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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비치는 것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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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홍현숙1 2001년 11월 237호
열몇 해 전에 <월간 해인>에서 스님들 탐방 기사인 ‘호계삼소’가 신설되었을 때, 취미로나마 사진을 찍는다고 말할 깜냥도 못 되는 처지에, 행복하고도 황감하게시리, ‘호계삼소’ 란의 사진 찍는 일을 맡게 되었다. 마침 내가 몸담고 있는 ‘끄레’가 해인지 편집 일을 돕고 있던 때라 인연 닿기가 쉬웠던 덕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한 해 남짓 호계삼소 사진을 찍었고, 그리고 몇 해 뒤인 94년 연말부터 시작해서 만 다섯 해가 넘도록 더 찍었다.
이렇게 일곱 해 가깝게 전국의 사찰과 토굴로 스님들을 찾아 뵈며 호계삼소 사진을 찍어 온 이력은 전에 없던 경험과 새로운 눈뜸으로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여러 모로 풍성하게 키워 주었지 싶다. 지은 복도 없이 이런 큰 은택을 입다니! 부처님 가피에 그저 고개 숙일 따름이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다달이 서울을 버리고 이 산 저 계곡으로 길 나선 것부터가 여름 휴가에 바다를 찾는 것이 고작이던 내겐 새로운 즐거움이고 귀한 경험이었다. 우리 나라 산천과 마을살이의 아기자기하고 다채로운 풍경들을 게걸스럽게 탐하고, 고찰이든 토굴이든 산중에 살뜰히 숨어 있는 스님들 거처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탐색하고 다니는 사이에 내 가슴 속의 지리지는 씨줄날줄을 겹쳐 가며 윤택해졌다.
그와 더불어, 불자도 아닌 몸이 법향을 쐬어 절 집안의 습속을 차츰 몸에 익히면서 과문한 대로 불가의 가르침을 세상과 삶을 보는 잣대로서 의지하게도 되었다.
처음에는 스님께 절도 올릴 줄도 몰랐다. 옆에서 인터뷰하는 이가 정성스럽고도 엽렵하게 삼배를 올리는 동안 그저 멋쩍게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었다. 공경심이 없어서가 아니었건만 영 어색하여 흉내내기로 절을 드리는 것이 외려 더 불경스럽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가 계기가 되어 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운 바가 없이 눈 동냥으로 하는 절이라 서툴기는 하지만 스님 앞에, 부처님 보살님 앞에 절을 올릴 때마다 이제는 나--그것이 과연 나였는가?--를 한없이 낮추는 듯한, 무언가를 비워 내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열락을 맛본다.

‘호계삼소’ 길이 길어지면서 그렇게 나는 드러나지 않게 몸과 마음으로 알음알이를 늘려 가면서 성장하였다. 드러나는 것도 있었다. 사진이다.
나이 서른 즈음에 삶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다. 누구에게나 있는,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 충동질되어 사진기를 샀다. 사진은 충분히 매력적이면서도 그림이나 글이나 영화 따위보다는 훨씬 만만해 보였다. 그러나 정작 설레이는 마음으로 사진기를 손에 잡았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가 싶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두렵고 부끄러웠다. 그 뒤로 여러 해 동안 그 어여쁜 사진기는 자라나는 조카들, 나이 들어 가는 집안 어른들을 담는 기쁨으로 게으르게 존재하였다.
그러다가 ‘호계삼소’ 사진을 맡게 된 것이다. 나로선 벅찬 일이었지만, 그래도 매체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사진을 찍는 이 일을 빌미로 마침내 아마추어로서 사진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즐거웠다. 인물 사진, 그것도 오로지 스님 사진만 집중해서 몇 해 동안 거푸 사진을 찍는 사이에, 거듭된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 찍는 요령과 보는 눈이 느리게나마 생겼을 터이다. 그에 맞추어 사진 장비도 웬만큼 갖추게 되었다.
사진에 대해서 읽고 배운 것은 전혀 없었지만, 가까이에서 줄곧 뵈어 온 주명덕 선생님에게서 일찍이 얻어들은 바, “사진은 가슴으로 찍는 거야, 사진기나 테크닉은 부차적인 문제지. 사진의 유일한 조건은 빛이야” 하신 말씀 하나 믿고 오랜 세월 버텨 왔다.
물론 초심자의 눈에 빛이 보일 리는 없었다. 선승이든 학승이든 거리의 고통과 함께 하는 포교승이든, 달마다 뵙는 스님들은 그 수행의 내공으로 나를 제압해 왔고 엿들어도 잘 알 수 없는 말씀의 깊이로 주눅들게 하였다. ‘소 발에 쥐 잡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필름 아까운 줄 모르고 하염없이 셔터를 눌렀다. 불편하고 민망스러워하는 스님께 죄스러운 심정은 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사진기 렌즈를 통한 나의 눈은 스님의 얼굴 표정에만 열중하느라 빛은 커녕 주변의 장애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오래 한 끝에 앵글 안에 들어오는 주변을 정리할 만큼 되었다. 서서히 빛에 대해서도 예민해 보려는 여유도 생겼다.
처음부터 사진 잘 찍을 욕심은 갖지 않았다. 다만 주명덕 선생님의 그 말씀을 길잡이 삼아 되뇌이고 또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내 눈에 비치는 만큼 스님을 자연스럽게 담아 내려고 애썼다. 그래서 말씀을 나누는 중에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순간 순간 찍었고, 핀트가 맞지 않은 사진이라도 그 때 만난 그 스님답다 싶으면 용감하게 골라 쓰곤 했다.
일곱 해 동안 여든 분이 넘는 스님을 뵙고 법문 듣고 사진 찍는 사이에 스님을 보고 읽는 눈에 조금이나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것이 문득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그 동안 사진 찍는 일을 빌미로 잠시나마 자리하여 뵈었던 스님들 중에 그렇게라도 뵌 것만으로도 크게 감화를 입을 만큼 훌륭한 스님이 무수했지만, 내가 갖고 있는 호계삼소 사진첩을 아무리 뒤적여도, 내 그런 마음을 온전히 드러낸 사진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좋은 기회가 주어져 스님들을 계속 사진에 담게 된다면, 여전히 ‘내 눈에 비치는 만큼’밖에 스님을 표현할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그것도 부족하고 둔한 눈 탓에 뜻대로 용이하게 되지는 않으리라. ‘내 눈에 비치는 만큼’만이라도 스님을 표현하려면, 사실은, 사진의 기술적인 지식도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스님들이 예사 사람들과는 아무래도 달라서, 입고 있는 먹물 옷의 결에서부터 스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선득하고 허허로운 공기까지 다 담아 내는 사진이라야 할 터인데, 그러려면 그 깊은 내공에 웬만큼은 부응할 수 있는 사진 찍는 실력과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호계삼소’ 일로 사진 찍으러 다니던 그 때가 그립다. 철따라 바뀌는 산천의 풍경이 그립고 스님 처소로 올라가는 좁은 오솔길의 정취가 그립고 산사에 불던 바람이 그립다. 특히 정처에서 흔들림 없이 당신의 본분사에 주력하던 그 스님들, 인터뷰라는 당혹스럽고 기껍지 않은 일도 앞에 마주한 두 중생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버리고 참아 주시던 그 스님들이 그립다. 그 시절과, 그 풍경과 바람과, 그 스님들 모두가 그대로 나의 스승이 되어 나의 마음 속 어딘가에 잊혀진 채로 또는 묻혔다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며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