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연극과 불교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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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김미미
1987년 06월 64호
동양, 중동 제국(中東諸國)을 제외한 일반적인 아시아로서의 동양 문화는 흔히들 인도계와 중국계의 양대 지류로 나눈다. 구체적으로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파키스탄, 라오스 등을 인도계라 한다면, 한국을 위시한 일본, 월남 등지는 중국계 문화권에 포함된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이 학문, 예술, 종교, 과학, 법률, 경제, 풍속 등 인류의 정신적, 사회적 활동의 광범위한 제반 분야를 내포하는 까닭에, 각자의 독특한 속성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지리적, 자연적으로 인접한 지역에 분포된 아시아제국의 문화 형태를 칼로 무우 베듯 잘라내어 따로이 보긴 어렵다. 더우기 종교가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을진대는 더욱 그렇다. 문화의 제요소 중에서도 종교만큼 확산력이 강한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는 불교라는 커다란 공통 분모로 이루어진 문화의 집합체라 하겠다. 고로 불교 문화의 토양 아래 성장한 각국의 예술 역시 부인할 수 없는 문화적 동질성을 은연중에 갖게 되는 것이다.
일찌기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인도의 춤은 더 이상 인도에 남아 있지 않다고 개탄했다. 전통 무용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성현 석가를 배출하고 그의 사상이 아시아를 풍미하며 무수한 현자와 부처를 낳게한 불교 역시 현재 7억 인도 인구의 1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만이 신봉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쉽게 짐작이 가는 말이다. 그리하여 애초의 아름답고도 독특한 인도 정신은 오히려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Bail 島) 전통 무용에서, 한국의 청명한 산사(山寺)의 새벽 예불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 불교 연극의 활성화 내지 본격적인 불교 연극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같은 문화의 영역이랄 수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연계성을 연극이라는 예술의 형태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물론 오늘날 그들 중에는 인도처럼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남지 않은 불교 인구를 가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스리랑카나 태국, 일본처럼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도인 나라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현재 그들이 불교도냐 아니냐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동일한 문화권에서의 그들의 연극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또 어떻게 존재해 왔는가의 문제다. 그러므로 한국의 문화를 따로이 독립시켜 독자성을 주장하는 견지에서 벗어나 같은 시장, 종교, 철학의 맥으로 살펴봄으로써 한국 불교 연극의 희망적 미래를 시사받는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인도의 연극사는 곧 불교 연극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원 2세기경 당시 불교의 보호자였던 쿠샨 왕조의 궁정 시인으로 활약한 아스바고샤(馬鳴)가 남긴 최초의 산스크리트 희곡인 ‘사리푸트라 푸라카라나’가 바로 그것이다. 세련된 시어(詩語)와 풍부한 비유로 가득찬 ‘붓다차리타(佛所行贊)’의 저자요, 대승 불교 사상의 번뜩이는 시각을 담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등 많은 불교 논서를 남긴 마명대사가 인도 최초의 희곡 작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연극의 귀재 칼리다사가 ‘사문탈라’로 인도 연극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명망을 누리던 때보다 200여년이나 앞선 시대에, 오늘날 인도 고전극의 전형이라 평가받는 불교 연극이 아스바고샤, 즉 마명대사의 손에 의해 엄연히 탈고되었던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의 현존 희곡으로 가장 오래된 ‘사리푸트라 푸라카라나’극의 내용은 사리푸트라(舍利佛)와 그의 친구 목갈라나(目運)가 석가에 의해서 불문에 귀의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특유의 미려한 문체와 종교적 정열로 일관되어 있으며 인도 연극사에서 이 작품이 가지는 의의는 실로 크다.
그후 3세기경 베다에 근간을 둔 완벽하고도 엄격한 연극 이론서 ‘나티아샤스트라’가 바라타에 의해 완성되면서 인도의 연극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기존의 4베다와 더불어 제5의 베다화 불리우는 ‘나티아샤스트라’는 음악, 무용, 연출, 연기, 의상, 무대 미술, 극장, 배우, 관객론으로부터 수사학(修辭學), 운률론(韻律論), 시론(詩論) 등 무척 다양한 무대 예술의 제분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나티아샤스트라’는 후일 칼리다사를 비롯하여 사드라카, 비사카다타 등의 작품 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오랫동안 산스크리트 연극의 텍스트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산스크리트 연극이 모두 불교 연극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산스크리트 연극은 신의 찬가집인 성전(聖典) ‘베다’에서 출발했고, 공연 역시 신들에 대한 제례나 궁중의 혼인, 개선 축하 등 특별한 경사나 의식 때 행하여 지는 등 특별히 불교와 더불어 뻗어나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베다류의 연극이건 비(非)베다류의 불교극이건 간에 인도 연극에는 그들만이 가지는 커다란 공통점들이 있다. 우선 구조적인 면에 있어 인도 연극은 시와 무용, 그리고 음악으로 표현의 주를 이루며, 특히 그들은 극도로 양식화된 신체 언어의 약속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극중 인물의 심리 상태에 따라 배우는 13가지의 머리의 움직임과, 36종류의 시선, 9가지의 눈동자의 움직임, 그리고 64개의 손동작 등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손동작이다. 인도 연극, 더 나아야 동양 연극에서 이 손동작이 가지는 중요성을 말하기 앞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돕기 위해 잠시 남국의 전통 무용을 떠올려 보자. 우리들은 텔레비전 화면이나 원색의 잡지 화보란에서 짙은 화장을 한 남방의 무희가 길다란 손톱을 낀 손가락을 묘하게 움직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손가락 하나하나마다 최대한의 긴장이 살아 꿈틀대며 마치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듯한 손바닥과 손가락의 팽팽한 그 움직임을 말이다. 그것은 분주히 몸을 움직여 표현하는 서구의 무용이 부러움의 눈길로 감탄하는 동양 특유의 정교하고 풍부한 예술 언어이다.
