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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의 효행을 오늘에 되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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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진명1 2001년 12월 238호
백령도는 남한 최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 인천에서 222.2㎞, 뱃길로는 324㎞이며 장산곶에서는 15㎞ 떨어져 있다.
이 곳 백령도에서 8㎞ 떨어진 곳에는 천하 효녀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뱃사람에게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아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인당수(혹은 임당수)가 자리하고 있어 찾는 이의 마음을 숙연케 하고 있다. 북쪽으로 펼쳐진 멀지 않은 바다 건너 저편에는 장산곶이 한눈에 바라보여 우리 칠천만 민족의 아픔인 분단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이곳은 남과 북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안보상의 전략 요충지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 민족은 요즘처럼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나는 명절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가족과 이웃이 정겹게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전승하며 한민족의 고유한 민족문화를 꽃피우며 살아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에 무분별하게 스며든 서구문화의 물결에 휘말려 가치관의 혼돈과 함께 문명의 이기 속에 물질이 우선시 되고 선의와 인정을 등지는 황폐한 사회현실을 맞게 되었다. 이제는 위기감의 선을 넘어 절망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이 곳 백령도는 한민족의 정서 속에 살아 있는 효행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심청전》의 배경이 되는 곳이며 그에 따르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는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하여 공양미 삼백석에 꽃다운 목숨을 던진 효행의 실천은 어떠한 사전적 지식이나 종교적 이해로써는 설명될 수 없는 숭고한 인정과 덕성의 발로이며 더불어 지금의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내온 한겨레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위대한 민족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중한 민족의 영지 백령도에서 그 옛날 심청의 효행 사상을 불어넣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던 사세寺勢는 이제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가 힘들다. 불교의 무관심 속에서 근대 외세의 물결과 함께 들어온 기독교의 교세는 나날이 성장하는 추세로 교회가 12곳이나 된다.(성당도 2곳이다.) 이에 반해 불교의 사찰건립이나 그에 상응하는 포교상황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백령도에는 현재 사찰은 없고 군 포교당이 1개뿐인 불교 불모지이다. 주민전체가 거의 기독교도인 관계로 주민정서가 타종교를 매우 배척하고 있으며 또 실력행사를 통하여 불교포교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1995년 옹진군에서 심청각을 건립하였다. 건립과정에서 백령기독교 목사연합회의 주도하에 심청각 건립이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며 효를 가르치기보다는 샤머니즘문화를 정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하여 건립반대 탄원을 옹진군청을 비롯한 관계기관에 보내는 등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1999년 5월 8일 태고종 인천종무원장 정대은 스님의 주관으로 효녀 심청의 뜻을 기리기 위한 연등축제가 열렸는데 목사 아들인 면장이 심청각에 설치한 연등을 무단으로 철거하였고 또한 연등을 밝히지 못하도록 전력공급을 끊는 행태를 보였다.
그리고 매년 X-마스 때는 트리 점등식이 군부대 안 시설물에서 있어 왔다. 군 포교당에서 트리 점등자리에 4·8 연등 점등행사를 하려는데 목사의 주도하에 주민들이 극구 반대를 하였다. 그 바람에 군부대장이 군부대 안 시설물에 대하여 기독교나 불교 모두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바 있다. 또 일설에 의하면 10여 년 전 중화동 옛 폐사지(주민들이나 학자들은 심청전에 등장하는 ‘몽운사’라고 주장함)에서 불상이 발견되었으나 행방이 묘연하다고 전하고 있다. 몽운사 터로 추정되는 지역은 주민 식수용 댐공사지로 확정되어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절터는 곧 댐에 수장되어질 상황이다. 이는 이천 년의 역사를 민족과 함께 해온 불교적 정서로 볼 때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이 개선되어지는 길은 불사에 있다고 생각하고, 불교가 가지는 민족성의 전승과 인간상의 발현만이 효녀 심청의 뜻을 기리고 한민족의 민족정서를 향상 보전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백령도에 ‘효행수련도량’을 건립하자는 서원을 세운 것이다.
군 포교 목적으로 1981년 창건된 흑룡사는 조계종단 등 외부지원이 전혀 없는 이려운 상황에서도 포교에 전념하여 현재 지역주민 17가구와 군인장교 불자 해군 2가구 공군 6가구 해병 7가구 등과 함께 군장병 다수가 정기법회에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군법당은 군법사의 부임지 임기가 1∼2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역주민 포교와 《심청전》의 배경이 되는 백령도에 불교를 알리는 데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 그리고 가정파괴가 극심하고 효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는 현대사회에 심청의 효행은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으므로 백령도에 《심청전》과 연계된 사찰건립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하겠다.
백령도는 남북 냉전시대에는 안보 전략상 가장 첨예한 대립 속에 직접 교전도 일어나는 삭막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현재 우여곡절이 있고 좀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남북간 협력과 화해의 시대를 맞이하여 동해에서는 뱃길로 금강산을 관광하고 직항로로 인적 교류가 이어지고 있으며 육로에서는 철로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제 곧 서해 뱃길이 열린다면 서해 항로의 전진기지인 백령도에 남북한 겨레의 온갖 이념과 정서를 아우르는 효행수련도량을 건립한다면 오랫동안 이질화된 배경 속에서 살아온 분단 민족이 하나됨을 절감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결정적이고 획기적인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백령도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불교적, 역사적, 문화적, 지역적 의미와 민족문화의 근본인 효의 문화를 되살리고자 하는 염원은 비단 불교도뿐만이 아니라 민족의 숙원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우리 민족이 반드시 이룩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기도 하다.
재차 강조하거니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심청의 효행사상에 대하여 모든 불교도들은 불사를 꼭 성취시켜야 한다는 서원의 마음으로 책임과 인식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이에 사찰이 전무한 백령도에 전통 문화의 발굴계승, 남북협력 화해시대의 한민족 동질성 회복 그리고 효의 가치관 확립을 위한 효행수련도량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심청의 효행이 살아있는 백령도는 불교도에게는 숙명적 성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