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수행자의 마음쓰는 법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선수 2001년 12월 238호
불가 수행은 아상我相을 극복하여 조화를 꾀함이며 꼭 필요한 것만 행하는 것이다. 본 마음은 모두 같으며 평상심으로 살아도 걸림없이 편안한 바를 얻고자 함이다. 고집 없이 융통성 있게 남의 필요한 것을 채워 주든 또 적절한 바를 해 주고 답답함을 덜어 주든 ‘나’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전체가 원만하도록, 별난 것 아닌 있는 그대로가 전체로 여여如如한 나날의 살림살이가 곧 절이 된다. 바른 법은 항상 번영과 융성만은 아니며 지고 쇠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섭수攝受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중생의 마음이 본디 종자 없는 번뇌망상의 허깨비에 스스로 자연스러움을 잃고 욕심에 얽매인 바 이를 보다 순리에 어울리도록 마음을 추스려 나간다. 비록 못나도 스스로를 낮춰 전체 속에서 일가一家를 이루고 서로 알고 믿어 참된 길을 가는 도반道伴으로 변치 않는다. 생명의 참모습을 깨닫고 업業의 드러남 속에 막힌 바가 툭 트이어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스스로가 되어 무생無生의 불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불교의 진리는 중도中道이니 평상한 마음이 곧 도道이고 서로 아끼고 나름대로 맞는 것에서 벗어나 말을 떠난 실상實相에 합하여 어느 경계에도 마!
음 빼앗김 없이 법法에 대한 집착마저 여읜다. 자신보다 높음을 용납하고 낮음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 마음 속 희로애락을 각축脚逐하면서 평생 중생심에서 벗어나고자 수행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삶으로 삼는다. 누구든 다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쓰일 수 있고 무심으로 안과 밖이 다르지 않게 하여 생각 일어나기 전의 자리에 귀합한다.
마음 안 번뇌망상에 끄달리지 않고 삶과 죽음은 얼음과 꿈의 이치에 비유되기도 하듯, 다른 것이 아니라면 순리에 맞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쉴 줄 알아야 한다. 몸과 함께 마음도 건강하기 위해서는 청정한 생활로 재색財色에 마음을 비우고 원만하게 세상 모든 것이 꿈과 같은 것임을 깨우쳐 착着이 소멸된 불자의 길이 바람직한 바, 허공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편안하다. 주관에 떨어지지 말고 주·객관이 통합되도록 보편적 불법을 현양顯揚하여 몽환夢幻과 같은 세상 속에서 부처에게 조차도 얽매이지 말고 무일물無一物의 실상을 증득하여 대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극락 세계는 공업共業 속의 만인이 다 잘되기만을 바라면서 오직 성불의 길만을 가는 수행의 국토國土가 된다. 꿈을 깬 참나는 여여如如하고 어둡지 않으니, 마음 비우고 적절히 살아가면서 긍정할 줄 아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불심은 소중한 것이리라. 스스로에게 사로잡히는 것도 갇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자기 자녀 돌보듯 겉모양새를 떠나 있든 없든 한가지로 마음을 허공처럼 항시 깨끗하게 두는 것이 좋다. 비록 좋아보여도 함부로 따르지 말고 오직 공부에 힘쓰는 마음 하나!
로 생사生死조차 해탈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조용히 마음을 쉴 수 있게 된다. 불교는 대긍정大肯定이므로 어떤 중생이든 부처의 씨앗이 있다. 그래서 마음을 옳게 닦아가는 수행의 길 속에서 성불成佛의 길은 열려 있다. 절 공부의 우선은 진심瞋心없이 모든 것을 섭수攝受하며 나고 죽는 큰일을 마음공부로 원만히 하여 본디 없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위 없는 불법의 도리를 깨우치고 이 세상 어떤 일이든 걸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어느 하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없이 겉모습에 떨어지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몸과 마음을 이겨내면서, 있는 것 모두의 본질을 깨닫고 한 물건도 없는 법계法界의 참된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주고 받음 없이 항상 깨끗한 스스로의 자세를 지킬 수 있는 불자로 남는 것이다. 손익損益을 떠나 항상 봉사하는 우리들로서 세상을 보다 건전하고 아름답게 가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