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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를 맞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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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지묵 1987년 06월 64호
결제날이 기다려진다. 석달 해제 동안 도반들도 못 보고 공부를 짬지게 해보지 못했기 때문인가. 간혹 객실에서 만나서
“다음 철은 어디서 지낼거요?”하고 인삿말을 건넨다. 말사에서 토굴삼아 지낸다느니, 몸이 안 좋아 결제에 못들어가겠다느니, 또 어디 선방에서 더 눌러앉아 지낸다느니 한다.
“그때 함께 지낼 때 좋았어요.”하고 용맹정진 일을 꺼낸다. 눈이 소복이 쌓인 산사에서 장작도 싼더미같이 갈무리해 두고 쌀도 많겠다 그저 아무 걱정없이 마음 툭 놓고 7일 용맹정진을 보람있게 마친 이야기가 나온다.
“헌데, 도반이 입적한 건 마음에 안 좋아요.”
사실 마음에 걸리기는 내가 제일 먼저 꼽힐 것이다. 입적한 스님의 바로 옆 좌복에 내가 앉았었으니까. 간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에 유서도 내가 받아 썼다. 절에 돌아온 나는 입원 중인 그에게 편지로,
“죽을 때 어찌 생사에서 해탈하겠소?(眼老落時 作摩生脫)”하는 말을 썼다. 옆에서는 너무 심한 말같다고 했으나 수좌 본분사를 생각할 때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는 내게 그냥 빈종이 편지를 보내면서,
“밖은 은세계요.”하는 말만 써서 보냈다. 빈 종이 속에 많은 내용이 담긴 듯했다. 큰방에서 나는 빈 벽과 마주 앉아서 그의 빈 좌복에 눈길을 주곤 했다. 아, 그는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고…

결제는 단순히 시제적 사실이어서는 안 된다.
행주좌와 그 한 면만을 수행이라 고집하겠는가.
또다른 출발을 준비하는 결기로서 결제의 의미는 있다하겠다.

벽제 화장터에서 그의 유골을 습득해서 소원대로 영덕 동해 바다에 아침 일찍 유골을 뿌릴 때-이제사 그가 갔다는 생각에 울컥 목젖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는 우리 남은 도반들에게 큰 법문을 남기고 갔다. 육신은 이렇게 눈덩이 녹듯 쉽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눈앞에 보여 주었다. 공부를 매지게 하라고 몸으로 법문하고 갔다
입적한 도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 육신도 내 것일 수 없는데 걸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제 자신이 돌아봐진다.
엊그제는 연중 행사로 치르는 삼월불사 보살계단에 필요한 방(榜)을 짜는 데에 동참하였다. 말하자면 소임을 나눠 분담하는 육색방(六色榜)이다. 큰방 안에 좀 늦게 들어갔는데 청산(靑山) 쪽에 모르고 앉았다. 응당 선방 대중이니 나는 백운(白雲) 쪽에 앉아야 할 일이었다. 구름처럼 떠도는 만년 객승이 될터이니까. 삭발하고 목욕한 대중들이 여법히 가사 장삼 수한 채 가득 방안에 차 있는 모습을 오랫만에 보고 기뻤다. 그 동안 토굴에서 멋대로 자유롭게 지낸다고 불규칙하게 기거한 탓이리라. 역시 결제 때는 대중과 함께 지내야지 싶다. 그대로가 법문이다.
옛 스님들이 세 가지 인연을 들어 도를 이루는 지름길을 밝혀 놓았다.
첫째, 좋은 도량이다. 공부할 장소가 여법(如法)한 아란야라야 한다. 적정처(寂靜處)에서 수행해야 득력한다고 하였다. 물론 특수한 예는 인정한다. 역경(逆境) 공부로 시끄러운 시장 속 같은 곳에서도 여여(如如)한 이들도 있으나 우리 범부로서는 흉내도 내기 힘들다. 진묵대사 같은 이는 능히 가능하셨으니 상근기에게 나 맞을 것이다.
