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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닦지. 웬 갓김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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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관문 2001년 12월 238호
여수시 돌산읍 천왕산 아래 위치한 은적사는 고려 말(1192) 보조 국사께서 창건한 사찰입니다.
당시 보조 국사께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여수시 남면 금오도의 송광사와 순천 송광사를 왕래할 때에 잠시 쉬어가는 처소로 은적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특징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군락이 은적사의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바깥에서는 절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문자 그대로 은적사입니다.극락전 뒤의 석벽은 병풍과 같고 새소리와 물소리는 세속의 시름을 덜어 줍니다.
제가 이 곳 은적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작년 4월입니다. 30여 년 동안 주석하셨던 노스님의 열반으로 인하여 이 곳에 와보니 너무 조용하고 아늑하여 그 동안 헐떡거린 마음을 잠시 쉰다는 게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처음 왔을 때 낡고 퇴락한 법당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고, 노스님의 오랜 병환으로 그나마 몇 안 되는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초하루 법회 때는 노보살님 2∼3명이 법당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기도와 법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찰 아래에 놀고 있는 밭에 녹차밭을 약 1500평 조성하였습니다. 그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와 기도의 가피력으로 작년말 극락전 불사를 시작하여 올 3월 보름날 극락전 낙성식과 삼존불 점안식을 성황리에 회향할 수 있었습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법회 때는 50∼60명 정도의 신도님과 함께 기도와 부처님의 말씀을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그리고 모든 공덕을 신도님들께 회향합니다.
그 동안 신도회 자체가 없는 사찰에서 모든 일을 해나가는데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신도들이 더욱 화합과 또 부처님의 말씀을 이웃과 같이 하며, 참다운 수행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화두가 항상 저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산하면 갓김치가 생각나고 또 사찰 아래에 계시는 보살님들의 손맛과 어울린다면 아주 맛있는 갓김치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무조건 밭에 갓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하니 처음에는 인정 많은 노보살님이 동참을 하고 나중에는 스님의 취지에 뜻을 같이한 젊은 보살님들도 함께 하면서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저절로 차려진 겁니다.
다행히도 갓은 잘 자라 주었고 올 가을에는 상당량의 수확을 하였습니다. 수확을 해놓고 보니 판로가 문제되었습니다. 일단 불교신문에 광고를 내고, 그 동안 자율적으로 만들어진 신도회에서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김치를 정성들여 담갔습니다. 사찰에서 고추장이나 된장은 가끔 판매되는 걸로 아는데 갓김치는 처음이라 망설였는데 한 분 두 분 주문이 들어오더군요.
신도님들은 정성들여서 담그고 또 사찰에서 오신채를 드시지 않는 스님네를 위하여 특별히 고안한 갓김치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제가 ‘갓김치 장사한다’고 하니 혹 어떤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스님이 도나 닦지 웬 갓김치야. 망상 그만 피우시죠.”라고. 저 역시 그동안 제방선원을 구름같이 다니면서 풀 먹인 무명옷처럼 화두 하나 챙기면서 올곧게 중노릇을 해왔습니다.
혹시나 흐트러진 스님네를 보면 호통을 치면서 본분사를 운운하며 스스로를 가다듬었습니다. 처음 이곳 은적사에서 참선법회도 열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참석률이 너무 낮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말씀을 보다 쉽게 전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부처님의 전도선언이 떠 오르더군요.
“자! 길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문제는 아주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은적사에서 일년에 두 차례씩 방생법회를 다녀옵니다. 최소한의 경비를 빼고 나머지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좀더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또 이 곳은 시골이다 보니까 주위를 둘러보면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등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능하면 꾸준히 갓김치를 팔아 이러한 일들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갈 생각입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가지의 실천이 중요하겠지요. 더러는 이러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불우이웃 돕는데 굳이 갓김치 장사인가’라구요. 백장 스님 청규에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루 일하지 아니하면 하루 먹지 아니한다는 뜻이지요. 저 자신이 농촌출신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농사 짓는 게 좋습니다. 또 스님이 농사 지어 좋은 일 한다고 하니까 신도님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화합도 되고, 모두가 맛있는 갓김치를 드실 수가 있고, 또 그 돈으로 불우이웃도 도울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습니까?잠!
깐 다른 이야기 하나 할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연과 조연이 나오죠. 서울이나 도심지에서 열심히 포교하시는 스님네들은 주연이시고 시골구석에서 노보살님들과 함께 밭을 매는 저는 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편의 영화가 잘 되려면 주연과 조연이 골고루 제 역할을 다할 때에 비로소 멋진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번잡함을 싫어하면서 왜 이러한 일을 하는가, 스스로 반문도 해보지만, 스스로를 태워서 주위를 밝히는 촛불과도 같이 나 자신이 조금 고생하여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자신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의 한복판에서 포교하시는 스님들께 경의를 표하면서 우리 은적사와 자매결연 맺을 것을 건의합니다.
제가 한 때 서울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수행한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한 모금의 맑은 물, 맑은 공기, 조용한 기운 등이 그립지요. 이 곳 은적사는 요즈음 사찰들이 관광화, 대형화, 기업화로 치닫는 때에 그야말로 저절로 마음이 쉬어지는 그런 곳입니다. 서로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년 겨울에 청국장, 고추장, 된장을 만들어 인연 있는 분들께 보시하였는데 너무 맛있다고 하여 올해에는 더 많이 만들까 합니다. 제가 직접 장작불을 때서 절구질하여 만든 그야말로 전통 식품이지요.
불법문중佛法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란 말이 있지요. 부처님 법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말이지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좋은 일만 있으십시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