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합니다’는 새로운 시작의 마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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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9년 12월 214호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엿새 앞둔 날 경기도 광주에서 일본군에 의해 끌려간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오후를 돌보며,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짓밟은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 이 같은 역사의 청산을 화두로 삼고 정진하는 혜진스님이 단식에 들어갔다. 종단의 현실을 멀리서 지켜보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이 단식이라는 고통을 선택했으리라 짐작된다.
이 스님은 10여 년 전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군에 입대했다. 전투 경찰에 배치됐고, 날마다 시위 현장에 투입됐다. 같은또래의 젊은이들을 증오와 타도의 대상으로 보던 날들은 이 젊은이의 삶을 바꾸었다. 왜 서로 보듬지 못하는가. 삭벌염의하고 중생에게 가기로 했다.
20대 초반에 누구나 겪었던 아픔을 이 스님은 보듬는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생활고와 병고, 외로움에 시달리던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고, 그리고 수요일이면 이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참회를 촉구하던 스님이다.
단식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겠다는 심정이 이 스님뿐이겠는가. 지금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불조의 혜명을 잇기 위한 정진이 있기에 그나마 불교의 빛은 이어지고 있다.
혜진스님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수행과 포교의 현장에서 우리 모두의 깊은 참회의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다. 그런데 왜 밀린 숙제를 이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처럼 새삼스러운가.
혜진스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밀린 숙제가 무엇인지 나름대로의 방안도 내놓았다. 조계종 승려들의 경제적 평등과 복지 혜택, 사찰 재정 공개와 신도들의 참여, 소외계층을 위한 인간 방생 정신의 회복, 종교로서의 자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도 내놓았다.
한 수행자의 뜨거운 애종심을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고 혜진스님의 마음, 아니 혜진스님이 대신 밝힌 불자들의 마음을 옮긴다.
“승가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제가 수행의 현장으로 삼고 있는 이 곳 ‘나눔의 집’에서 단식 정진에 들어가려 합니다. 오늘 저는 이 순간을 맞이하면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생각을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오늘날의 조계종 종단에는 내부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존재합니다. 모든 승려는 경제적인 평등과 복지 혜택을 누려야 합니다. 둘째, 신도들이 한 보시는 몇몇 승려의 재산이 아닙니다. 모든 재정은 투명해야 하며, 신도들은 이에 참여해야 합니다.” 새 총무원장을 뽑음으로써 조계종은 일단 안정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안정과 화합을 위한 여러 일들을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갖춘 것이지, 총무원장을 새로 뽑았다고 해서 곧장 안정을 이룬 것은 아니다. 깜깜한 밤중에 길을 잃고 헤매이다 뿌옇게 아침이 밝아오는 미명쯤에 서서 이정표하나 찾은 것에 불과하다.
새 총무원장 정대스님은 종지, 종풍을 진작하고 화합하는 종단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화합하는 종단을 위해 징계자의 대사면과 복권의 단행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미 사면에 대해서는 논의와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대스님은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과오를 참회하고 납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계신 분이 있다면 최대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또 11월 17일 혜암종정을 찾아 인사하고 해인사 방장 법전스님 등과도 만나 사면에 대해 갖고 있는 심중을 내비쳤다. “누구는 사면하고 누구는 묶어두는 식의 시면으로는 분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해 사면의 폭이 매우 넓음을 직설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징계를 당한 스님들을 무조건 풀어 주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정대스님의 말 가운데는 몇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과오를 참회해야 한다는 것이 첫째고, 징계 뒤에도 납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둘째다. 너무나 당연한 조건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재산 관련 징계자의 경우는 사면과 함께 사찰을 포함한 정재의 종단 등록이 필수적이다. 총무원장까지 지낸 한 사면 대상자와 가까운 한 스님은 “종단 정치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종도들이 원한다면 참회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해 정대스님의 사면론에 화답을 보냈다.
일부에서의 말처럼, “징계를 푸는 것은 종단을 혼란에 빠뜨린 사람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다”며 반해 의견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사면을 통해 종단을 안정시키고 궁극적으로 화합하자는 것이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 종단 사태의 경우, 대다수 징계자들이 정화개혁회의에 참여하며 혼란을 가중시켰음을 본다면, 사면은 종단 안정의 중요한 계기이다. 특히 징계가 종권을 둘러싼 다툼에서 보복적인 성격이 있었음을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이 징계자 사면의 적기이기도 하다.
사면과 관련해 유념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종단 안정의 차원에서 사면이 진행되는 만큼 사면 대상자를 염두에 두고 ‘누구는 풀어주고 누구는 묶어두기’ 위해 원칙이 세워져서는 안 된다. 자칫 사면 논의를 진행하며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시혜적 조치라는 인상을 줄 경우 문제를 풀기는커녕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논의는 집중해서 하되,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아야 한다. 정대스님의 대폭적이고 일괄사면의 방침을 밝히고 나선 것은 원로들과 중진들의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 후보로 나섰던 정대스님과 지선스님 모두 사면을 공약으로 내놓은 만큼 사면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매우 넓게 형성됐다. 그렇지만 업적 세우기식이거나 독단적인 진행은 곤란하다.
또 하나, 실추된 종단의 이미지를 청정종단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도 정대스님과 조계종도들의 과제다. 정대스님은 “수행종단이 되는 것이 개혁”이라고 했다. 불교에서의 개혁이란 개념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말이다.
불교는 불교의 전통과 정서에 맞는 방법이 있다. 또 분명한 지향점,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큰 뜻이 있다. 이미 정대스님은 선거공약에서 이 같은 목표를 분명히 했다.
“종단은 종단다워야 합니다. 수행 중심의 가풍을 크게 진작하고 율장과 청규 그리고 종헌종법의 정신이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선기가 발앙되고, 강원에는 논강이 치열하며, 청정 지계 수행이 이루어질 때 종단은 비로소 제 모습을 찾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인천人天의 사표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세계는 유위법에 의해 움직인다. 따라서 사회에 기여하는 가시적인 조계종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중생계의 작동 원리를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는 속에 성불의 큰 길이 있기 때문이다. 수행 잘하는 것이 자비와 둘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행의 감화력이 중생들에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중생계의 방법을 일정 정도 차용해야 한다. 전 고산 총무원장 당시 추진해왔던 불교사회의 제 개발과 불교시민사회운동단체에 대한지원 사업은 불교가 우리 사회에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다. 새 총무원장 정대스님이 고산 총무원장 당시 집행부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은 사업도 이어 가겠다는 뜻이다. 이들 사업과 단체들은 불교의 외호는 물론 불교 밖의 사람들을 불교로 들어오게 하는 진입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화합하고, 수행 잘하는 종단, 나아가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조계종상을 정립하는 것, 이것은 종도들은 물론 그 동안불교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던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참회에서 비롯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만큼 절박하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한 수행자의 단식 참회, 그런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