인도나 태국, 버마, 라오스 등지의 무용이 담순한 의식무가 아닌 거의 무언극에 가까운 무용극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신체 언어가 가지는 약속의 체계(convention)를 관객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어로 ‘무드라’ (Mudra,手式語, 혹은 手印)라 불리우는 이들 다양한 손동작은 남방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의 전통 예술 속에 남아 있다. 특히 중국 전통극 배우의 연기 수련에 있어 무드라는 다른 네 가지 요소와 함께 오법(五法)이라 하여 매우 중요한 보조 언어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외에도 무드라가 불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되는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불상의 수인(手印)에서 나타나는 상징성이다. 예를 들어 왼쪽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의 지권인(智拳印), 혹은 엄지와 검지를 모아 동그랗게 만들어 왼손을 아래에 오른손은 그 바로 윗쪽에 손바닥이 밖을 향해 펴든 전법륜인(轉法輪印) 등 일반인은 아무리 보아도 구분이 어려운 수인을 단번에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 혹은 석가여래 등으로 척척 구분해 내는 학자나 스님네는 바로 이 무드라가 상징하는 숭고한 종교적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정과 지사(指事)의 의미를 함께 지닌 무드라는 동양 문화만이 지닌 독자적인 영역이라 하겠다.
무드라의 이야기가 조금 길었지만 그 내용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인도극은 불교극, 비불교극을 떠나 일관된 특성을 지닌다. 즉 현세의 행위나 사건이 우연이 아니고, 전생의 업이나 공덕에 의한 인과라는 철저한 인과론과 윤회론의 기저아래 선인선보, 악인악보의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동양 연극의 줄거리가 가지는 이런 공통된 특성을 빗대어 어느 학자는 ‘동양 연극에 있어 진정한 의미의 비극은 없다’고 하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운명의 힘에 의해 시련을 겪는 서양적 의미의 비극은 동양 연극에 있어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동양 연극의 종말은 언제나 ‘해피 엔드’다. 비록 오늘은 괴롭고 고달프더라도 행복한 내일을 기다리는 낙천적인 동양인의 사상 속에선 비극이란 진정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동양 연극의 플롯이 가지는 보편적 특성은 ‘책임을 거스리는 자에게는 책임을, 사랑을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랑을 가르쳐 주며, 버릇없고 제멋대로 하는 자들을 징계하고, 수양을 하려는 자들에게는 극기심을 북돋워 주며, 겁쟁이에게는 용기를, 영웅적인 인물에게는 에너지를, 지식이 부족한 자들에게는 교화를, 학식있는 자에게는 지혜를 준다’라며 연극의 교훈성을 강조한 나티아샤스트라의 제1장으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인도 문화권에 속한 아시아 각국의 민속 연희중에는 특기할 만한 것이 많은데 그중 제의적 성격이 가장 강하게 살아 있는 티벳, 몽고 지역의 민속을 잠시 살펴본다.
티벳이나 몽고 지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해 있고, 얼굴 생김새마저도 꼭 우리나라 사람을 닮아 어딘지 서구적 이미지를 풍기는 인도인들보다 더욱 친밀하다. 그러나 문자나 건축, 예술 등 문화적으로 볼 때 그들은 한자를 쓰는 중국 문화권이 아니라 인도 문화권에 보다 가깝다. 국민의 대부분이 라마교를 신봉하고 신앙심 또한 타국의 추종을 불허할 만치 돈독한 그들은 중공의 치하에서도 자치적으로 그들의 종교 활동을 벌일 뿐 아니라, 상당수는 종교적 지도자를 따라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혹은 태국의 북부로 이주하여 그 독자적인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티벳어로 무상(無上), 승자(勝者) 동의 뜻을 가진 라마는 불교의 일파로 대승불교에 속했던 비밀불교(밀교)가 티벳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풍속 및 신앙과 동화하여 발달한 종교이다.
매년 라마교의 제일(祭日)을 기해 사원의 안뜰에 거대한 탱화를 모셔 놓고(3월 불사 때 해인사 앞마당에 모겼던 패불(掛佛)을 연상하면 된다) 거행되는 그들의 의식은 징, 나팔, 방울, 큰북 등의 악기와 더불어 승려의 독경으로 시작된다. 이어 머리 전체가 들어갈 만큼 큰 가면을 뒤집어쓴 무자(舞者)가 등장하여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게 되는데 그 순서는 서무(序舞), 공양무(供養舞), 항마무(降魔舞) 등의 순이다. 우리의 봉산 탈춤의 취발이나 먹중의 춤사위를 연상케 하지만 의식무이니만치 전체적으로 장중하고 근엄한 분위기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여유있는 풍경을 상상하면 된다. 이러한 의식에 앞서 대개는 노인이나 소귀(小鬼) 등의 가면을 쓴 광대가 등장해 장내의 분위기도 잡고 정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익살과 재담에 관중, 즉 신도들은 더욱 흥미진진해져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승려에 의해 주도되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점잖고 엄숙한 스님이지만 이날만은 축제의 주빈으로 멋지게 신도들과 어우러져 한판 향연을 벌이는 것이다. 숙연한 우리네 사찰 의식과 비교해 볼 때 여간 신명나는 불사가 아니다.
이상으로 간단하나마 인도와 티벳을 중심으로 인도 문화권의 전통 연극, 더 나아가 불교적 민속 연희의 갖가지 표정에 대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