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참다운 무아(無我)란?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청사자의 소리 - 김유신 1987년 06월 64호
우리들은 생활하면서 많은 대화를 주고 받으며 무수히 많은 말을 입을 통해 배출시킵니다. 그 많은 말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르긴 해도 아마 ‘나’라는 말일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내가 너라면 이렇게 하겠다’, ‘나는 너와 이러이러해서 다르다’ 등등 수없이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나’라는 말은 빠지지 않고 쓰여지고 있읍니다. 그러면 ‘나{我)’라는 존재는 어떠한 존재일까요? ‘나’라는 존재는 언제부터 존재하는 것일까요? 만약 내가 살아 있지 않으면 ‘나’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에 대하여 고민하는 ‘나’는 살아 숨쉬는 ‘나’이지 결코 죽은 ‘나’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살아 있는‘나’라고 할 수 있읍니까? 물론 대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응아’하고 탯줄을 끊으며 나왔을 때부터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이유와 원인없이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가 원인이 되는 자기 원인적 존재가 아니고서는 굳이 ‘인과율’을 벌지 않더라도 원인없이 결과로서 존재할 수는 없읍니다.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음에 그 인연으로써 나는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는 존재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할아버지·할머니·증조부·증조모·단군·원숭이·아메바 등등 생물학적 주체와 제반 여건으로서의 환경과의 무수한 상호 연관적 인과 관계에서 ‘나’라는 존재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아버지가 ‘나’일까요? 아닙니다. 아메바가 ‘나’일까요? 그것 역시 아닙니다. 어제의 ‘나’가 곧 오늘의 ‘나’일 수 없듯이 앞에 열거한 모든 것들이 결코 지금의 ‘나’는 아닙니다. 번데기를 보고 앞으로 나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번데기를 나비라고 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존재는 어머니의 뱃속을 나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살아 있는 ‘나’인 것입니다. 무수억겁을 통해 쌓여 온 인연의 관계 속에서 시간이라는 날줄과 공간이라는 씨줄이 교차하는 그물코에 ‘나’는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無我說’(an-atma-vada)은 단지 있는 그 자체로서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인과 관계 속의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를 봄이라 할 수 있읍니다. 부처님의 ‘무아설’은 현실적 존재로서만의 ‘나’가 아니라 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무수한 인연을 통해 존재하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하여 묻고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불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부처님의 ‘무아설’을 참으로 진실되게 가슴속 깊이 느끼신다면 이웃의 아픔을 저의 아픔으로 여겨야 합니다. 무수한 인연 속에 ‘나’와 이웃은 한몸이요, 곧 ‘나’의 분신인 것입니다. 이웃은 곧 ‘나’ 이므로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유마경’에서 누누히 강조되는 중생과 보살의 관계는 참으로 우리 불자의 무아적 삶에 대하여 잘 말하여 주고 있읍니다.
둘째, 부처님의 ‘무아설’을 진정으로 진실된 가르침으로 알고 실천하고자 한다면 자·비·희·사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내어 보시와 자비행을 행하여야 합니다. 길을 걷다가 자기 옆에서 어린아이가 넘어져 울고 있으면 우리들은 어떻게 할까요? 당장 일으켜주고 옷에 묻은 흙을 털고 다친 데가 없나 살펴보며 우는 아이를 달래줄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어떤 댓가와 보상을 바라지 않는 아주 단순하고 무의식적인 행위입니다. 그것이 바로 보살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정령코 부처의 길을 가는 보시와 자비의 실천의 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고통받고 억압받고 괴로와하는 또 하나의 자신들을 향해 담대하게 보시와 자비행을 베푸십시오. 내가 시간이 남아서, 재물이 남아서 베푸는 것은 값싼 동정이요, 자신만을 위하는 또하나의 방법이지 진정한 보시와 자비행은 아닌 것입니다.
‘너와 나는 한몸이다’하는 동체대비의 마음, 이것이 보살의 마음이며, 무아(無我)의 마음입니다. 지옥 중생이 최후의 하나까지 성불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서원하신 지장보살의 단호하고 한없이 자비하신 보살의 마음입니다.
부처님의 ‘무아설’을 결코 관념적 문구와 형이상학적 논리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진실된 보살의 실천으로써 그 진가는 발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자기가 살아 호흡하는 이 민족의 공동체를 항상 생각하고 항상 보시와 자비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지장보살의 결연함과 관세음보살의 무량한 자비심으로 보시와 자비행을 통해 참다운 무아(無我)의 실천적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