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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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 정호승
1999년 12월 214호
그림 속의 새 팔색조八色鳥는 그림 밖으로 날고 싶었다. 허구헌날 그림 속에 갇혀 제대로 날개 한 번 활짝 펴지 못하고 있자니 답랍해 죽을 지경이었다 팔색조는 단 한번 만이라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마음껏 푸른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자기를 그린 화가에게 그림 밖으로 날아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당신은 저를 날게 할 수도 있잖아요? 제발 저를 그림 밖으로 좀 끄집어내 주세요.”
팔색조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화가는 완강했다.
“안 돼. 넌 그림 속에 그렇게 앉아 있어. 그게 너의 운명이야.”
화가는 더 이상 말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팔색조는 너무나 날고 싶은 나머지 화가에게 다시 애원하는 말을 했다.
“한 번만이라도 좋아요. 단 한번만이라도 날게 해 주세요.”
“글쎄 안 된다니까 그래.”
화가는 화가 난다는 듯 힘껏 붓을 움켜쥐었다.
“한번만 더 그런 말을 하면 아예 널 이 붓으로 지워버릴 거야. 그러면 넌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거야 그래도 좋겠어?”
팔색조는 슬펐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림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자 눈물이 났다.
어느새 창 밖은 밤이었다. 밤하늘엔 별들이 찬란했다 팔색조는 눈물을 거두고 별들에게 물어보았다.
“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하늘 높이 떠 있을 수 있니? 난 정말 날고 싶단다. 나도 너희들처럼 하늘에 살고 싶단다. 마음껏 하늘을 한 번 날아보는 게 내 소원이란다.”
“글쎄, 우린 그걸 잘 몰라.”
팔색조는 별들이 스러지는 새벽녘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다가 북극성 한테 물어보았다.
“북극성님, 어떻게 하면 제가 그림 밖으로 날아갈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좀 가르쳐 주세요.”
“으음, 그건…”
북극성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또 참 쉬운 일이기도 하지. 네가 진정으로 누굴 사랑할 수만 있다면 그림 밖으로 날아갈 수 있단다.”
팔색조는 북극성의 말씀을 듣자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 싶었다. 평소에 누굴 미워해 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남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정말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 팔색조는 그림 속에 사는 모든 것들을 다 사랑했다. 나무도 풀도 바람도, 강아지도 사마귀도 여치도, 심지어는 도토리와 쥐와 개구리까지도 다 사랑했다. 그러나 팔색조는 그림 밖으로 날아갈 수가 없었다. 날개를 한번 펼쳐 보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림 밖에 사는 모든 이들, 별과 달과 구름과, 시계와 전화기와 인형과, 심지어 도둑고양이와 바퀴벌레까지도 사랑했다. 그래도 팔색조는 그림 밖으로 날아갈 수 없었다.
팔색조는 다시 슬픔에 빠졌다. 북극성을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 차 올랐다.
“북극성님,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사랑하는데도 그림 밖으로 날아갈 수가 없어요.”
“그건 네가 사랑할 수 있는 것들만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북극성은 자신을 원망하는 팔색조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네 스스로 깨닫는 거다.”
팔색조는 답답했다. 무엇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매일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림 밖 하늘은 푸르렀다. 들녘엔 신록이 우거져 있었다. 이웃집 처마 밑께 집을 지은 제비들은 입에 먹이를 물고 분주히 오고 갔다. 새끼들은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오면 입을 확확 벌리고 서로 달라고 야단이었다. 팔색조는 늘 부러운 눈으로 제비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하루는 어디에서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 하루종일 어미 제비가 보이지 않았다. 새끼들은 저녁 무렵쯤 되자 배가 고파 둥지 밖으로 몸을 거의 반쯤이나 내밀고 짹짹거렸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픈 탓이었을까, 제비 새끼 한 마리가 그만 몸의 균형을 잃고 둥지 밖으로 떨어졌다. 순간 팔색조는 자신도 모르게 그림 밖으로 날아갔다. 오직 새끼 제비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