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모를 겪은 비빔밥
어느 날, 친구 M이 보내온 이메일을 읽다가 나는 그만 눈이 커다래졌다. 전에 내가 ‘비빔밥은 상놈에게 어울리는 음식’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비빔밥을 먹는 M 앞에서. “그 뒤로도 비빔밥을 먹을 때마다 난 그 말을 떠올리게 되었어”라니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의의 엽기성도 놀라웠지만 M이 비빔밥을 먹을 때마다 “그래, 비빔밥은 상놈들에게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그랬지”라며 나를 떠올린다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필 밥을 두고 그런 불측한 발언을 하다니! 밥을 하늘과 같이 여기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아직도 ‘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 대단한 발언의 경위를 캐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이 내 혀 끝에서 나온 것만은 분명했다. 없는 말을 지어낼 M은 아니었으니까. 맨 처음엔 그 무렵 내가 “비빔밥은 상놈들의 음식이다”라는 글을 어디에서 읽었던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정보가 입력된 기억은 없었다.
게다가 웬 양반과 상놈? 그런 식의 구분에 누구보다도 반발하던 내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묵은 일기까지 뒤적여가며 재구성한, 진실의 함량이 80퍼센트는 되리라 생각되는, 그날의 ‘사실과 진실’. 때는 1997년 봄날 오전. 장소는 해인사 어귀의 한 식당.
등장인물은 해인사 어귀에 잠시 머물고 있던 나와 위문공연차 서울에서 전날 오후에 내려와준 M. 나는 M에게 그 부근에서 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밥을 먹이고 싶어한다.
더덕전과 온갖 나물, 튀각이 나오는 밥이다. 한끼 밥값으로는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관광지라는 걸 생각하면, 게다가 먼길 와준 친구에게라면 그쯤이야. 때없이 폭식하거나 인스턴트 식품을 애용하는 M에게 자연식 상차림을 보여 주며 은근히 시위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내가 묘사하는 밥상에 대해 M,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M은 “그건 궁중에서 사는 사람이나 양반들이나 먹는 밥 아냐? 나 같은 상놈이 어디 부담스러워서 먹겠어?” 라며 내친다.
아무리 꼬드겨도 요지부동이다. 그쯤에서 나는 M의 고집스러움이 미워진다. 아니 몇 만원짜리 한정식도 수두룩한 판에 만원도 채 안 되는 밥을 가지고 궁중이나 사대부까지 들먹일 건 뭐란 말이냐. 그리고 서울에선 그보다 더 비싼 밥도 여러 번 먹지 않았더냐. 맛있는 거 먹이고 싶어하는 친구의 마음을 그렇게 무지르다니.(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고집 부렸던 일은 까맣게 잊게 마련이다)
결국 M은 제 고집대로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비빔밥을 먹게 되었다.
썩썩 비벼서 맛있게 먹으며 “역시 나 같은 사람에겐 비빔밥이 제격이야” 라고 끝내 토를 다는 M에게 나도 한소리한다. 그래, 네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역시 비빔밥은(네가 말한 대로 너 같은) 상놈에게 어울리는 음식인가보다 라고. 굳이 비빔밥을 고집하는 M의 마음에 대해선 알려 하지 않은 채.
경전에 비유가 많은 까닭은
고등학생인 조카가 미국의 이른바 테러 응징을 위한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조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되물었다.
“나, 난 전쟁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미국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쪽에서 먼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잖아.”
“그 사람들이 왜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는 생각해봤니?
미국이 그들의 가족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남의 목숨을 빼앗았을까?”
“미국이 먼저 그랬다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신의 땅에서 내쫓고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이 아랍권에서 쌓은 원한, 기타 세계 곳곳에서 국지전에 개입하는 미국의 두 얼굴. 결자해지가 어떻고… 이러쿵 저러쿵. 조카는 납득이 안 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건 전쟁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미국은 그 나라를 지원한 거잖아.
테러는 전쟁보다 더 나쁜 거 아냐?
뉴욕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물론 테러는 나쁘다. 비무장 상태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는 누가 뭐래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센 사람에게 늘 얻어맞고 시달리는 힘없는 사람이,자기가 겪는 일을 남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저지른 일이라면? 늘 일방적으로 얻어맞던 사람이 어쩌다가 한 번 주먹을 휘둘렀는데 그것만 가지고 그쪽이 나쁘다고만 하면 더 억울하지 않겠니?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기타 등등.
