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 : 저는 감각 기관을 자제하는 데에 아주 조심해서 공부하고 있읍니다. 눈은 항상 내려다보고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무엇을 먹을 때면 씹고 맛보고 삼키는 등의 동작을 아주 천천히 관찰합니다. 모든 행동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합니다. 제가 바르게 공부하고 있는 겁니까?
답 : 감각 기관을 자제하는 것은 올바른 공부다.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항상 우리의 감각 기관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하지는 말라. 걷거나 먹거나 할때 그저 자연스럽게 하라. 그리해서 제 자신 속에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집중해서 그것을 발전시켜라. 너무 무리한 참선을 억지로 하지는 말라. 그것은 다른 종류의 욕구가 된다. 참으라. 참고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해서 공부를 자연스럽게 집중할 것 같으면 지혜는 자연스럽게 올 것이다.
물음 :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필요한지요?
답 : 그렇지 않다. 앉는 것만 주장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 앉을수록 더 공부가 많이 되고 지혜로와지는 줄 생각한다. 나는 닭들이 하루 종일 그들의 둥지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지혜란 행주좌와에 정신을 집중하는데서 오는 것이지 앉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아침에 깨자마자 시작해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앉는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말라. 중요한 것은 네가 일하고 앉고 변소 가는 등 하나 하나의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은 각기 자기의 타고난 개성이 있다. 어떤 이는 나이 50에 죽기도 하고 어떤 이는 65세에 또 어떤 이는 90에 죽는다. 이와 같이 그대들의 공부도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이것에 대해 너무 생각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집중하도록 노력하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하라. 그러면 너의 마음은 점점 어떤 상황에서도 조용해질 것이다. 마치 숲속의 맑은 샘같이 고요해져서 여러 가지 신기하고 희귀한 동물들이 그 생으로 풀을 마시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그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의 본성을 밝게 보게 될 것이고 많은 신비하고 이상한 것들이 오고 감을 보게 될 것이나, 너의 마음은 고요한 그대로 있을 것이다.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더라도 그 밝은 지혜로써 즉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열이다.
물음 : 저는 아직도 생각들이 많습니다. 저는 마음을 집중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읍니다만 저의 마음은 이리 저리 헤
매입니다.
답 : 그것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 단지 너의 마음을 현재에 머물도록 노력하라. 네 마음 속에 무엇이 나타나든지 단지 그것을 주시하고 놓아 버려라.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말라. 그러면 너의 마음은 좋고 나쁘고 뜨겁고 차고 빠르고 느리고 나다 너다 하는 차별이 없는 자연스런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특별히 뭘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걸을 때면 그저 단순히 걸으면서 무엇이 있는지 보라. 어디에 있던지 네 자신을 주시해서 깨어 있으라. 의심이 일어나면 그것의 오고 감을 주시하라. 이것은 매우 간단하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것은 마치 길을 갈 때 많은 장애물을 만나는 것과 같아서 더러운 것을 만나면 그냥 보고는 지나치면 되며 그것을 다시 생각하진 말라. 또 다가오지 않은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현재에 충실할 뿐 앞으로의 일이나 목적을 생각지 말라. 모든 것은 바뀐다. 무엇이 지나 가든지 집착하지 말라. 점차로 그대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공부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모든 것은 그것 스스로 오고 갈 것이다.
물음 : 육조 혜능대사의 단경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답 : 혜능대사의 지혜는 매우 날카롭다. 그의 가르침은 매우 심오하고 초보자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대
가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의 수행법대로 공부하고 또 집착하지 않는 공부를 한다면 점차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때 풀집 토굴에 살고 있는 내 제자가 있었다. 그해 우기에는 비가 지주 왔고 한번은 강풍이 불어 지붕의 반쪽이 날아가 버렸다. 그는 고치지도 않고 비가 들어오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수일이 지난 후 나는 그의 토굴에 대해 물었다. 그는 집착하지 않는 공부를 한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마치 물소의 냉정과 같아 지혜로운 공부라 할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인욕하고 이기적이 아니며 간소하게 잘 산다면 혜능대사의 지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물음 : 스님께서는 선정이나 지혜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에 대해 좀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선정과 지혜는 같이 작용한다. 처음엔 참선에 의해 마음이 고요해지며 이 고요함은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때만 그러하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 참선이 지혜를 가져와서 그대가 앉아 좌선을 할 때나 번잡한 시내를 돌아다닐 때나 그대의 마음은 항상 고요하게 된다.
