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산이지만, 불교회관이 세워진 것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부산불교의 저변은 넓고 깊지만 대중화와 사회화의 측면으로 본다면 서울이 확실히 한 수 위다.
그래도 부산을 상징하는 시 청사와 경찰청 건물 옆으로 나란히 불교회관이 우뚝 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부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싶다. 그 덕에 이 곳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청만 알면 되니까. 현대식으로 지어진 지하 1층 지상 8층, 연건평 1천5백여 평의 건물이지만 입구에 돌로 조성된 친근한 사천왕상과 석조물들이 간판을 보지 않아도 불교 관련 건물임을 알려 준다.
알고보니 이 석상은 석불 전시 판매장의 전시용품 가운데 하나였는데 건물의 용도를 알리는 데도 한 몫을 한다 싶었다. 8층 가운데 3층까지는 상가에 임대를 해 주고 있었다.
1층은 불교용품 및 관련상품 판매장인 듯했고, 2층은 찻집과 음식점, 3층은 불교한의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4층서부터 6층까지는 부산불교교육대학을 비롯하여 부산불교신도회, 청년회, 교사불자회 등 부산의 각종 단체들이 들어와 있고, 7층은 선방, 8층은 법당으로 구성돼 있다.
이 큰 건물이 불교회관이라는 데 뿌듯함이 느껴진다. 부산불교회관 건립의 주역은 바로 정여 스님. 회관에서 만난 한 보살님은 시 청사 옆에 불교회관이 버젓이 자리잡은 것은 상징성이 크다면서 “부산이기에 또한 정여 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불사였다.”며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뒤가 바로 시민공원입니다. 새벽이면 무척 많은 사람들이 나와 운동을 하는데 그 때 새벽예불을 하는 목탁소리가 공원 전체에 울려퍼지거든요.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아마 부산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사실 스님이 속세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스님은 제방 선방과 토굴에서 결사를 반복하며 수행에만 전념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여 스님을 포교와 연결짓기보다는 수행과 공부에 전념하는 납자로 기억하곤 한다. 스님이 뜻맞는 스님들 10여 명과 시작했던 ‘명심회’를 기억하며 지금은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는 스님들이 많은 모임이다.
정여 스님은 이 모임을 시작하고 한동안 책임을 맡았었다.
“17, 8년 전에 시작한 것인데, 일년에 한 번씩 종단의 원로대덕 스님들을 모셔놓고 법문도 듣고 참선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일주일간 여법한 대중생활을 했어요. 처음에는 흐트러지지 않는 승려생활을 위해 10여 명이 하다가 범위를 확대해 교구본사를 돌아가며 실시했는데 100여 명씩 모였어요.
수덕사나 직지사 같은 경우는 150명, 170명도 모였지요. 스님들이 그렇게 모이는 것은 엄청난 일이지요.
12년 정도 지속되다 지금은 중단됐는데 내년쯤에 다시 한 번 시작해 볼까 합니다.”
선방결사를 반복하던 스님이 포교를 위해 도심으로 내려올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쌍계사에서 3년 동안 수행하면서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불교세가 가장 강하리라 생각했는데, 교회가 법당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어요. 또 병원에 가보아도 병원 법당보다는 교회가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포교의 원을 세웠지요.”
포교의 원을 세우고 도심포교를 시작했지만 완전 하산을 예정한 것은 아니었다. 스님은 스스로 3년으로 한정하고 그 이후에는 산으로 다시 가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보현선원에서 정확히 3년 포교를 마무리하고 산으로 가려는데 불자들이 스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보현선원이 세들어 살던 건물주인 김해동 거사와 백련행 보살은 땅을 기증할 테니 불교회관을 짓고 포교를 하면서 머물 것을 청하였다. 기증하겠다는 땅은 시청 옆에 210평에 달하는 누구나 탐낼만한 요지였다. 그러나 불사가 땅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불사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스님이 가진 것이라고는 전세금 1억5천만원이 전부. 8층 건물을 예정하면 최소한 필요한 공사비가 30억원은 있어야 했다. 수차례 부지를 오가며 고민한 끝에 스님은 불사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꿈에 세 보살님이 나타나서 자꾸 불사를 권장했어요. 불사를 해서 부처님 제자를 만들고 포교를 하라고.” 정여 스님이 예전에 범어사 금강암 불사를 할 때도 그랬다. 도저히 불사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상황이라 망설이고 있는데, 꿈에 세 보살님이 나타나 불사를 하라고 권하더란다.
