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대의 서막은 열리고 있다.
금년에 들어와서 세계 정세가 놀라운 변화를 보이더니 마치 그것에 화답이나 하듯, 12월 초에 미·소 강대국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에서 열린 이 회담에서 양국의 지도자들은 냉전 종식을 통하여 화해의 세계로 갈 것을 다짐하였다.
도(道)가 높으면 마(魔)가 성한다는 불가의 말처럼, 아니면 이 날의 역사적인 만남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듯, 날씨마저 폭풍우가 몰아쳐 장소까지 옮겼으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결국 두 차례 다 소련의 초호화 여객선 막심고리키호에서 회동이 이루어졌다.
호인풍의 고르바쵸프 서기장과 관료형의 부시 대통령의 회담 성과를 간추려보면 대략 이러한 것이다.
첫째, 냉전 종식의 선언이다. 45년 2월에 맺은 얄타협정은 동구인 발칸반도의 지배권을 소련에 내줌으로써 유럽을 양분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시아에서 한반도가 분단된 것도 그에 따른 것이니 미·소 양대국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규정지어야 마땅하다.
소련의 개방, 개혁 정책은 대내적으로는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치 곧 민주화를, 대외적으로는 힘의 논리를 완화 내지 포기하겠다는 뜻인데, 이미 사오년 전부터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서 군사적인 지배를 거두고 자유화 바람을 불어넣는 등의 개혁정책을 펴는 데서 나타난다.
그리고 두 정상지도자는 구체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사동맹에서 정치동맹으로 바꾸자는 견해의 일치를 보았으며, 미국이 제안한 화학무기 금지, 소련이 제의한 잠수함 발사 미사일 감축 및 지중해의 해군력 감축 등의 군축협상을 내놓고 있다. 그리하여 늦어도90년 여름 정상회담 때에는 전략무기감축협상을 논의하기로 합의하였다.
둘째, 미·소간의 긴장 완화는 필연적으로 세계 정세의 변화를 가져오며 그것은 새로운 세계질서의 수립을 요하는 크나큰 소용돌이가 아닐 수 없다.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 미·소에 의해 양분된 세계 국가들은, 그들의 자유의사와 관계없이, 양대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상호 적대시하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것이 이른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정치, 경제, 군사에서의 대립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서 화해는 서로 자기의 체제 과시를 중지하고 양쪽 다 존중되어야 한다는 겸손과 반성의 뜻을 담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는 경제적으로 우월하고 사회주의는 정치적으로 우수한 논리인데, 이제까지는 서로가 한쪽만이 몽땅 옳다는 절대주의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래서 생긴 이름이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이다. 전자가 복지국가의 모델인 서유럽 쪽의 정책이라면, 후자는 개혁의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 동유럽 제국의 입장이다. 2l년만에 체코시민 앞에 나선 두브체크는 이미 68년 프라하의 봄 당시에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걸고 소련과 동구 국가들의 금성철벽에 대항했으나 역부족으로 실각하고 만 생생한 경험이 있다.
요컨대 인간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의 이념은, 자본주의에서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경제적인 힘을 근거로 한 자유민주주의의 휴머니즘과 대별되면서도, 산뜻한 매력을 지니고서 꾸준히 싹을 튀우고 성장하면서,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접목하고 고르바쵸프를 만나 개화하며 드디어 동유럽 전체를 강타한 평화의 핵이 된 셈이다. 구태여 허울만 좋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루어보겠다면, 돈이 아니라 인간 윤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본주의는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개혁의 바람이 자유국가가 아닌 공산국가에서 발생한 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역시 경제의 힘이 필요하다. 몰타회담에서 미·소간의 경제협력을 주요 의제로, 주된 관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고르바쵸프는 점증하는 소련과 동유럽 국민들의 경제적 욕구를 종전과 같이 정치 사상, 이념만으로 묶어둘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억압정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한편, 미국은 미국대로 세계 제일의 군사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지나친 군비 확장으로 경제사정이 말이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약소국에게까지 시장개방 압력을 퍼부을까.
