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삭발, 단식, 출가정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청사자의 소리 - 윤금선 1987년 06월 64호
석가모니께서 왕자라는 자신의 지위를 거부하고 진리와 깨달음을 향해 출가하셨을 때,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의 분소의를 걸치셨다. 이후 불교에서 승가 집단은 삭발과 법복으로 재가와 구분되었다. 출가시 이처럼 머리자름과 분소의를 걸침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이는 기존의 전도된 가치를 거부하고 정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와, 기득권을 포기하고 무소유의 정신으로 중생 구제에 전념하겠다는 대서원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접한 어느 목회자의 삭발과 단식은 이러한 불교의 출가 정신과 상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4.13호헌 반대 의사 표시). 이 또한 전도된 가치의 과감한 탈피 선언과 기득권의 포기라는 비장한 몸짓으로 이해하고 싶다. 인간 해방이 종교의 궁극 목표이고, 외적인 억압과 굴레를 거부하고 평등한 인간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의 기본 시상이라고 할때, 목회자들의 단식·농성, 스님들의 성명·농성은 한국 민중의 고를 해결하여 평등하고 자유로운 민주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재야 단체의 농성, 교수들의 시국 선언, 학생들의 시위 등 일련의 사태를 접하면서 작년 이맘 때를 다시금 떠올린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작년 이맘 때 강하게 표출되었던 기억이 우리에겐 있다. 이러한 국민적 요구와 뜨거운 열기로 그동안 일년이라는 개헌정국의 기간을 맞이했었다. 그러나, 관(官) 주도의 개헌 논의는 국민의 진정한 요구를 묵살, 배제, 매도하였으며, 88의 양대사를 위해 그동안의 개헌 논의를 유보한다는 내용의 ‘고뇌에 찬 중대 결단’ 으로 매듭지어졌다. 이에 많은 수의 국민은 정부의 기만적 처사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결집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정치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불교에서의 정치관은 승가 집단의 전통에서 그 맥을 찾을 수 있다. 승가집단의 첫번째 특성은 평등이다. 신분, 출생, 빈부의 외적 요인으로 승려를 규정짓지 아니하고 모두를 불성의 존재로서 존경하고 다만 수행의 정도에 따라 예우를 달리했을 뿐이다. 두번째 함성으로는 민주적 의견 수렴의 관행이다. 갈마작법에 의해 모든 대중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개진토록 하여 올바른 입장을 수용, 정립하여 바른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처럼 불교는 인간을 불평등하게 규정짓지 않음으로써 모든 대중에게는 주권이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승가 집단에 실현시켰다. 불교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불교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지어져야 하는가. 불교는 지배 이념의 수단으로서 전제 왕권에 의해 수용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편으론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불교의 전도된 작태에 대항하여 후백제 때의 미륵 신앙시상이나 조선 후기 때의 미륵 신앙사건, 장길산 사건 등으로 민중의 실천적 의지를 대변하여 표출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고려 시대 묘청에 의한 민족 주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 조선 시대 왜병의 침입에 항거한 승병의 투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민족적 권리의 수호자로서 민족과 함께 외세의 억압과 수탈을 거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제 불교는 과거 지배자의 지배 도구로서 그 구실을 담당했던 오류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민족 종교로서의 자기 역할을 완수해야 하며, 민중과 민족과 함께 하는 진정한 종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대주의적 사고와 이기심이 팽배한 지배자들은 민족적 자긍심을 지닌 제반 종교, 사상, 문화를 거부하고 종속적, 굴종적인 종교, 사상, 문화만을 강요한다. 이에 의해 우리 불교는 교과서 왜곡, 의식적인 불교계의 소외시킴, 불교 관련 제악법 등으로 왜곡, 소외되고 있다. 종교의 자유를 외면한 불교 재산 관리법은 정교 분리의 원칙을 무시한 채 불교를 조종, 굴종시켜 왔으며 제반 행정상 의도적으로 불교를 왜소화시키고 있다. 외세에 의해 침탈당하는 불교는 작년의 l52분 스님의 시국 선언과 9.7 해인사 승려 대회, 금년 초파일의 생명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모습처럼 사회의 민주화, 민족의 자주화가 불교자주화의 선결 과제임을 인식하여 더 이상의 굴종적 자세를 거부하고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 의 이념으로 매진할 때, 외세에 의한 침탈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불교가 내적 역량이 부족함은 사실이나, 불교 이념의 구체화 작업과 불교 대중의 조직화 작업에 매진할 때 급속히 성장할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현재 끝없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욕망의 불꽃에 의해 자멸한 기업가의 죽음과 자신의 생존권을 요구하며 쓰러져 가는 철거민, 노동지자, 농민의 모습을 함께 접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나게 벌어진 아이러니칼한 상황에서 불교도에게 가장 요구되는 정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출가 정신이라 생각한다. 전도되고 왜곡되었던 기존의 아상을 바로 잡고 자신의 기득권을 거부하여 뭇중생, 민중과 함께 하고자 하는 보살로서의 삶의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