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에서 바라본 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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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최승천
1997년 12월 190호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느끼는 일이지만 한해의 시작이 바로 잊그제 같은데 어느새 결산을 해야 할 때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올해도 수많은 사건들이 계속 발생해 교계 신문의 머릿기사를 장식한 한해였다. 그 중에는 대외적인 자랑거리가 있었는가 하면 낯부끄러운 점도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교계의 문제 해결 능력의 미약함과 수행정신의 실종을 여실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의 추진 과정에서의 합리성과 원칙의 결여는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승가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대승적인 차원의 자세가 결여되었다는 점이 교계문제의 많은 부분에 상처로 남아있다.
새해 벽두를 장식한 사건은 안기부법과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관련된 비판 움직임이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날마다 가두 시위를 하고 섬지어는 언론 노동자들까지 파업을 단행하며 악법 철폐를 외치는 대열에서 불교 언론 종사자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교계 단체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전국불교운동연합 등이 대책위를 꾸리고 시위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불교가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안팎으로 과시하기도 했다.
이어진 대사회적 움직임은 북녘동포돕기운동에 불교계가 전폭적으로 참여하면서 더욱 가열차게 전개돼 갔다. 이미 지난해 말에 범불교적 대북식량지원 조직인 우리민족돕기불교운동본부가 창립돼 모금 운동을 시작한데 이어 조계종을 중심으로 한 종단 연합조직인 북녘동포돕기불교추진위원회가 출범함으로써 불교계는 이원화된 조직을 통해 성금모금 및 전달 등의 사업을 펼치게 된 것이다. 단일화된 조직으로의 대북지원 사업을 열망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각 단체가 갖고 있는 특수사정 때문에 기대가 성사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이들 두 단체는 십육억에 가까운 성금을 모금했다. 이는 불교계 내부의 불사기금모금이 아닌 대사회적인 이유를 내걸고 한 모금액 중 최대의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깊은 의의를 담고 있다. 불교계가 민족문제에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민족종교로서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한 쾌거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한국불교계가 주도하는 미국JTS가 마침내 나진·선봉 지역에 지사를 설치해 대북직접지원 사업을 펼치게 된 일은 행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의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이와 함께 남북불교계가 분단 이후 최초로 초파일 공동 발원문을 채택한 일도 올해의 대북불교 교류를 점검하면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종단 내적으로 고무적인 일을 하나 들자면 조계종 종무행정전산화 1차 작업 완료 소식을 빼놓을 수 없다. 95년부터 추진된 이 사업은 중앙종무기관 17개 분야의 프로그램을 제작 완료하면서 1차작업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2단계 사업은 종단 인터넷 한글 홈페이지 개설, 사찰별 홈페이지 구축, 중앙과 본말사 전산 연결 등으로 정보화 추진 사업은 오는 2000년까지 계속된다.
올해 역시 훼불사건이 끊어지 않은 한해였다. 육군 특수전학교에서 초파일을 앞두고 법회를 방해하는 사건이 벌어지더니 곧이어 논산훈련소에서는 특정종교집회 참여를 강요하는일이 관계자들의 제보로 폭로됐다. 마침내 국방부 장관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군종감실에서는 훈령까지 제정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고 나서야 잠잠해졌지만 대선 후보자들이 종교 편향 문제와 관련해 약속이나 한듯이 거론하는 단골 메뉴가 되기도 했다.
불교계는 해마다 초파일 무렵이면 또 다른 훼불공포(?)에 시달려 왔는데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찰 방화가 북한산 일대의 사찰에서 연이어 벌어지면서 일선사에서는 방화 미수 사건이 발생하여 교계를 긴장시켰다. 그러나 방화범은 거의 잡히지 않았으며 잡혀도 정신병자로 취급돼 유야무야 되고 마는 일이 올해도 계속됐다. 연말선거를 의식했음인지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사찰방화수사전담반을 운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범인을 검거했다는 소식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불교계가 사회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끈 일로는 국립공원 입장료 분리징수 파문을 들수 있다. 문화재관람료와의 합동징수를 요구하는 불교계와 문화재관람료 과다인상을 빌미로 분리징수를 강행하는 국립공원 관리공단과의 힘겨루기는 사실상 불교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조계종은 합동징수로의 환원을 위해 국립공원입장료 폐지운동과 공원입장료 징수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헌법소원 등을 대정부 카드로 내보였지만 여론의 질타를 받은채 판정패 당해야했다. 판정패라는 판단의 근원은 조계종과 관계기관이 협의해 만든 합의서에 잘 나타나 있다.
오랜 진통 끝에 지난해부터 시행한 문화재 관람료 자율 조정권을 사실상 포기한 합의 조항을 놓고 일부 종회의원들은 ‘굴욕적 협상’ 이라는 형가를 내리기도 했다.
