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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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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진상 1987년 06월 64호
우리의 봄은 봄답지 않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토록 찬란히 빛나야 할 봄에 한없는 절망과 처절한 아픔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온갖 정치적 사건들이 신문지상에 장식되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정치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날 치유되지 못한 온갖 상흔(傷痕)들이 뚜렷이 되살아나고 우리는 다시 격동하는 현장으로 나서게 된다. 4.19혁명, 5.17항쟁의 온갖 원혼들이 우리 주위에 머물고 또한 이를 추모하고 그 넋들을 되살려 오늘의 정치 현실을 규탄하는 소리가 드높다. 무릇 인간의 가장 높은 행위의 법주에 속하는 정치 행위가 억압받고 있는 현실은 이 땅을 사는 모든 인간의 고통 정도를 너무나도 쉽게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우리의 현실적 고통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민주화로 표현되는 국민적 열망 속에서 그 피상적 모습들을본다. 온갖 제도적 억압 장치가 정치 질서, 경제 질서, 법질서, 사회 질서 속에 독버섯처럼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는 우리의 기본적 생존권, 인권을 비롯한 모든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를 어찌 어제 오늘의 일로 안이하게 거론할 수 있을까? 마땅히 우리는 민족사의 그늘에 숨겨진 그러나 너무나도 뚜렷이 각인되어진 저 분단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분단의 현실 속에서 점철되어진 모순의 역사를 되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과연 분단의 현실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분단의 현실을 유지 온존시키며 기득권을 누리는 무리는 누구인가? 또한 분단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고통을 받고 있는가를 냉철히 바라보여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노력 속에서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향하는 한가닥 빛줄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1945년 해방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분단을 우라는 모두 기억한다. 또한 그 분단이 우리의 뜻이 결코 아니었음도, 강대국의 이해에 의해서 그어진 삼팔선이었음도 너무나 확연히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반도의 남쪽에 진주한 미군정에 의하여 통일을 갈망하고 염원한 모든 애국 애족 세력이 몰락하였음도 우리는 어렴풋이 아니 불확실하게 알고 있다. 미군정의 비호하에 성장한 이승만 정권에 의해 분단은 점점 고착화되고 6.25의 비극은 우리에게 통일이라는 힘들고 지난한 과제를 남겨 놓고 있음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기나긴 일제의 식민 통치 밑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중에게는 해방이란 바로 자주 독립 국가의 건설이었다. 하지만 반도의 남쪽에 진주한 미군은 한민족의 자주 독립의 염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 따라 소위 그들의 표현대로 자유주의를 수호해 줄 전초 기지로서의 반도가 더욱 중요한 것이었으며 또한 남아돌아가는 자국의 잉여 농산물을 비롯한 상품 소비 시장이 더욱 중요했으리라. 이에 따라 이러한 이해를 대변하고 지켜줄 권력이 아니면 그들은 모두가 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선량한 민중의 염원을 배반하고 청산되어야 할 친일 민족 반역자와 결탁하여 성립된 바로 이승만 정권인 것이다. 이들은 유엔의 잠시 지원 아래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미국에 충성하기로 굳게 굳게 약속하였다. 이렇듯 분단은 외세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은 물론 외세를 위한 분단이라는 명확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약속의 땅, 복지의 땅으로 인도된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분단을 통해 자기 기득권을 보장받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분명히 보아야 한다. 이승만과 결탁한 친일 민족 반역자와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지주 세력은 다시 나으리로 대접받으며 이 땅의 주인으로, 통치권자로 등장하게 된다. 역시 미국과 손을 꼭 잡고 미국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짐하면서…. 우리는 ‘자유당 정권’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부정 부패, 그리고 부정 부패를 규탄하는 집단을 무조건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하던 사실 말이다. 그러나 반공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극심한 민중 수탈이 결국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민중의 항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 이후의 역사 과정을 상세히 서술할 여유는 없다. 다만 오늘의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청산된 것이 없이 더욱더 이데올로기 탄압은 가중되고 저곡가 저임금의 첨예화된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명성사건이니 범양 사건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권 양 사건이니 박종철 사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무리는 안다.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익을 누리는 무리와 짓밟히는 생존권과 인권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양새를 이야기해보자. 무엇하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따지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항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우리는 항상 좌경용공이라는 단어에 유의해야 한다. 즉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1야당의 당수의 취임사와 정강 부분까지도 좌경 용공 성향이 있다고 몰고 있는 판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 한길을 지나면서 우리는 할일없이 조를 짜서 행진하는 머리짧은 젊은이들을 목격해야 한다. 