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례 누나와 함께 주문받은 두부를 바가지에 담아 날라다주었다. 마을 아이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고 놀렸다.
“만주 거지 두부 팔러 간다.”
“쟤들 아버지는 소련놈한테 총맞고 강물에 떠내려 갔단다.”
“밤중에 삼팔선을 몰래 넘어온 떼거지들아.”
아이들이 놀리는 소리를 등뒤로 돌리면서 점례는 걸음을 빨리 옮겼다. 점득이는 울음이 터질듯 말듯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모과나무골 외딴집 점득이네는 이렇게 불쌍한 거지라 불려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과나무골 다른 집들이 풍족하게 사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끼니를 잇지 못하고 입을 옷도 없는 집이 반이 넘었다. 다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우스개로 말하는 것을 따라 흉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놀리던 아이들 중에 동석이란 코흘리개 아이가 점득이네 집에 무부 비지를 얻으러 왔다. 설날도 대보름날도 지나보내고 난 정월 그믐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바가지를 든 동석이가 외딴집 마당에 들어와 그냥 아무 말없이 서 있었다.
“너 왜 왔니?”
점례가 좀 화난 소리로 물었다.
“……”
동석이는 얼른 대답 않고 어물어물했다.
“왜 왔냐니까?”
“……”
그래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너 두부 사러 왔냐?”
어머니가 나와서 부드럽게 물었다.
“아니에요.”
동석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럼, 바가지 들고 왜 왔니?”
“저어, 엄마가 비지 얻어오라 했어요.”
동석이는 말하고 나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점례보다 한 살 아래인 동석이는 설날에 입은 바지저고리가 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데다 옷소매는 코를 씻어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어머니가 두부 비지를 한 바가지 담아 동석에게 줬다. 점례는 뾰족하게 화가 치밀었다.
“동석이 비지 주지 말어! 우리한테 거지라 놀렸단 말야.”
동석이는 바가지를 뒤로 감추었다.
“인내 놔!”
점례가 따갑게 소리질렀다.
“와앙!”
동석이는 뜻밖에도 그만 큰 소리로 울어버렸다. 어머니가 동석이에게 다가가서 달래었다.
“동석아, 앞으로는 우리 점례랑 점득이랑 사이좋게 놀아라, 응?”
동석이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동석이가 비지를 얻어간 다음 날은 감나무집 태분이와 우물가집 은이가 같이 바가지를 들고 왔다. 어머니는 둘 다 비지를 줘서 보냈다.
이래서 점득이네한테 만주 떼거지라고 놀리는 아이들은 없어졌다. 오히려 점례는 태분이랑 은이랑 모든 아이들과 친한 동무가 되었다.
봄이 되면서부터 두부 만드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어 점득이네는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어머니는 방아 품을 팔고, 점례는 모과나무골에서 가장 부자집이라고 하는 박 주사네 아기를 봤다. 점득이는 승호 형을 따라 승기와 함께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점례의 아기보기는 너무도 고달팠다. 박 주사네는 첫아기를 감기로 잃어 버렸기 때문에 두번째 난 아기를 지나치게 보호했다. 점례는 그 아기 붙들이를 업고 하루종일 방 안에서만 지냈다. 갑갑한 방 안에서 하루종일 아기를 업고 섰다가 앉았다가 서성대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가면 저녁을 먹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10살짜리 점례한테는 무거운 노동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고 나물 캐러 가기도 하는데, 점례는 흡사 갇힌 죄수처럼 방 안에서 살았다. 겨우 세끼 밥을 얻어먹는 것이 아기 업어 주는 품삯이었다. 가끔 떡이나 누룬밥이 있으면 불들이네 어머니가 집에 가져가라고 싸주는 정도였다.
점례는 붙들이네 아버지가 아기를 보며 귀여워하는 것을 볼 때면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비록 가난했지만 알뜰한 아버지였다. 길림의 산골 외딴집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따라 물이 그득하게 찬 논에도 가봤다. 무릎까지. 차는 물속에서 아버지는 익숙하게 볍씨를 뿌렸다.
점례는 둑에서 달래를 캤다. 나물 바구니엔 민들레꽃도 따넣고 이름모를 풀도 뜯어넣었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칭찬을 했다.
“우리 점례, 나물 많이 캤구나.”
개울물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버드나무 회초리로 꿰미를 만들어, 피라미랑 붕어랑 꿰어가지고 점례 손에 들려주기도 했다. 저녁 반찬으로 찌개를 끓여 먹으면 구수하게 맛이 있었다. 개울 건너 병구네 집에 점득이와 함께 물고기 찌개를 뚝배기에 담아가지고 갖다 주기도 했다.
병구네 어머니는,
“이렇게 큰 고기를 누가 잡았니?” 하면서 반가와했었다.
“우리 아버지가 잡았어요.”
점례는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외갓집 승호한테 놀러가면, 승호는 잠시도 놀지 않고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병아리 둥우리도 만들고 노간주나무를 휘어 소쿠리도 만들었다. 점득이 생각에도 승호 형은 참 부지런하다고 여겼다. 한번은 점례가 승호한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오빠, 이북에 사는 꽃분이네가 말하는데, 해방군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도 나눠 주고 밭하고 논도 나눠 준다고 했어. 그게 정말이니?”
승호는 피식 웃고 나서 말했다.
“해방군이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이 나눠서 함께 잘 살자고 하는 거야.”
“부자들이 그냥 공으로 나눠 준단 말이지?”
“글쩨, 마음씨 착한 부자는 그렇게 나눠주겠지만 다 그렇지는 않겠지.”
“그래, 그러니까 해방군이 부자들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댔어. 점득아, 너도 들었지?”
점례는 점득이한테 물었다.
“응, 후남이가 그랬어. 그러니까 우리도 고향에 가지 말고 이북에서 같이 살자 했는걸.”
“글쎄다.”
승호는 그 이상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