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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를 떠나는 나뭇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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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1년 11월 237호
가지를 떠나는 나뭇잎이 때를 아는 것처럼 가고 옴의 때와 장소를 알고, 떨어지는 나뭇잎의 그 가벼움처럼 분별심과 인간적인 욕망을 덜어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어느 고서에 이런 글귀가 있다. 늘 마음에 담아두고 살피는 글이다. “청산과 마주하여 묵언默言의 마음을 배우고, 좋은 벗과 만나 나를 비추어 보며, 책에서 천고의 스승을 삼고, 화초를 기르며 내 마음을 기른다” 라는 글이다. 대지의 높고 낮음에 차별 없이 내리는 가을비의 성품과 어김없이 세상의 새벽을 깨우는 아침 햇살의 약속을 배울 수 있다면, 들국화 향기를 익혀가는 가을 한낮 햇살의 그 따스함과 이른 새벽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차가운 공기의 냉철함을 배울 수 있다면 수행자의 삶이 그다지 번거롭고 가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분별심이 남아 있는 이 수행자의 어설픈 육근六根은 사물의 미추美醜에서 걸리고 호好와 불호不好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인정에 걸리고 진심瞋心에 걸려서 냉철함과 포근한 성품을 잃게 되는 때도 있다. 자신의 삶의 질서에 어김이 있을 때는 관용의 품이 넓다가 타인의 무질서에는 용서하는 마음이 인색해진다.
분주한 하루가 지나고 밤에 고요히 앉아보면 낮에 경박했던 언행을 알게 되고, 침묵하는 밤이 지나고 침묵에서 깨어나기 전 이른 새벽에 홀로 앉아보면 지난 하루의 언어가 얼마나 조급하고 많았던가를 알게 된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말이 많아지는 나로서 처음 만남을 갖고 난 다음에는 좀더 침묵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걸 하는 후회가 따르게 된다.
그런데 후회를 하지 않았던 시간도 한 번 기억에 남아 있다. 언젠가 ‘차 한 잔의 선율’을 애청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던 말기 암 환자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방송을 통해 내 목소리에 친숙해진 그 환자는 오래 전부터 알아 왔던 스님 같다고 그렇게 친숙하게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나는 처음 만나는 불자여서 그날도 어색했다.
처음 자기가 시한부라는 사실을 의사를 통해 듣고는 자신의 삶이 오십대에 이렇게 끝날 수 없다고 그 결과를 부정도 해 보고 원망도 해 보곤 했었노라고… 지금은 그 시한부 삼개월이라는 시간을 넘기고도 몇 개월이 더 지났노라고… 지금은 어떻게 치료를 하여 하루를 일년같이 살아가고 있노라고… 덤으로 사는 이 감사한 삶은 부처님 말씀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기도도 하지만 무엇보다 위안을 받았던 ‘차 한 잔의 선율’을 통해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의연히 설 수 있는 자세가 되었노라고… 아픈 사람이 몇 시간 동안 속내를 다 털어놓고 긴 한숨을 몰아쉴 때 그저 듣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 이 불자에게는 이렇게 들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 앞서지 않는 나를 다행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불자는 나에게 들어 주는 사람의 넉넉한 기쁨을 알게 했고 이 가을에 가지를 떠나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삶의 끝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쌀쌀한 공기에 냉철함을 배우기에 앞서 옷깃을 먼저 여미는 내 모습, 말이 많았던 하루를 후회하며 마음 살피는 작은 이 수행자에겐 정진의 길이 아직도 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