대로변을 막고 선 철망차도 목격해야 한다. 온갖 공권력의 무례함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불심검문에 순순히 선량하게 임해야 하는것도 우리의 비참한 모습인 것이다. 고문 받다가 죽는 젊은이, 분신하여 죽는 젊은이를 볼 때마다 정권에 대해 분노를 느껴서는, 항의해서는 안된다. 다만 서글픔에 몸서리치는 것만이 허용될 뿐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는 매일 선진조국이니 복지 국가를 목이 쉬도록 외치건만 과연 이 나라의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있는가, 편히 쉬고 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저 찬란한 네온 아래 날 상대적 궁핍은 더해만 간다. 이제 더 이상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민족에게 강요할 수 밖에 없는 분단의 고통이 우리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를 동동 동여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항변은 너무나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언젠가 오리라던 선진 조국의 그 화려한 찬가도 한갓 백성을 우롱하기 위한 기만적 언사임을 알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 즉 분단 상황이 외세에 의해서 강요되고 있는 한 민주화니 선진 조국은 요원할 뿐이다. 요사이 신문지상이나 다른 보도 기관을 통해서 민족 자주화의 이야기가 종종 거론되고 있음을 바라볼 때 이민족 자주화의 길이 바로 선진 조국으로 가는 길이구나, 민주화 사회로 가는 길이구나라고 공감하게 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민족 자주화의 길이, 강요되고 있는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길임은 물론 통일로 향하는 오직 한 길임을 다시 확인한다. 저간의 역사 과정을 통하여 그리고 현실적 제반 역관계에서 드러나듯이 결단코 한반도에서 외세를 배격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 통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통일의 문제를 꿈에나 그리는 통일로, 아니면 일부의 책임있는 당국자만이 거론하고 떠벌일 수 있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만 확인하자. 통일을 가장 바라는 사람은 그리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분단이라는 생황 속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 즉 이 나라 이 땅의 말없는 민중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통일의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되는 것은 모든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의 자주를 쟁취하는 길임을…. 결단코 분단의 고통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을 억압하고 있을 때 통일을 내일의 과제일 수 없다. 그리고 이 땅의 민주화 문제와도 별개일 수 없는 것이다. 통일을 거부하는 세력을 척결하고 진정으로 국민주권을 회복하는 길이 민주화와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분단의 현실이 시작된 그날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통일의 대의를 부정하는 자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으리라. 간혹 통일의 어려움과 고충을 말하는 자는 있어도 노골적으로 통일을 부정한다는 것은 국민적 염원을 유린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갖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허구적 통일론을 강요하고 역시 진정한 통일의 의지를 묵살하려는 기도가 책임있는 당국자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음을 이제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성찰해야 한다. 마치 통일은 어떤 특정 집단의 신성불가침한 전유물인 양 통일에 대한 자율적 논의나 그 지향을 적대시한다고 할 때 진정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이 들어설 자리는 아무 데도 없다. 유 성환 의원 사건과 통일민주당의 정강 정책이 문제가 되어 한동안 국회가 정체되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그 안타까움은 도를 더하고 있다. 명색이 제1야당에서조차 통일에 대한 통자도 언급할 수 없다면 과연 통일을 국민적 과제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 통일론은 어떤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어서는 절대 안된다. 분단의 구체적 고통의 담당자인 국민 각자가 자유로 이 이를 말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통일의 대도를 개방하여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현 시국이 점점 경색되어짐을 볼 때 이 땅의 당위론이 무색해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4.13호헌에 따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깊은 좌절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실로 연일 계속되는 시국 선언이니 단식 ·농성 등을 신문에서 접할 때면 국민적 염원을 부정하는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각성 정도와 저항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금이다, 봉쇄다, 사법 조치다 운운하며 물리적으로 국민적 열망을 부정함은 물론 더욱 가중되는 이데올로기적 탄압을 우리는 본다. 민주적 제권리에 대한 정당한 주장조차도 모두가 용공 좌경으로 매도되고 압살된다고 할 때 다시 한번 소수 집단에의 이데올로기 탄압과 폭력적 본질을 절감하면서 전 국민적 노력에 의해서 수행되는 민주화 운동이 더더욱 절실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국민적 열기를 모아나가면서 통일의 가장 기본적 전제인 외세의 척결을 중심으로 통일을 향한 대행진을 시작해야 한다. 이제 어떠한 탄압이나 기만에도 절망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역시 통일의 그 길이 강고하고 복잡하다 해도 이 민족의 분단이 극복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민주를 말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이야기하고 민족 번영을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멀다고 해도 우리의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자세로 통일의 대도에 모두 떨치고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