련회에서는 제발 1080배나 3000배 또는 철야정진 따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다. 주지스님이 여러차례 이곳에서 치루는 수련회를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1080배나 3000배 그리고 철야정진 등을 하는데, 이것은 몇몇 사람에게는 몰라도 대부분의 수련회 참가자에게는 신심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씀이었다.
매년 여름이 되면 방학을 이용하여 여러 종류의 수련회가 열린다. 우리 불교 집안에서도 여름 불교학교나 여름 수련대회가 이제 정착 단계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초-중-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은 채 부처님의 정법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귀중한 시간을 수련회에 쏟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귀중한 수련회가 잘못되거나 타성에 젖은 프로그램으로 말미암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수련대회의 목적을 “잠시나마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출가자의 생활을 함께 해 본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뜻밖에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수십명, 수백명이 참가하는 수련대회의 목적으로는 걸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련대회가 며철 동안의 행사 자체만으로 끝나서는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다. 우리는 수련대회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이것을 동력으로 삼아 현실의 제반 모순들을 스스로 해결해갈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할 것이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수련대회는 뚜렷한 목적을 세워 그것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비해야 한다.
수련대회는 무엇보다도 신앙심의 고취를 첫째가는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신양심이야말로 불교 수행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신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개개인의 개별적인 신앙심을 고취하자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는 다름아닌 공동의 신앙 체험에 그 목적을 둔다. 우리가 희구하는 불국정토의 건설은 개개인의 업장(個業)을 제거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잘못과 사회구조적 모순(共業)을 제거함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적인 신앙의 힘이 아니라 공동의 신앙만이 공업의 업장을 깰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수련대회에서 공동의 신앙 체험을 가지려면 프로그램 개발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즈음에 들어 레크레이션의 방법이 많이 보급되어 있긴 하지만 불교적인 공동 신앙 체험을 하기에는 걸맞지 않다. 그런데 요즘 몇년 동안 청소년 수련대회에 가보면 레크레이션만 있고 공동 신앙 체험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불련에서는 그 동안 공동 신앙 프로그램의 개발을 놓고 많은 고심을 해왔다. 요즈음 대학생들은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그렇다고 개인적인 참선이나 기도로 대학생들의 신앙심을 북돋을 수도 없는 일이다. 대불련수련대회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으로 대동(大同)놀이(공동체 놀이)라는 게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참가자들의 공동체 의식을 향상시키는 데는 매우 유용하지만, 공동적인 신앙 체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불련에서 최근 수련대회에서 시도해 본 신앙 프로그램으로는 ‘사경법회(寫經法會)’, ‘기도의 시간’, ‘다짐의 시간’과 같은 것이 있다.
‘사경법회’ 란 경(經)을 한 자씩 또는 한 귀절씩 베껴쓰고 글자 수에 맞춰 절을 하는 것이다. 대불련에서는 작년 금산사(金山寺)여름 수련대회에서 처음으로 채택했는데, 이른바 의식이 있든 없든, 모든 참가 대학생들이 공감하고 많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기도의 시간’은 경전 내용을 중심으로 하며 대화체로 엮어진 기도문을 지도 법사와 수련생이 서로 화답(和答)하듯 읽어가면서, 부처님께 함께 기도하고, 또 함께 108참회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는 마지막에 촛불 의식도 함께 곁들여지는데,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의 어둠을 밝히듯이 수련생 모두가 온 세계에 드리워진 고(苦)의 어둠을 사르고 부처님의 광명으로 가득찬 불국정토를 건설하겠다는 서원으로 끝맺는다. 이 프로그램은 기도, 참회, 발원 등 여러 가지 신앙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아침예불이 끝난 바로 뒤에 함께 모여 갖는 ‘다짐의 시간’ 프로그램은, 모두 좌선한 상태에서 목탁 염불이나 민속 가락을 배경음으로 하면서 출가의 정신, 대학생 불자의 민족사적 사명, 참회와 결단 등의 내용을 담은 대사를 육성으로 원음으로써, 전체 수련생에게 신앙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수련대회가 끝날 때는 ‘포살법회’를 갖는다. 이것은 분과별로 공동 생활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布薩)하고, 타인의 잘못을 경책(自恣)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는 보살계본을 공동 생활의 규범으로서 현대 사회에 맞게 구성함으로써 신앙을 생활화시킬 수 있다. 포살법회는 지난해 대불련 여름 수련대회에서 처음 시도했었는데 매우 반응이 좋았던 편이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각종 수련대회나 연수회뿐만 아니라 본부 임원들 사이에서도 월례 포살법회를 갖고 있다.