둘째, 좋은 스승이다. 이마 요즘 같은 수좌계에서는 더욱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근래에 어르신 스님네가 줄이어 입적하시어 빈 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살활(殺活)을 자유자재료 쓰는 칼을 쥔, 눈 푸른 선지식이 하필 이때만 필요하겠는가. 초신납자들은 조실 스님의 법력을 쫓아 방부 드리려고 한다. 허나, 지객은 초심자들을 덜 받으려고 한다. 10년 이상의 구참 납자들은 제스스로 공부할 힘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터인데 구참 쪽을 대우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분위기를 맞추려고 그런다고 한다. 초심자가 많을 때에 공부 분위기가 염려된다는 것 일종의 기우일 뿐이다. 조실 스님이 매지게 법을 세워 나간다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초심자는 이래저래 방부 드리기가 어렵다. 초십자들을 잘 대접하는 조실 스님이 기디려진다.
셋째, 좋은 도반이다. 어느 분은,
“도반은 공부하는 데에 그 전부다.“ 라고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도반을 잘 만나는 일만큼 귀한 인연은 없다. 격려가 되고 자극제가 된다. 흉허물 없이 제 단점을 바로 지적해 주는 도반이 진짜 반반이리라. 하여튼, 이런 곳을 찾아가서 객실에서 방부 드리려고 할 때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들리는 말로는 이 절 선방 대중 수효가 다 찼다고 하니 더욱 초조해진다.
“저어, 방부 드리실려면 입방원서를 쓰시지요.”
객실에서 방부 드릴 때마다 쓰는 입방 원서를 또 지객이 내민다. 지겹다. 그래도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조금 딴 눈치를 채는 날이면 지객의 눈 밖에 나서,
“대중 스님이 스님 방부를 원치 않습니다.”하고 지객이 내쫓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진 잘 하는 수좌라고 해도 한번 지객의 눈 밖에 나는 날이면 쫓겨난다. 지객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기껏 찾아간 선방에서 방부를 받아주지 않아 그냥 걸망을 지고 나갈 때 쓸쓸한 뒷맛을 맛본다. 이유가 무엇이든 헛걸음 했기 때문에 허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전 이야기 같은 일화가 있다. 해인사에서 선방 방부 드릴 조건으로 외야 할 게 있었다. 해인총림 초기 시절이니 20년도 훨씬 넘은 때 이야기다.
능엄주(棱嚴呪)를 다 외는 일이다. 또 시식(施食)도 외게 하였을 때가 있었다. 문자를 접어두고 오로지 화두 하나로 선방에 들어갈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수좌로서 최소한 마장(魔障)을 물리칠 방편이 필요했고 이웃을 위한 염불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방부 드리기 위해서 객실에서 모두 능엄주를 외던 선배 스님들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전설 같이 들린다. 요즘 능엄주를 외야 방부 받는다고 하면 이를 외기 위해 기를 쓰는 수좌가 몇이나 될까.)
방부가 결정되어 큰방 대중 앞에 절을 올리는 절차가 끝나야 안심이 된다. 선방에서 좌복 자리를 정해 주고 간물장을 내줘서 걸망을 풀어 놓게 하는 일 등은 지객이 다 알아서 해준다.
긴장이 선다. 이번 철은 좀더 잘 지내야지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대개는 낯익으나 새로운 도반들이 섞여 어울린 탓인지 분위기도 영 달라진다. 누구는 한철 석달동안 묵언(默言) 수좌로 끝내 입을 닫고 침묵 속에서 정진하였는데 다시 몇 사람이 묵언 수좌로 늘고, 혹은 눕지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하는 패가 몇이고 오후불식(午後不食)하는 율사(律師)가 더 생기고 하여, 철마다 모이는 수좌들이 다르듯이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진다.