미국이 소련에 줄 것은 시장경제원리의 도입, 무역특혜, 미국 기업의 투자 확대 또 소련이 적극적으혹 요청하고 있는 서구의 재정 참여 등이며, 소련이 미국에 줄 것이 있다면 미국 상품의 수입, 시베리아 공동개발, 사회주의의 청결함들이 될 것이다. 미국이 돈올 가졌다면 소련은 신선한 공기를 지녔다고 하는 비유가 어떨까
얄타의 냉전구조에서 몰타의 평화구조로
얄타협정에 의한 냉전구조가 몰타회담의 평화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은 45년 동안의 긴 세월 덕택이다.
물론 양대국의 원수가 두번 회담한 것뿐이며, 문서협정의 조인식을 갖는 따위의 구체적인 사후처리 없이 다만 협력을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회담이야말로 냉전구조를 확실히 종식시키고 새시대 개막을 알리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12월 4일의 뉴욕타임즈는 해설기사를 통해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이의 정상회담을“냉전을 끝내고 미·소가 새로운 화해의 관계로 향하는 역사적 전기를 이룩하는 것”으로 평가한 것을 보아서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몰타회담의 성과가 몰고올 평화에 대한 파장은 전 세계적인 것이지만 아시아에까지 미치려면 시간이 좀더 많이 걸릴 것 같다. 우선은 유럽 전체에 변화의 영향을 골고루 미친 연후에라야 아시아로 건너올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시아 특히 한반도에서 보는 세계사적인 새 질서에 대한 시각은 느긋한 감이 없지 않고, 경우에 따라 강건너 불처럼 둔감하기도 하다.
한편, 아시아의 대국인 중국은 천안문사태 이후로 개혁정책이 벽에 부딪친 채 진통을 거듭하고 있으며, 일본은 엉뚱하게도 경제대국의 힘을 빌어 군사대국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경제 및 군사력에서 수세에 몰린 나머지 개방정치를 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족벌체제를 강화하는 인상을 주고 있으며, 남한은 남한대로 상대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있는 정책을 과감히 펴지 못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가 평화통일을 선포하면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으므로 국민들은 통일의 의지를 의심하고 있으며, 북한을 민족공동체로 인정하여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일반국민들이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나 행동은 반국가 행위로 처벌하고 있는 등, 웃지 못할 넌센스가 연출되고 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본 노태우 대통령에게 서독의 포바이츠제커 대통령은 이렇게 충고했다고 전한다. “국민의 북한 왕래를 범죄시하지 마시오.”노 대통령이 “대한민국에는 정치범이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 끝에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 후 노 대통령은 영국, 프랑스, 미국 원수와의 회담 또는 전화 통화를 통하여 북한이 개방하게 해주도록 협력을 요청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노태우 대통령이 금쪽 같이 귀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과연 무엇을 깨닫고 왔는지, 또 유럽순방의 의미와 성과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동독이 장벽을 허물고 완전개방을 허용하기까지에는 서독 정부가 지난 20년 동안에 걸쳐 이끌어 온, 브란트의 동방 정책을 기초로 한 평화정책의 공이 크며, 이번의 동독의 변화는 고르바쵸프의 개혁이념에 결정적으로 힘입은 바라 할 수 있다. 서독은 매년 막대한 경제원조를 동독에 지원해 왔고, 그 답례로 자유서신 왕래 연간 수백만 명의 친지 방문 상호교역이 허용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동·서독은 90년1월1일을 기해 비자 없이도 자유로이 왕래하기로 합의했다.
과거의 예를 보아서 동·서독의 통합은 주변 국가들에게 불안과 위협을 주므로 소련을 비롯한 유럽의 나라들은 독일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의 경우와 정반대의 입장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약소국가이며 분단상태로 있는 것은 오히려 세계 열강의 긴장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한국은 북한에 대해 먼저 요구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먼저 개방과 개혁의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제도적인 폐쇄주의를 벗지 못하면서 북한더러 먼저 개방하라고 유도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며 실현 불가능한 요구일 뿐이다. 세계질서의 세기적 변화를 바라보면서 지도자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