네가 한때는 아이였고 지금은 어른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와 지금의 너는 같은가 다른가? 너는 같다고 대답할 수도 있고 측면에서 보아 다르다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이와 같은 이치로 선정과 지혜는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로 음식과 배설물을 들 수있다. 음식과 배설물은 같다고 볼 수도 있고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내 말에 집착하지 말라. 네 스스로 공부해서 그대 자신을 보라. 무슨 특별한 비법은 없다. 어떻게 집중하고 어떻게 지혜가 나오는지 관찰하다 보면 그대는 그대의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요즈음엔 많은 사람들이 말에 집착한다. 지혜를 공부한다는 이들은 선정을 닦는 이를 내려다보고 선정을 공부한다는 이들은 지혜 이전에 선정을 닦는 것이 필수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다. 선정과 지혜를 이런 식으로 생각치 말라.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네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물음 : 우리는 왜 길에 나가 바루를 들고 음식을 탁발하는 등의 고행을 계속해야 합니까?
답 : 그런 엄한 계율들은 우리를 청정케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게 걸식을 함으로써 음식을 더욱 약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우리가 더러움에서 벗어나 완전히 청정하다면 ‘어떻게 먹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런 형식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공부를 좀더 간편하게 하기 위해서 이다. 부처님은 그런 고된 계율들을 모든 승려들에게 다 필요해서 만드신 것은 아니고 엄격하게 수행을 원하는 자들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한 고된 계율은 외적인 공부를 도와 주고 정신적인 결단력이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계용은 자신의 수행을 위해 있는 것이니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상관할 바 없다. 그대의 마음을 주시하고 무엇이 그대의 공부를 돕는지를 관찰하라. 우리가 수행하는 처 소에서 지켜야 할 몇몇 계율도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 유익한 것들이다. 그 계율들은 승려들로 하여금 사는 곳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들의 수행이란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다.
물음 : 바루공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스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까? 스승으로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답 : 그래, 그 말이 옳다. 스승은 마땅히 그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대가 나를 비판하더라도 나는 관계치 않으니 무엇이던 그대가 원하는 대로 물으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록 스승일지라도 그에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만약 그런 외형적인 것에 완벽하다면 그대는 또 그러한 내 모습에 집착하게 될 것이니 그것 또한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도 가끔 제자들에게 이러이러한 것을 지키도록 하셨으면서도 당신께서는 다르게 행하셨다. 물론 스승에 대한 의문은 그대에게 도움이 된다. 다만 그대 자신의 반응을 관찰해야 한다. 지혜는 스스로 관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승으로부터 좋은 것을 취하되 항상 네 자신의 공부에 깨어 있어라.
만약 네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동안 내가 쉬고 있다면 이것이 너를 화나게 만드는가? 내가 설사 푸른 색을 붉다고 하고 남자를 여자라고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나를 따르지는 말라.
나의 스승 중 한 분은 음식을 아주 빨리, 소리를 내며 드셨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기분이 상했고 그로 인해 고민했지만 그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중에야 내가 그의 겉모습만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운전을 예로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은 이주 빨리 달리면서도 조심스레 하는데 어떤 이들은 천천히 하면서도 사고를 많이 낸다. 그러니 규율이나 외형적인 형식에 매달리지 말라.
만약 그대가 1할 정도의 시간을 남을 관찰하는 데 쓰고 9활의 시간으로 자신을 관찰한다면 바르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처음 아잔 통라트스님 밑에서 공부할 때 나는 그의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그 분은 가끔 괴이한 행동을 하거나 해서 사람들은 그가 미치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했고 또 제자들에게 아주 거칠게 대했다. 그러나 곁으로는 화내는 것처럼 보였어도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의 속엔 아무도 없었다.
그 스님은 죽는 순간까지 맑게 깨어 있었던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대가 외형적인 것만 본다면 그것은 비교하는 것이고 구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참된 공부가 아니며 또 그대가 완전한 사람, 완전한 스승을 찾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면 그대는 결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법을, 진리를 보도록 가르쳤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