한번은 용맹정진 준비로 방 짜는 날 밤이었다. 그날은 되게 웃는 일도 많다. 정군 죽비로 경책 쓰는 법을 일러주는 과정에서 웃음이 많이 터져나온다. 헌데, 한 스님이 샌드페이퍼로 잘 닦은 호미 한 자루를 들고 와 좌복 곁에 놓았다.
이 모양을 유나 스님께서 보고,
“그 호미는 어떤 것이요?”하고 물으셨다.
그는 학인이었다. 7일 용맹정진에는 누구나 동참할 수 있기 때문에 강원 학인들도 선방 대중과 정진한다.
“저는… 호미가 곁에 있어야 공부가 잘됩니다. 화두가 호미거든요.”
학인 스님의 대답이 끝나자, 유나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개가 화두인 사람이 이 가운데서도 많아요. 그럼, 모두 개를 한 마리씩 데려다놓고 싶어하면 그렇도록 해야 합니까? 또, 도끼가 화두인 사람은 도끼를 곁에 갖다놓고 공부해야 합니까?”
이렇게 해서 일단락이 지어진 일이 있다. 말뚝 신심이 나서 불같은 성미로 성불을 바라다가 대개는 꺾이고 몸에 병을 입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저 덤덤히 표 안나게 공부하는 수좌들이 실속이 있는 편이다. 오래 지내보는 동안 보아 알 수 있는 일이다.

결제 전에는 속담처럼, “여름은 초파일 봐주고 겨울은 김장을 봐줘야 살 자격이 있다”고 하지만 반드시 지켜지는 형편이 아니다. 제가 결제하고 살 절에 도움 주는 일이라기 보다 모두 자신들을 위해 직접 필요한 울력인데도 그냥 무덤덤히 관심이 적은 점은 고쳐져야 할 것이다. 쌀을 탁발해서 석달 식량 대고 공부했던 옛스님들 일은 잊을 수 없다. 모두 우리 노스님네가 겪은 경험담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다.
정진 여가에 울력해서 건강을 돕고 함께 울력하는 속에서 화합심을 기르는 가풍도 살려야 한다. 절 공양주가 마을 사람들 손으로 차츰 넘어가서 으례 스님들은 안 할 일로 치는 경우도 흔하다. 공양주가 복짓고 신심 기르는 데에서 으뜸인데도 차츰 스님들이 그것에서 멀어져가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큰 절에서는 행자 교육으로 행자들이 공양주를 하고 있으나 독립된 선방에서는 차츰 마을 사람의 공양주로 바뀌고 있는 경향이다.
한편으로, 보살행을 닦는 수좌가 나와서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결재 전날 방을 짤 때 다각(茶角). 화대(火台), 정통(淨桶)을 비롯해서 위로는 열중(悅衆), 청중(淸衆)이 곧 나온다. 공부하려면, 힘든 소임이나 신경 많이 쓰는 책임자는 그만큼 부담이 커서 피하려고 하는데 의외로 쉽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대중을 시봉하거나 통솔하는 소임자는 나와야 한다. 또 방 짜기에도 필요하다. 스스로 제 공부를 늦추고 도반들의 공부를 생각해서 보살행을 나선 것이다. 결제 때마다 이런 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결제날이 가까와지면 새로 출가하는 기분이 난다. 늘 새롭다. 그렇다. 결제가 있에 운수납자의 기분이 난다. 3년 결제나 무문관(無門關) 6년 혹은 종신선원(終身禪院)이 없지 않으나, 이는 고봉 스님의 사관(死關)이지 일반 결제가 될 리없다. 일반 대중에게는 계절의 바뀜이 그러하듯이, 변화하는 결제와 해제 날짜에 늘 기대가 간다. 해제라고 해서 그저 먹고 노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정진하는 날이 아닌가. 출가수행길에 해제, 결제는 마치 달이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변화만큼이나 뜻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