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곧 절이다. 그 곳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았어도 산은 절이다. 불문에 들어 부처를 이루겠다며 출가하는 것을 입산이라고 한다. 산이 곧 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교와 산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산은 불교라는 특정 종교와만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도교에서의 산은 신선이 사는 거룩한 곳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산은 성소聖所였다. 단군신화의 발상지는 산, 태백산 신단수 아래이다. 신화에 따른다면, 우리네 삶이 시작된 곳은 산이다. 죽어 묻히는 곳도 산이다.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 교수에 의하면, “산은 하늘도 아니면서 땅만일 수도 없는 매개적 기능의 자리”이며, “그 산이라 이름지워진 자리는 일상의 공간이 지니는 동질성이 단절되거나 깨지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산과 한국인의 종교’) 하늘과 땅을 잇는, 일상을 벗어난 종교성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단군신화에 나타난 산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땅 위에서의 척박함, 그래서 불가능한 완전한 삶에의 꿈이 하늘로 치솟아, 그것을 헤아려 땅으로의 하강을 의도하는 신의神意와의 만남을 이루어 사람다웁고 삶다웁기를 이루려는 기원, 해답에의 출구를 찾아 거기에서 더 이상 문제없음을 알고 그렇게 사는 사람의 끝없는 되태어남을 기원하는 간절함, 그것이다.”(위의 글에서 인용)예수님도 산중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기록이 성경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산은 동서의 다름을 넘어 신성한 곳으로써 인류의 유전자에 인식되어 있음을 짐작케 해 준다.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을 뚫어 도로(국가지원 지방도로 59호선)를 내겠다고 해서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있는 스님들을 거리에 내몰더니 이번에는 국립공원 북한산에 길이 4㎞나 되는 터널을 뚫어 길을 내겠다는 계획을 건설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다. 수락산과 불암산에도 터널을 뚫는다는 계획이다. 건설교통부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구간 가운데 경기도 고양시 오금동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25.3㎞에 왕복 8차선, 시속 100㎞의 길을 내면서, 이 구간 중 북한산국립공원 내의 사패산과 불암산, 수락산에 터널을 뚫는다. 시공사는 9월 초 착공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반대여론에 밀려 착공을 미루고 있다. 그러나 언제 착공할지 몰라 사찰과 지역주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교통 수요에 따른 도로 개설이라는 정부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 민족이 신성성의 장소로 여기는 산을 파헤쳐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산을 벗어난 우회 구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터널과 도로 개설 구간의 400m 안쪽에 위치한 사찰만도 30곳에 이른다. 특히 회룡사는 비구니 선원이 있는 곳으로, 안거 기간이 아니어도 납자들이 깃드는 수행도량이다.
문학평론가 김우창 교수(고려대 영문과)는 ‘산의 시학, 산의 도덕학, 산의 형이상학:산과 한국의 시’에서 “거대한 산만큼이나 삶의 가장 큰 테두리에서의 자연을 그 전체성 속에서 직접적으로, 감각적으로 제시해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형이상학적 체험이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필요한 범주적 지평을 제공해 준다”며 산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한산시를 통해 산의 속 깊은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필자의 마음은 편치 않다. 길을 내기 위해 산을 뚫는 것쯤이야 무슨 그리 대수냐는 정부당국의 논리와 추진력 앞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해인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마음으로 김 교수가 인용한 한산시를 따라 읽는다. 그 시는 산의 의미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첫째 산은 세상의
풍진을 피하여
가는 곳이라고 했다.
층층 바위 틈이
내가 사는 곳
다만 새 드나들고
인적은 끊어졌다.
좁은 바위뜰 가에
무엇이 있나.
그윽히 돌을 안은
흰 구름만 감돌 뿐.
내 여기 깃든지
무릇 몇 핸고
봄 겨울 바뀌임을
여러 차례 보았네.
그대 부자들에게
내 한 말 부치노니
헛된 이름이란
진정 헛된 것이니라.
둘째 궁핍한 속에서도
자족의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며, 불법의 세계에 대한
갈망이 깃든 곳이라고
했다.
내 집은 진정
숨어 살기 좋아라.
안팎 두루두루
세상 티끌 멀리했네.
풀밭 거닐다가
길이 절로 되었구나.
구름을 바라보다
이웃으로 삼았나니, 노래 소리 듣기에는
새가 있는데
법의 뜻을 들으려니
사람이 없네.
아아, 오늘의 이 사바 나무여
너는 몇 해를 한 봄으로
삼으려나!
셋째 자연과의
교감이 있고
조화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했다.
이 몸 편히
간직할 곳 얻으려거든
이 한산 길이 가져, 버리지 말라.
그윽한 소나무에
실바람 일어
가까이 들으면
그 소리 더욱 좋네.
그 밑에
어인 반백 노인이 있어
황노黃老를
중얼거려 읽고 있나니, 깃든 지 10년, 돌아갈 줄을 몰라, 들어올 때의 길을
이미 잊어버렸네.
넷째 맑은 환한 달빛, 득도의 경지를 나타내는
공간이라고 했다.
푸른 시내에 샘물이 맑고
찬 산에는 달빛이 희다.
가만히 앎에
정신이 절로 밝고
공空을 관觀함에
경계가 더욱 고요하다.
가야산 관통도로와 관련, 지난 4월 창원지법은 우회도로를 개설하라고 권고했고, 이에 대해 시행기관인 경상남도와 해인사, 지역주민들이 우회도로안을 받아들인 사례를 곰곰이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산의 파괴는 민족의 심성을 파괴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도로 개설로 인해 끊어진 산, 특히 백두대간을 복원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즈음이다. 수행환경과 자연환경, 그리고 신성이 깃든 산을 지키기 위한 불자들과 국민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