조카는 맹송맹송한 표정이었다.
이슬람 고유의 문화를 위협하는 자본주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자본의 침투. 아이에게 사탕을 먹이려는 자본과 그 단맛 앞에서 자꾸만 사탕을 바라게 되는 아이. 물론 사탕을 먹고 싶은 아이의 권리도 인정해야 하지만, 그 아이의 치아건강을 위해 사탕장수가 집에 못 오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도 이해해야 하지 않겠니? 게다가 그 부모의 생각엔 사탕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턱없이 비싸다. 주절주절. 조카는 그게 이 ‘테러와의 전쟁’과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게다가 그쯤에서 내 얄팍한 상식은 동났다. 알 듯 모를 듯한 조카 앞에서 나는 단순해졌다.
일요일이야.
넌 네 방에서 혼자 쉬고 싶어. 네가 생각하기에 넌 무척 지쳤거든. 그런데 엄마는 너더러 외식하러 나가자고 그러셔. 네가 생각하기엔 특별한 날도 아니고 네가 꼭 가야 할 이유도 없어.
그런데도, 가족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너는 아직 엄마의 보호 아래 있으니까 엄마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게 엄마 생각이고 엄마가 더 힘이 세니까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 하지만 너는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안 나가려고 네 방문을 잠갔어. 네가 생각하기에 네 의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엄마는 억지로 방문을 열고 들어와 너를 야단치면서 마구 때렸어. 너는 엄마보다 힘이 없으니까 고스란히 맞았지. 그러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엄마를 떠밀었어. 그 때 막 밖에서 돌아오신 아빠가 이 장면을 보신 거야.
아빠는 너더러 엄마를 떠미는 몹쓸 딸이라고 매를 드셨어.
그동안 엄마가 네게 어떻게 했는지,네가 왜 그랬는지는 전혀 알려고 하지 않으시고. 그러면 네 마음이 어떻겠니? 사춘기, 반항기의 절정에 서 있는 조카는 “딱이다!” 하더니 비로소 히죽 웃었다. 미국이 일으킨 이번 전쟁의 본질에 얼마나 접근한 설명인지는 모를 그 설명 끝에 나 또한 깨달은 게 있으니, 경전에 왜 그토록 많은 비유가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부분적 진실과 전체적으로 사실이 아닌 말
호주 오지의 원주민을 그린 실화소설 <무탄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참사람들(원주민들)은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도 하지 않을 뿐더러, 부분적인 진실도 말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사실이 아닌 말도 하지 않는다.” 세상에 왜 그토록 많은 오해와 반목이 존재하는가의 일단을 이 구절이 밝혀 주고 있다. 오전 내내 전화통을 붙들고 있어야 했던 그날, 내가 제법 친절한 사람으로 비쳐졌을 앞의 두 독자와 달리 세 번째 독자에게 나는 퍽이나 무례한 사람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친구 M에게 M이 메일에서 언급한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경위를 이야기했더니 M은 청문회에 선 국회의원처럼 말했다.
“정말? 내가 그런 말을 했다구?
난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그리고 부시 정권은 주변 국가들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며 묻는다.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의 편에 설 테냐 아니면 테러리스트를 응징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전쟁에 가담할 테냐? ‘테러’라는 부분적인 진실 앞에서, 그 현상을 잉태하고 키워낸 다른 요소들은 고려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민족과 민족 사이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 생기는 크고 작은 오해를 종식시키기 위해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모자란다. 요점만 말하기 위한 거두절미는 필요한 것이지만,전체적인 맥락을 호도할 위험이 있는 ‘부분적인 진실’을 제공하지 않는 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하기야, 단층촬영기기처럼 단면을 잘라봄으로써 진실에 더 접근할 수 있는 경우도 없진 않다. 그러나 대개는, 두더지잡기 놀이기구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 머리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현상들에 한눈팔다 보면 역지사지는 점점 더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두더지들을 보면서 두더지를 튀어나오게 하는 작동원리를 이해하고,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 기기를 설치했는지 깨닫게끔 하는 일, 거두절미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학문이며 예술,종교가 할 일은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