우리 불교 수련회에서는 앞으로 더욱 많은 공통 신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여, 수련대회를 통해 많은 불자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불교 수련대회에서는 공동의 신앙 체험을 할 수 있는 신앙 프로그램말고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올바른 불교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교양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는 많은 불교 수련회가 교리 강좌에만 치우쳐 왔다. 또 일반 법회에서도 스님이나 법사님들의 설법이 “백척간두에서도 진일보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생생한 법문이 아니라, 단순한 교리 해설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수련대회에서도 경전 강독과 해설, 기초 교리 강좌 따위로 때운다면(?), 어디에서 부처님의 살아 있는 법음(法音)을 들을 수 있을까?
수련회의 교양 프로그램은 살아 있어야 한다. 참여하는 수련생들의 근기(根氣)에 맞는 현실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부처님이 이땅에 육신으로 다시 오신다면, 대중들에게 2500여년 전 고대 인도의 이야기만을 전하시겠는가? 또 중생의 삶과 관계없는 공리공론만을 설하시겠는가? 부처님의 법문은 항상 구체적인 중생들의 삶에서 시작하여서 그 해답을 중생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셨다. 부처님이 여기 계시다면, 이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 속으로 물어와서, 그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시면서 그들이 겪고 있는 고(苦)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들의 고(苦)를 스스로 극복해서 불국정토를 건설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실 것이다.
불교 수련대회를 위한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지식이나 철학적 사변으로만 흐르기 쉬운 내용은 피해야 한다. 우리 중생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현실 문제에 대한 원인 분석과 그 해결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성제(四聖諸 ; 苦의 현상, 원인, 목표, 방법)의 실천이 아닌가. 이를테면, 최근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고문 수사 등 인권문제’ 리든지, ‘공해 문제’, ‘빈부 격차의 문제’ 또 ‘독재 정치’ 등에 대한불교의 견해는 어떠하며 이에 대한 불교적 처방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중생이 안고 있는 현실 문제에 대한 불교적인 분석과 해결 방안에 대한 제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수련생들 이 자리적(自利的)인 신앙 생활로 상구보리(上求菩提)만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利他的)인 실천 인식으로 하화중생(下化衆生)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하여야만 자기(自己)와 이타(利他)가 둘이 아니며,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둘이 아님을 깨달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수련대회 프로그램 중에서 문화 프로그램을 가벼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수련대회의 문화 프로그램은 신앙 체험과 불교 교양을 원활히 쌓을 수 있는 밑바탕으로서의 기본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줄 수 있다. 문화 프로그램은 수련생들이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모든 편차를 떠나 문회적으로 일체감을 갖게 함으로써 다른 신앙 및 교양 프로그램의 진행에 큰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 프로그램이 “웃고 즐기다보니 어느새 수련회가 끝났다”는 식의 레크레이션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수련의 목적을 상실한 결과 밖에 안 된다.
문화 프로그램은 한국 문화 속에 뿌리박은 불교 문화를 오늘날에 되살리려는 노력 속에서 편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 서구의 상업주의 문화에 찌들어 있는 우리에게서 우리의 전통 문화를 되살리고 아울러 불교 문화를 이땅에 다시 정착시켜야 한다. 이것은 문화 프로그램이 단순히 다른 프로그램의 진행을 돕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뿐 아니라 민족 문화를 계승, 발전시킨다는 커다란 의미를 더불어 가져야 함을 말한다. 올해에도 많은 불교 단체나 사찰에서 여름 수련대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이들 불교 수련대회가 단순한 연례 행사로 끝나지 말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을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민족의 장래를 젊어질 수 있는 동량으로 기를 수 있는 진지한 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불교를 살리고 우리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