명분으로 내걸었던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운동과 관련해 오히려 공원입장료 가운데 문화재 기여 정도에 따라 사찰지원을 보장받는 선에서 합의를 이룸으로써 결국 관계기관과 ‘밥그릇싸움’에 나선 모습을 드러낸 샘이 돼버렸다. 일부 스님들은 “앉아서 받는 돈이 사라져야 진정한 불교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논리를 펴기도 했지만 작은 목소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불교계가 복마전이냐”는 비아냥을 받아야만 했던 최대의 사건으로는 불교방송 공금횡령파문을 들수 있다. 처음엔 단순 경리 사고라고 애써 축소하고 담당 직원은 해외도피를 하는 등 사건은 미궁에 빠진 듯 했지만 교계기자들의 끈질긴 추적보도로 고위관계자가 구속되고 이사장직 사퇴, 시장퇴임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경리담당직원들의 손을 거쳐간 총액이 일백억 원을 넘고 지금까지 확인된 결손액은 삼십억 원에 이르고 있어 누가 이 돈을 갚을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막막한 실정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자리만 그만두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지나가는 현실과 시태의 원인과 결과를 진지하게 따지려 들지 않는 잘못된 교계 풍토가 이런 비리를 조장하는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이사출연금을 내지 않고도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뻔뻔한(?) 이사들이 존재하고 후원금을 자신의 출연금으로 둔갑시키고도 건재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되는 한 불교개혁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불교방송사태의 해결 여부가 곧 불교계의 자정 능력을 드러내는 시금석일 수 있으므로 해결의 공정성과 엄정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조계종 종정은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 이런 의문은 올 4월 월하스님이 종정직 사표를 제출하면서 표면화됐다. 사표파문과 관련해 월하스님은 자신의 진짜 심중을 공식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지만 종도들은 월하스님과 총무원장과의 불협화음 때문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총무원장 종회의장단, 본사주지 스님들 등의 잇달은 설득성 예방에도 월하스님은 자신의 심지를 굽히지 않은채 더 이상 종정이 아님을 강조해왔다.
종정법어가 없는 초파일을 맞아야하는 불자들에겐 까닭이야 어떻든 아쉬움만 남게 됐다. 다가오는 새해 역시 종정 법어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새 종정 스님을 선출할 움직임도 없는데다 월하스님이 이미 던진 사표를 다시 거둬들일 것이라는 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종회 무용론’
이것은 올 들어 조계종 일부 종회의원들이 스스로 지어낸 말이다. 이른바 개혁 종단의 종회라며 94년 우렁차게 출범했던 11대 중앙종회가 특히 올해들어 성원 미달로 유회·폐회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지리를 지키지 않는 종회의원들이 늘어나는 모습은 저질 국회의원들의 당리당략 놀음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 직면해야 했다. 발의한 지 이년이 지나도록 논의조차 되지 못한 종법들이 또다시 차기 종회로 이월되는 현상에서 종도들은 조계종 종회가 건전한 토론의 장이 아닌 정치놀음판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제 새해를 전망하는 쪽으로 시각을 돌려보면 조계종은 총무원장 선거, 종회의원 선거, 십여 교구본사의 주지직 선거 등으로 선거 열풍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내년도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 일부에서는 올 연말의 대선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진단도 내리고 있다. 서글픈 현상이지만 조계종이 정치권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있음을 직시한 분석이기도 하다. 대선결과가 어떻든 내년도 총무원장 선거는 이전의 경우와 같이 경선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종헌이 보장하고 있는 만큼 현총무원장의 차기 출마가 확실하다는 가정 아래 상대 후보는 누구누구일 것이라는 하마평이 무성하다. 본사별로 실시되는 종회의원 선거와 함께 차기총무원장 선거권을 가진 선거인단 선거도 스님들 세계에서는 관심사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총무원장 당선 가능성이 점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새해에도 사찰환경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계속 부각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수 있다. 5월에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을 뽑는 선거가 실시되면서 환경보존정책을 외면하는 지역 개발논리가 우세할 것이 틀림없는 일이다. 이와 함께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힘입어 황룡사와 미륵사의 복원 문제를 포함한 폐사지 복원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불교계는 물론 문화계 일반의 오랜 바람이기도 하다.
통일 시대를 대비한 남북불교 교류사업도 더욱 내실을 다져야 할 것 같다. 식량지원 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일은 따뜻한 동포애를 전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런 동포애가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승화돼 닫혔던 북녘의 문이 활짝 열리는 그날이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통일의 날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전망해 보면서 되새겨 보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한국불교의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가는 요체는 스님들의 ‘수행력’ 이라는 점이다.
이는 조계종이 지난 10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잘 나타나 있다. 스님 백여든 두명 재가자 이백쉬흔일곱명 등이 응답한 이 조사에서 종단스님들의 사회적 신망을 묻는 전문에 76.7 %가 부정적 답변을 했다. 그리고 그 까닭은 ‘수행결여’(46%)에 있다고 답했다. 특히 스님 응답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 같은 답변을 해 스님들 스스로의 자성과 열망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불교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답은 같았다. 66.3%가 바로 ‘수행자의 수행력’ 이라고 지적했으며, 종단 개혁의 과제 중 가장 중요한 점도 ‘수행풍토의 진작 69.2%’에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수행력이 살아난다면 우리가 우려하는 종교편향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불교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 민족통일의 원동력으로 승화해야 마땅할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