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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도 없었던 행자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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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종성 1999년 12월 214호
일반적으로 출가한 스님들이 정식으로 수계를 하기 전에는 누구나 행자시절을 거쳐야 하지만 나는 행자과정을 겪지 않고 바로 계를 받고 출가사문이 되었으니 거기에는 까닭에 있다. 나는 출가 전에 우주와 인생의 근본인 마음에 대하여 깊이 의심하던 가운데, 스물다섯에 흘연히 그 의심을 타파하고서 당시 내소사 소래선림에 계시던 호남의 선지식이신 해안 선사를 입참하였다. 해안선사는 선지가 깊고, 강경설법에 능하셨으며, 문장도학이 경했던 선풍도골로서 근대의 대선지식 학명선사로부터 받은 “은산철벽을 뚫어야 산다”는 화두를 타파하고 인가를 받은 유명한 선사이셨다. 입실하자 선사께서 나에게 곧바로 “임제선사가 황벽선사에게 30방 맞고 깨친 소식이 무엇인가” 물으시기에 나는 일언지하에 “무엇”이라고 답을 하였더니 “올커니!”하며 수긍하시고 크게 기뻐하시며 인가를 하시고 전법게까지 써 주셨다.
그 후 선사께서는 거사였던 나를 당신 혼자만 기거하시는 서래선림西來禪林의 토굴에서 함께 지낼 것을 각별히 권유하셨다.
이 때부터 나는 거사의 몸으로서 선사를 모시고 지내면서 당시 선사께서 강의하신 금강경 원고를 교정하였으며, 선사께서 나에게 서문을 쓰도록 명하셨으나 나는 후학으로서 외람된 일이라 극구 사양하였다. 선사께서 노령인데도 부안군 주산면 소산리에 소재한 나의 거처에 찾아오셔서 묵고 가시기도 하였고, 때로는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세간에 있으면서도 저렇게 큰 공부를 성취하였는데 너희 놈은 밥만 축내고 무엇들 하느냐?”고 추상같이 경책하셨다.
이처럼 선사께서는 나에게 각별한 관심과 은혜를 주셨으나 그 때 나는 선사께 무한히 감사를 드리면서도 제방의 선지식 스님들을 두루 입참하고자 길을 떠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차 내 나이 서른 일곱이 되던 여름에 당시 일본에 계시던 백양사의 서옹선사-당시는 석호 선사였음-께서 돌아오셨다는 전갈을 받고서 호남의 생불로 추앙받던 선사를 한번 친견하고자 마음먹었다. 그 해 유월에 찾아 뵙고 입실하여 그간의 공부 견처를 말씀드렸더니 선사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공부를 많이 했으나 아직 다 된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해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때 나는 “아, 이 이상의 공부가 있는 모양이로구나!” 생각하고 선사의 말씀을 받들어서 선사 문하에서 공부를 더하기로 마음먹었다.
선사께서는 다음달 칠월 보름 곧 백종날 해제일에 바로 계를 받도록 명하시었으니, 이렇게 해서 나는 행자 시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출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것은 행자시절을 거치지 않고 출가했다고 자랑 삼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격 밖의 한 소식을 깨치고자 하면 일체의 차별과 지위 계급의 형식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행자시절은 출가인이 초발심의 뜻을 굳게 세우는 데 매우 필요한 과정이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세간에서 나 홀로 공부하고 참구하던 이야기로 대신하고자 한다.
10대 이전의 나의 어린 시절은 전통적인 유교 가문의 엄하신 할아버지 슬하에서 한문 공부를 하며, 통감과 고문진보 등을 다 외우며 지냈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장차 큰 유학자로 만들기를 원하셨기에 머리도 단발을 하지 못하고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열한살에 비로소 아버지께서 할아버지 몰래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단발을 하자 할아버지는 손자가 왜놈이 다 됐다고 눈물을 흘리며 몹시 상심하셨다.
그 뒤 초등학교 4, 5학년 시절 춘원의 「사랑」과 박계주의 「순애보」를 읽고서 비로소 숭고한 종교 정신에 깊은 감회를 받았다. 그 때 기독교의 자기 헌신의 박애 사상과 불교에서 부아자비의 보살사상은 내가 종교에 눈을 뜨는 아주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학문을 크게 하여 입신 출세를 하여 가문을 빛내고 세상을 다스리는 큰 경륜을 펴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진실한 삶은 저와 같은 종교 정신으로 사는데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 뒤로 나의 중·고둥학교 시절은 해방 직후부터 6.25 직전의 시기로써 청년 학생들 사이에서 마르크스유물론이 풍미하던 시기였다. 나도 그 때 사상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였다. 우주와 인생의 근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기독교서적도 공부하고, 마르크스 자본론도 탐독하였다. 그런데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유섬唯心 사상이야말로 저러한 불합리한 사상을 지양한 절대 진리임을 알게 되었다. 일체가 마음이 지은 바이니 그 마음만 바로 알고 깨달으면 우주와 내가 하나의 마음으로서 본래로 영원한 광명과 영원한 생명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마음의 실상을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찾아보려고 대학 시절 선학禪學 서적을 읽게 되었다.
참으로 초목와석 마음으로써 방광설법放光說法을 하고 있으며, 초롱초롱하고 고요하며, 본디 신령스럽고 밝은 나의 마음은 무엇인가 크게 의심이 되었다. 이러한 의심을 가지고 칠일칠야 식음을 전폐하고 참구하던 가운데 상기가 되어 대열병을 앓다가 다시 의심을 단전에 내려서 한번 조식하던 찰나 그 칠통 같던 의심이 타파되었으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희열과 광명이 내 몸과 마음과 우주에 충만하고 있음을 실제로 체득하였던 것이다. 그때 나이 스물다섯. 어느 선지식에게서 직접 화두 공부를 배운 족 없이 세간서 나 홀로 우주와 인생의 근본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의심하다가 이와 같이 공부를 성취하였음을 간략히 밝혀서, 뒤에 공부하는 이들이 노고를 더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