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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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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7년 07월 65호
어렸을 적의 일이다. 친구들과 방과후들로 놀러가던 길에서 뱀을 만났다. 우리는 섬뜩한 걸음질로 멈춰서고 말았다. 잠시 후 그 어느 아이의 돌던지기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네댓 아이들이 돌던지기에 합세하였다. 그러나 뱀은 죽지 않고 짓찧어진 채 피묻은 몸뚱아리를 꿈틀거렸다. 우리는 무서움에 더욱 기를 쓰고 돌던지기를 하였다. 그러나 끝내 동강난 뱀의 꿈틀거림을 완전히 없애지 못한 채 우리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오고 말았다. 우리의 어린 의지로는 도저히 그 뱀의 몸서리치도록 악착같은 동물성을 감당할 수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꿈틀거림은 나의 어린 잠속까지 쫓아와 간 밤의 가위로까지 땀을 흘리게 했었다.
요 며칠 동안에 거리를 쫓기다시피 하여 가고 있노라면 문득 한 마리의 거대한 욕망이라는 괴물이 갖은 독기와 야수적 물리력을 휘두르며 집요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다름 아니라, 연이어-그것도 열흘이 넘도록-“호현철폐, 독재타도”를 부르짖고 있는 이 나라 시민들의 필사적인 투쟁과 항거에도 불구하고 무차별로 쏘아대는 최루탄에 쫓겨 뛰어들어간 골목 안 구멍가게에서 문을 닫고 있는 중노인이 뇌까리는 말마따나 “그 자리가 그렇게 좋을까. 이쯤 되면 내놓을 법도 하련만, 쯧쯧…” 하고 혀를 차며 흐리는 말의 여운 속에서 욕망의 실체를 보는 듯해, 새삼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한 시위 성격이나 최루탄으로 뒤범벅이 된 상황은, 그 어느 특정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그야말로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온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목쉰 울부짖음들을 깨부수며 깨스 속에 질식시키는, 철저히 무장된 전경들의 방독 마스크 속에 감추어진 감정만큼이나 이 나라의 정치적 수성(獸性)에 근거한 폭력에서 더욱 그 느낌은 강하게 집혀진다.
과연 그들은 눈이 있는 자들일까? 귀가있는 자들일까? 천만번 용서해서 양심의 그늘이 조금은 있는 자들일까? 이런 망설임은 곧, 아직도 길거리에 나와 몇천명씩 때를 이뤄 “독재타도”를 외치는 선량한 시민들의 야유와 코를 쥐고 쫓겨가는 모습들에서, 어린 여학생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끌고가는 야만성에서, 젊은 학생들을 개패듯 짓밟는 무력만을 능사로 아는 폭력성에서, 개인에서 집단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가해지는 무수한 비인간적인 억압과 탄압의 상혼 속에서 멈출 수밖에 없때 문화, 종교, 언론, 교육, 경제에 두루 걸쳐 그 독기 가득찬 부패성에 허리잘린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만큼이나 일그러지고 비틀린 반신불수의 꼴인 바에야, 달리더 어떤 치부와 혐오성을 들춰내어 현 정권의 구조적 악폐의 해답을 찾으랴.
이 나라의 전 국민이 열흘이 넘도록 그렇게 외치고 최루탄 파편에 사경을 헤매고 시위 차에 치여 죽고 또 눈물을 흘리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끌려가고 있건만, 늪속 같은 꿍꿍이로 팔짱끼고 관망하는 자는 오로지 정치적 야욕의 불구덩이 속에 있는 사람들만이다 또 무슨 셈을 채비하며 간교한 조작을 꾸미는지 허깨비 같은 움직임만 부산할 뿐, 왜 오늘과 같은 사태가 빚어졌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캐물음 하나 없이 섣부른 발표만으로 우리의 머리 위에 또다른 검은 구름한 조각을 덧띄워 놓는 격에 불과하니, 열흘 전이나 오늘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시국 수습 자세라 아니할 수 없겠다.
우리는 안다. 너무도 많은 기만과 술책에 농락당했던 전례를. 눈이 제 구실을 못하고 귀가 제 구실을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돌멩이를 들어 적을 가려 던질 줄 안다. 우리는 기억한다. 거론하기조차 죄스럽고 부끄러운 광주 2000여 영령들의 치떨리는 억울함을, 불교 정화라는 미명아래 착검한 채 군화발로 전국 사찰을 마치 도둑 소굴인 양 집 뒤짐한 만행과 그때 끌려갔다 돌아와 죽은 스님의 비명을, 고문으로 죽고 거짓으로 거듭 죽었던 종철 군이나 권 모양의 치욕과 쓰라린 기억을, 법당 안까지 최루탄을 난사하며 스님들 처소의 문짝까지 발로 차 부춰뜨리는 현정권의 악랄함을… 헤아릴 수도 없는 비위와 반민족적인 악순환들을 우리는 잊지않고 어금니에 꼭꼭 다져 깨물고 있겠기에 안다. 비록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으나 우리는 안다. 질서를 잘 지키고 민방위 날에는 허둥대며 경보 소리에 쫓겨도 우리는 안다. 진즉 우리곁을 떠나버린 정치이치만 안다. 이장이나 동장의 말에 잘 협조는 하고 있으나 안다. 서럽고 서러운 이땅의 역사를 알고, 애국가를 부를 수 있겠기에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도 거리를 나서면 거대한 욕망이라는 괴물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결코 어린아이가 아니다. 뱀의 꿈틀거림쯤 얼마든지 돌로 쳐 없앨 수 있는 거뜬한 어른이다. 식은땀 나는 가위에 눌릴 우리가 아니다. 마땅히 그래야 옳으리라. 그 어떤 대가를 치뤄서라도 기필코 이 나라에 민주화의 새벽이 쾌청쾌청 맑은 아침으로 당도해야 하리란 것도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