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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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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대식 2001년 11월 237호
“남산을 사랑합니다.”
어느 날이었는지, 어느 골짜기였는지를 기억 못하는, 경주 남산에서였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조그만 패찰이 속삭임으로 와 닿았다. 사랑. 어딘가에 마음 쏟아붓는 일을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경주라면 오래 전부터 드나든 편이지만 남산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십여 년 전인가 사진가 강운구 님의 사진집 《경주 남산》을 통해서 알았으니까. 그 사진집으로 남산을 눈요기하고도 정작 남산에 가보게 된 것은 다시 4, 5년이 흐른 후였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 중에 남산 동쪽 기슭의 불상들 몇 군데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소설 쓰겠다고 직장을 그만둔 무렵이었던가? 경주 마석산 아래 살고 있는 선배를 찾아간 김에 삼릉골쪽으로 올라가 용장골로 내려오는, 남산 서쪽을 주마간산격으로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남산을 경주에 놓아둔 채 돌아와서는 늘 마음으로만 연연해왔다. 그러던 참에 1998년 여름, 경주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네 동네에 내려와서 살아볼 생각이 있느냐고. 빈집이 하나 생겼는데 집만 지켜 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소설 쓰겠다고 직장마저 그만둔 판이라, 어디 조용한 데 집필실이라고 할 만한 방 한 칸 있었으면 했고 그런 뜻을 경주 선배에게도 말했던 터였다. 나는 PC 한 대와 책 몇 권을 싸들고 경주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소설 쓰는 틈틈이 남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신라문화원에서 나온 송재중 님의 〈경주 남산 지도〉를 샀다. 축적 2만 5천 분의 1인 그 지도는 보기보다 자세하여 거기 나온 유적들을 혼자 짚어가면서 찾을 만했다. 달랑 지도 한 장에 의지해 남산을 더듬으면서 나는 결심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유적들은 다 찾아내자고. 그러면서 나는 어느새 남산의 유적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나는 날만 좋으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남산을 찾았고 구석구석 남산을 뒤졌다. 인적이 드문 남산 남쪽에서는 몇 번씩 길을 잃어가면서 지도에 나온 불상이나 폐탑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보니 소설은 저만치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경주 내려간 이듬해, 여름날 이른 아침 나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헐레벌떡 칠불암 골짜기를 오르고 있었다. 남산동 입구에서 십리 가까이 되는 봉화골 칠불암 길을 오르느라고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렸던 사연은 이랬다. 칠불암의 마애삼존이 새겨진 바위는 동향하고 있고 그 앞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도 동서남북 방위에 각이 맞게 앉혀진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북면 여래상에는 햇빛이 들 리 없으니 자연광으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전날 밤, 일제 때 나온 경주 남산 불적 도록에서 그 북면에 햇빛이 드는 사진을 발견했던 것이다. 사방불이 새겨진 바위는 정북향에서 동쪽으로 약간 틀어 앉아 있었던 모양이었고, 거기에 해가 들었다면, 북반구에서 해가 가장 북쪽에서 뜨는 여름 아침이었을 것이고……. 마침 하지가 다가오는 무렵이었다. 이 발견으로 나는 복에 없는 새벽 등산을 하였던 것이다.
석불의 경우, 햇빛이 들게 되면 윤곽이 분명해져 표정까지 읽어낼 수 있다. 흔히 배리 삼존불이라고 불리우는, 남산의 선방골 석조 삼존불 입상은 지금 보호각 지붕 때문에 햇빛을 못 보아 무표정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불과 십년 전 노천에서 햇빛 받고 있을 때의 사진을 보면 본존과 두 협시보살 얼굴의 천진무구한 웃음에 우리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해가 높이 뜨는 여름날 아침 부처바위 북면 앞에 서 있으면 해가 들면서 본존의 얼굴에서 활짝 웃음이 피어나는 광경을 지켜볼 수 있다. 그뿐인가? 그 옆에 협시처럼 새겨진 두 마애탑의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선명해지면서는 마치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이야 불상을 대하면 수인手印을 보고, 옷주름을 살펴서 존명을 밝히고 제작된 시대를 짐작해낸다. 하지만 나는 남산 불상들에서 주로 상호相好를 눈여겨보며 사진을 찍어온 편이다. 불상을 만들려면, 부처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32 길상吉相, 80 종호種好 등의 법식을 지켜야 한다. 석굴암의 불상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산 미륵골의 보리사 석불 좌상이나 칠불암의 마애삼존, 사방불 등은 이러한 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남산에는 그러나 이러한 법식을 벗어난 불상들이 많다. 이러한 일탈은 불상의 상호에서 두드러진다. 간다라나 마투라 지방에서 시작되어 서역, 중국을 거쳐 전해진 전범적인 상호 대신 이웃 사람을 모델로 삼은 듯한 일상의 얼굴들이 부처로 형상화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이 얼굴들은 더러 못생기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주기도 한다. 기다란 얼굴에 커다란 코와 두툼한 입술을 하고 있는 삼릉골 선각여래좌상이나, 볼록 튀어나온 눈두덩과 뭉툭한 코에 두툼한 입술을 한 오산골 마애불은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고 있는 미륵골 마애불이나 수더분한 표정의 부처바위 앞에 서면 본존의 얼굴에서는 이웃 아주머니 같은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런 불상들 앞에서, 햇빛이 그 표정을 제대로 드러내 보여 주는 순간을 기다리곤 했다. 한나절을 꼼짝 않고 불상 앞을 지키기가 예사였다. 계절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시시각각 바위를 비추는 햇빛의 각도가 변하면, 이에 따라 불상의 표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바위벽 앞에서 하염없이 불상의 표정을 살피고 있노라면 ‘이것이다!’ 라는 생각에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댈 때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 현상해 보면 사진은 생각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셔터 누를 때에는 뭐랄까, 부처님의 표정을 제대로 붙잡았다는 느낌이 들었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남산에서 3, 4년 세월을 보냈으면서도 나는 아직 마음에 드는 ‘부처님 초상’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금년 초, 3년 가까운 경주 살림을 걷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요즘도 가끔 경주에 내려가면 카메라를 메고 남산을 오른다. 언젠가는 진짜 부처님의 표정을 붙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감히 욕심을 말하자면 사진으로 거룩한 순간을 붙잡아 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