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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를 심다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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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蘭雪軒 - 김선우 2001년 10월 236호
타르코프스키, 구도의 시학詩學

당신은 가끔 “출가해…” 라고 내게 말하지요. 지극함으로, 당신이 ‘출가’ 라고 말할 때, 그 길이 꿈꾸는 아름다운 진실 앞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지요. 그리고 도리질 합니다. 당신이 홀연 속가를 떠나 엄정하고 치열한 구도의 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 지독한 세간살이의 연옥 속에서 더욱 치열해지리라 다짐했습니다. 혼동할 수 없는 일회성으로 가득 차 있는 모든 존재의 순간순간을 이 곳에서 만나겠다구요. 당신은 집을 떠나 영원의 집을 구하는 자, 나는 속세라는 불구덩이 집 속에서 문학을 통해 스스로의 구원을 꿈꾸는 자입니다. 물론 이 모든 열망들이 참으로 헛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그 순간들은 불현듯 찾아들고 아니, 이 드난살이의 매 순간에 내재하는 어떤 허무의식으로부터 끝내 자유로울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고백 하나 할까요. 먼 길을 에둘러 문득 시가 내게로 온 20대 초중반, 알지 못할 열망으로 습작을 시작한 얼마 후에도 나는 종종 회의에 빠지곤 했지요. 그 때 당신을 찾아 처음으로 운문사에 갔었습니다. 객방을 안내해 주고 요와 이불을 가져다 준 어린 비구니가 장지문을 닫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내게 묻더군요. “출가하시려구요?” 천천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녀의 눈빛,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어요. 이제 막 수도의 길에 들어선 듯한 나와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비구니. 그녀의 눈빛은 사심없이 맑고 정결했으나 어떤 깊은 곳으로부터 물결져 올라오는 물너울 같은 흔들림, 그녀와 내가 공히 공유한 슬프고도 내밀한, 몸 입은 존재의 흔들림 같은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합장을 하고 그녀가 사라진 한참 뒤에도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객방 한 구석에 오두마니 앉아 있었지요. 아마도 출가를 결심한 이들이 주로 머무르던 방인듯 나무책상만 하나 오롯이 놓여 있던 정갈한 방. 나는 무심코 책상 서랍을 열어 보았지요. 흰 편지지와 볼펜 한 자루 그리고 깨끗하게 닦여진 머리빗 하나. 나는 한참 동안 그 머리빗을 들여다보았습!
니다. 반달모양으로 촘촘하게 박힌 빗살, 장지문을 통해 들어온 저물녘 햇빛이 빗살 위에 잠시 머물다 사그라드는 사이, 시인이 되어야겠다… 라고 나는 천천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내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지점에서 부끄럽지 않게 저이를 다시 만날 수 있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더랬지요. 후훗, 이렇게 문득, 개연성 없이, 문학에 대한 나의 초발심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린 비구니에게 빚졌습니다.
밤이 깊었네요.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기가 물씬 건너옵니다. 아카시아 향기… 기억하세요? 어린 시절 당두마을 뒷산에서도 교동집 뒷산에서도 초여름 만개한 아카시아 꽃냄새가 지천으로 사무쳐오곤 했어요. 달큰하면서 이상스레 슬픈 냄새… 밤이면 그 냄새가 더욱 짙어지곤 했지요.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아카시아 나무를 홀대하기 시작했지요. 왕성한 자생력으로 산을 망치는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이지요. 아마도 목재로써의 가치가 없어서든가 유실수도 아니니 실용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일 터. 어떤 숲도 인간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그 나름의 생태적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를 지켜냅니다. 베어버려야 하는 나쁜 나무라고 배워온 아카시아 나무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가요. 튀밥처럼 하얀 꽃타래를 사발에 털어넣고 설탕을 조금 뿌려 밥삼아 군것질을 하기도 했구요. 아카시아 잎을 하나씩 따내며 긴 하교길의 적막함을 달래기도 했지요. 별똥별을 보러 나간 마당에서 유성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잎을 훑어낸 아카시아 줄기로 동생의 머리를 꼬불꼬불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구요. 밤이면 아스라하게 일렁이는 아카시아 꽃타래들이 허?
貶?뜬 흰 성처럼 신비롭기도 했었지요. 어린 동생들이랑 나는 그 성의 옥탑방에 갇힌 가엾은 라푼젤이 긴 머리카락을 창문 밖으로 늘어뜨리고 왕자님을 기다릴 때마다 바람이 한소곰씩 불어오는 거라고 저마다 들떠서 소근거리다 잠이 들곤 했지요. 그 유년의 어느 여름부턴가 당신은 11년이나 터울이 지는 어린 나에게 칼보다 강한 것이 펜의 힘이라고 말해 주곤 했지요. 당신의 책꽂이를 기웃거리며 뜻도 모를 〈파우스트〉를, 〈희랍인 조르바〉를, 〈이방인〉을 읽으면서 사춘기를 보내고 더 이상 당신의 책을 훔쳐볼 수 없었던 20대를 지나 이제 서른. 나는 아직도 아카시아 꽃타래를 보면 마음이 일렁입니다.
흰꽃들, 화사한 꽃빛을 얻지 못한, 일테면 아카시아·파꽃·흰 접시꽃 같은 것들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향수를 일깨웁니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거니와 그 이전의 무엇, 이상스러운 슬픔 같은 것으로 몸을 건너옵니다. 파를 팔러 간 엄마를 따라 시장통에 갔다가 혹여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파꽃 모갱이만 분질러대던 기억, 파밭을 매던 엄마가 호박넌출 아래서 소피를 볼 때 그 이상스레 평온해지던 따뜻한 둔덕의 기억 같은 것 말이지요.
오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향수>를 세 번째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향수>는 나를 고향 강릉으로, 아홉 자식의 어머니에게로, 강릉 이전의 어떤 땅으로 데려갑니다. <향수>를 보면서 왜 나는 당신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타르코프스키의 영상 속에서 당신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영성靈性을 구하는 자. “인류는 지금 낭떠러지 앞에 있어. 너희 몸 속의 물이여 불이여, 재여, 재 속의 뼈들이여. … 돌아가야 한다. 생명이 시작되는 곳으로, 물이 더럽혀지지 않은 곳으로.” 도메니꼬가 외칠 때 당신은 가부좌를 틀고 면벽한 저 허공에서 삼라만상의 아픈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운문사 뒷산길을 당신과 함께 산보하다 내 구둣발에 무심코 채여죽은 방아깨비, 다급하고 안타까이 극락왕생의 진언을 외워주던 그 심정으로 말이지요.
어린날 내가 당신에게서 깨어 있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배웠듯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나는 시詩정신을 배웠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악을 통틀어 가장 나쁜 악인 인간, 그 속에서 끝내 희망을 구하는 자의 절망이 빚어내는 영원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세계에 대해 작용하려는 의지를 버린 자이며, 단지 나 자신으로 머무르기 위해 노력하는 자일 뿐이지만 ‘나 자신’ 을 구하기 위해 선택한 내 문학이 닿아야 할 근원의 목소리를 찾는 자입니다. 그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나는 문득 당신이 그립지만, 당신도 나도 한 그루 죽은 나무. 죽은 나무인 당신을 내 영혼의 소롯길에 심습니다. 죽은 나무인 나를 보듬어 세우고 당신이 물양동이를 들고 내게로 옵니다. 언제쯤 죽은 나무에서 아카시아 향기 만발하여 저 후미진 골목길을 건너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