스님은 자신이 없다고 해도 자꾸 권하면서 ‘나무관세음보살’ 1만 장을 써서 나눠주면 된다며, 붓까지 들려주는 것이다. 그 말대로 관세음보살 만 장을 써 보시하던 날 불사는 시작됐다. “이번에도 똑같은 보살님이었어요. 그래서 가진 것은 없었지만 이번 불사도 가능하다고 확신했지요” 결국 불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8개월 만에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1년 만에 완공을 보았다. 정확히 새천년이 시작된 지난해 5월 부산불교회관 불사는 완성되었다. 속전속결(?). 마음먹은 이상 망설일 필요도 늦출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정여 스님의 스타일이다.
애초 스님은 어린이포교와 군포교, 병원포교에 특히 관심이 있었다. 중요함에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도 기독교인들은 와서 찬송가를 부르곤 하는데, 불교는 그렇치 못하지요. 그래서 간병인교육과 호스피스 교육이 필요하다 싶어 회관에 들어오면서 간병인교육 및 호스피스 교육을 시켜서 부산의료원, 동의의료원 등에 배치해 나가는 중입니다. 경찰청에도 뜻있는 스님들과 노력을 해서 경찰청 안에다 3개월 전에 법당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셨어요.”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스님은 선구적이다. 부산불교 최초로 개금사회복지관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사회복지사업도 포교사업과 연결되더라구요. 스님이 직접 복지관에서 밥도 퍼주고 노인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하면 스님들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어느 정도 복지관 경험이 쌓이자 양정에 별도로 치매노인센터를 만들어 낮동안 노인을 돌볼 수 없는 맞벌이부부들의 고민을 해소시켜주고 있으며, 노숙자들을 위한 실직자 쉼터까지 운영하고 있다.
쉼터에서는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직장을 잡아 주기도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시청과 협의해서 공공근로 우선권도 부여해 주고 일정액수가 모아지면 정착금으로 되돌려 준다. ‘말끔이 사업단’이라 하여 실직자 4, 5명을 한 조로 묶어서 차량청소, 세차 등을 해 주고 거기서 나오는 금액은 한 달에 한 번씩 똑같이 나누기도 한다. 그 뿐인가. 4개월 전에는 ‘맑고푸른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도 만들었다. “우리가 버리는 음식쓰레기만도 10조가 넘는답니다. 그만큼의 식량이면 북한에 굶는 사람이 없게 된답니다. “ 시민연대에서는 절약운동과 함께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북한돕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배고픈 설움은 배고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내 형제와 내 동포가 굶고 있는데 우리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예전에는 못살아도 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정을 앗아갔어요. 황폐한 마음에 정겹고 푸른 마음을 불어넣어 주어야겠다 생각해서 시작된 것이에요.” 그밖에도 스님이 하는 일은 참으로 많다.
부산불교아카데미 이사장,금정장학회 상임이사,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교사대학장, 맑고푸른시민연대 상임대표, 교도소 교정위원, 부산불교연합회 포교원장, 파라미타 부총재, 해동중학교 감사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5년 안에 벌이고 맡은 일들이다. 불사 하나만 하더라도 몇십 년이 걸리고 복지사업 하나를 하려 해도 몇 년은 걸리는 것이 보통인데 스님의 엄청난 추진력을 알 만했다.
“하다보니 연결되고 연결되고 하다보니 그리 되더라구요.” 그러니 스님의 스케줄은 쉴 틈이 없다. 요즘에는 범어사 재무직까지 맡아 더 바빠졌다. 신도들은 스님은 하루 2시간 정도나 주무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런 스님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바로 힘입니다. 신도들에게 역시 믿음을 심어 주고 그 믿음을 향해서 일관되게 나가게 해 주는 것이 내 할일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진해야지요. 정진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고.”
스님은 ‘여如’자를 무척 좋아한다. ‘여如’자는 아름답고 꾸밈없는 붓다의 때묻지 않은 마음, 물들지 않은 마음, 연꽃 같은 마음,그러한 일여한 마음을 일컫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교당 이름도 여여선원이고, 삼랑진에 불사중인 절 이름 역시 여여정사다. 그래서 신도들은 스님을 여여 스님이라고도 부른다. 좋아하면 닮는다고, 바쁜 와중에서도 늘 여여한 스님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