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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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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2001년 11월 237호
태평향국로공사太平鄕國路空하니
귀흥유유사막애歸興悠悠思莫涯로다
살수도가하소유撒手到家何所有오
유리보전쇄섬화琉璃寶殿鎖蟾華로다
태평스런 나라에 길이 멀리 트이어
고향 가는 흥에 겨워 들뜬 생각 끝없어라.
손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무엇이 있던가?
유리보전에 달빛만이 어리었구나.

낙포원안洛浦元安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학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가 어떠합니까?”
“집도 부서지고 사람도 없어졌거늘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그렇다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이에 선사는 말했습니다.
“뜰 앞의 남은 눈은 햇볕이 녹여 주겠지만 방 안의 먼지는 누가 쓸어 주겠는가?”
낙포원안 선사는 임제 스님이 그 근기를 알아보고 곁에 두고 싶어 했으나 원안 스님 스스로가 인연이 아님을 알고 떠나 버립니다. 그리하여 협산선회夾山善會 선사의 회상으로 갑니다.
가는 도중 무덤 사이에서 집을 짓고는 그대로 머물러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아챈 협산은 원안에게 사람을 보내 데려 오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해질 무렵 원안이 도착하였습니다. 그러자 도리어 크게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닭이 봉황의 둥지로 들어왔으니 네 자리가 아니다. 썩 나가거라.”“먼 곳에서 덕화德化를 입고자 찾아왔으니 한번 지도해 주십시오.”“눈 앞에 너도 없고 이 자리에는 나도 없다.”
“틀렸습니다.”
“그만! 그만! 구름과 달은 같으나 개울과 산은 제각기 다르다. 그대가 천하 사람들의 혀 끝 자르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찌 말을 시킬 수 있겠는가?”이에 원안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으니 협산 선사가 주장자로 내리쳤습니다.
그로부터 열심히 정진하여 안목이 열렸고 협산 선사가 열반에 든 뒤에는 그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 낙포지방으로 옮겨 머물고 있을 때 어떤 납자가 찾아와 이 ‘고향 가는 길’을 물었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약산유엄藥山惟儼 선사에게도 있습니다.
약산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학인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그대의 부모는 온 몸이 벌겋게 부풀어 올라 가시밭 속에 누워 있거늘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려고 하는가?”“그렇다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아니다. 가거라. 그대가 만일 고향으로 가겠다면 나에게 양식 끊는 방법이 있으니 일러 주리라.”“그렇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두 차례 식당에 들어가도 쌀 한톨도 씹지 말라.” 어쨌거나 선지식들은 제자들의 고향행에 대하여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인정에 끌리어 도심道心이 성글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자명慈明 선사도 마조 스님도 제자들에게 이를 당부한 시詩가 종문宗門에 전해오고 있습니다.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 선善 선사는 석상사石霜寺 자명慈明 스님 밑에서 시자로 있으면서 공부의 경지를 인정 받았습니다. 취암가진翠巖可眞 스님이 그를 높이 평가한 뒤로부터 총림에서는 선시자善侍者라고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명 선사에게 하직을 고하고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자명 선사는 이렇게 만류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한 톨에 일곱 근이나 되는 쌀로 지은 밥이(七斤米飯) 화로에서 꺼내보니 호떡이로세.(出胡餠)여기를 떠나간 후에는(自此一別) 우물 속에 떨어진 저울추로다.(稱鎚落井)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의 귀향시歸鄕詩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제자를 거느린 선문禪門의 종장宗匠으로서 그리고 강서江西지방을 대표하는 선지식으로서 이름을 날리던 선사께서 고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동네에서 ‘큰스님 왔다’고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나왔던 그의 이웃에 살았던 한 노파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대단한 양반이 온 줄 알았더니 방앗간집 마씨네 둘째아들 녀석 아니냐?”이 소리를 듣고는 선사께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글을 남기고는 강서로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권군막환향勸君莫還鄕하라. 환향도불성還鄕道不成니라.
계변노파자溪邊老婆子는 환아구시명喚我舊時名니라.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고향에는 가지 말라.
고향에서는 도를 이룰 수가 없나니라.
개울가의 할머니는 나의 옛이름을 부르더구나.

이와 반대로 어떤 납자가 ‘같은 고향 사람’이라면서 철면鐵面 선사를 찾아오자 그를 문 밖에서 쫓아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명주明州 땅의 계하덕굉啓霞德宏 선사는 인품이 강직하여 쓸데없이 말하거나 웃지를 않으니 총림에서는 ‘철면鐵面’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법보전法寶傳》 3권을 남겼습니다.
이 책은 종문宗門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모두 보였는데 읽는 사람마다 종지宗旨를 알 수 있는 책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지나가는 객을 만나기만 하면 으레 ‘공부가 얼마나 되었나’ 하고 무게를 달아보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굉 선사는 주장자를 끌고 걸어가면서 말했습니다.
“와서 참선하여 도는 배우지 않고 고향 사람은 알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그러자 그 스님이 머뭇머뭇하니 주장자로 후려쳐 내쫓아 버렸습니다.

정말 출가자가 마음에 두어야 할 고향은 세간인연의 고향이 아니라 출세간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법성게法性偈〉에서는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라고 하여 수행자가 돌아가야할 곳은 진리의 고향이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즉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본래 모습’이 우리 출가자들의 진정한 고향이라 하겠습니다.

낙포원안에게 어떤 납자가 ‘학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가 어떠합니까?’라고 하니‘집도 부서지고 사람도 없어졌거늘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려는가?’라고 하자 ‘그렇다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뜰 앞의 남은 눈은 햇볕이 녹여 주겠지만방 안의 먼지는 누가 쓸어 주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취암종翠岩宗 선사는 이렇게 염拈하였습니다.
“그 납자는 앞으로는 마을을 꾸미지 못했고 뒤로는 가게를 꾸미지 못했는데 이는 낙포가 그에게 곧은 길을 지시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납자가 그렇게 묻는 것을 내가 보았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고서 입을 열려고 한다면 바로 등줄기를 후려칠 것이다.
만약 그가 살아 있는 놈이라면 뼈를 부수고 몸을 갈아 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은 말해 보십시오.
낙포가 그 납자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학인에게 ‘집은 부서져서 없고 사람도 죽고 없는데 어디로 가려는가’라고 하니 ‘가지 않겠다’고 하자 ‘뜰 앞의 남은 눈은 햇볕이 녹여 주겠지만 방 안의 먼지는 누가 쓸어 주겠는가?’고 했는데어디가 그 납자에게 길을 가르쳐 준 곳입니까?
만약 이것을 제대로 안다면 손을 털고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지만만일 알지 못한다면 발걸음 옮기는 것을 더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망가파역망귀人亡家破亦忘歸하니
만실홍진소자희滿室紅塵掃者稀로다.
홍일소빙축류수紅日消氷逐流水하니
부지수위엄시비不知誰爲掩柴扉오.
사람 없고 집 망하여 돌아갈 줄도 잊었으니
방 안에 가득한 먼지를 쓸어 주는 이 드물다.
햇살이 얼음 녹여 물을 따라 흘러갔으나
뉘라서 그를 위해 사립문을 닫아 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