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자신과의 인연
이러한 소외계층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음성 ‘꽃동네’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부터였습니다. 꽃동네에는 장애인 시설, 정신병동, 노인복지 시설, 행려병자 시설 등 여러 시설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꽃동네를 방문했을 때는 장애인 시설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이라는 목적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을 찾아가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비록 꽃동네라는 복지시설에 모여 살고,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지 못하였지만, 그들에게도 기쁨과 즐거움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항상 고통에 차 있을 거라는 저의 짧은 생각이 도리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이 소외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봉사를 하는 동안 내가 봉사한다는 생각보다도 그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신체적 경제적 이유로 소외된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가 함께 가야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원봉사라는 명목으로 그들과 맺게 된 인연이었지만 이들의 감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계속해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알리고 있는 터라, 이들의 감정을 사진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다시 꽃동네를 찾을 때에는 나의 한 손에는 사진기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비록 나의 짧은 사진실력이었지만 그들의 진솔함을 사진에 채우기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훗날 이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잡지에 기고하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통해 한사람 한사람이 세상을 공유한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바쁜 도시 생활 속에서 잊혀진 존재의 가치를 다시 알아 간다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공간·시간 그리고 환경 속에서 각각의 삶을 개척하며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존재의 의미를 무시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더라도, 그 모든 것은 나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소외된 나 자신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더 넓은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불교로 맺어진 한국적인 사진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학교를 졸업한 후입니다. 사진작업을 하면서 외국의 사진작가와 사진을 공부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사진이 중심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서양적인 정서가 된장을 먹고 황토 흙을 밟으며 살아온 저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우리나라 저변에 깔려 있는 기층문화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였습니다. 평소 여행이라곤 춘천과 강릉이 전부인 저에게, 전국지도를 펴놓고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는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무작정 땅을 밟으며, 절집이며, 산에 들에 핀 들꽃이며, 돌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저의 짧은 식견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엇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관찰대상 폭이 줄어들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불교라는 대상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절집이 있고, 이천년 가까이 한국의 기층 문화를 이루어온 불교문화를 빼놓곤 한국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한국적인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천년 가까이 한국 문화를 이루어온 불교라곤 하지만, 어릴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가본 것이 전부인 저에게 불교는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일상생활과는 낯선 용어와 세상을 내려보는 듯한 부처님의 시선은 친근한 문화라기보다는 위압적인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차 여러 절을 답사하고, 불교예절도 나름대로 익히면서, 그러한 거리낌은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우리나라의 선 문화를 이해하고, 불교의 세계관을 하나하나 배워 가는 과정에서 저의 사진 또한 점차적으로 변화가 생겨 갔습니다.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듯 사진의 변화도 늦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양사진을 보며 공부한 탓인지 많은 기교가 배어 있던 사진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된장냄새가 나고, 들꽃 향이 나는 사진으로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불교문화를 공부하며 불교에 대한 회의와 함께 많은 갈등을 하며, 사진을 배워 나갔습니다. 불교의 경전을 공부하고, 선 문화를 체험하면서, 기존의 불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구체화된 불교의 사상을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연이 얽히고 설켜 겹겹이 다함이 없다는 교리를 통해 ‘인연’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만나는 사람들이 인연이 되고 길에서 들판에서 만나는 돌 하나 풀 하나가 인연이 되어 이 모든 것이 끝이 없이 이어지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만남이 소중하듯이 이러한 만남을 사진으로 보여 주고, 또 다른 인연을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길에서, 길 끝에서 만난 사람들, 들판에 서 있는 돌, 풀 한 포기 모두가 저에겐 소중한 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