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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를 탄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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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1년 10월 236호
생방송을 미리 녹음까지 해가며 겨우 시간을 내어 대만불교의 우란분절 행사에 참여했다. 부처님 전에 육법공양을 올리고 《우란분경》을 읽으며 스님들께 공양하는 불자들의 정성스러운 마음길은 잿빛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이키게 했다.
행사 일정을 모두 마치고 몇 군데의 사찰 방문에 나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누구보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무거운 삶의 짐을 함께 나누며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자신의 수행 길을 다져가는 증엄 스님이 상주하는 자제병원이 인상적이었다. 빈민구제와 의료사업을 징검다리 삼아 대중에게로 다가가는 증엄 스님의 대중교화 원력은 감히 한정된 형용사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고 말문을 닫게 했다. 그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세수 36세에 원력을 세우고 우리 한국 불교는 종단에서도 할 수 없었던 종합병원과 의과대학, 유치원부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고산족인 원주민들이 타지로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지 않도록 기술학교를 세우고 젊은 청년 기술자를 양성해 내는 일까지 스님의 마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깡마르고 작은 체구에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바르게 세운 서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느낄 수 있었고, 마음에 작은 원력의 씨앗을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 원력의 씨앗을 키워가야 하는가를 알았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원은 열매 맺지 못하는 과수와 같지 않을까… 가슴 가득히 감동의 물결이 충만하다가 문득 지나온 수행길을 생각했다. 이런저런 회한이 엇갈리면서 막막함이 앞서기를 한동안, 다리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아주 작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개개인이 세운 원은 다 이유가 있고 그 원을 향해 정진해 가는 수행자의 최선을 다하는 순간이 소중하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있지만 왠지 그 날은 그렇게 나 자신이 작아 보일 수가 없었?
? 깃털보다 더 가볍게 돌아서는 증엄 스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밭에 늘 심는 것이 부질없는 인연의 씨앗이 아닌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서원의 씨앗이어야 하지 않을까… 풀어진 마음을 다잡았다.
마지막으로 산 속 깊숙한 곳에 있는 개성선사를 참방하고, 무거웠던 마음을 수령 백년이 넘는다는 품 넓은 나무 아래서 내려 놓았다. 주지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산사를 돌고 있는데 느닷없이 도서관에서 씩씩한 비구니 스님이 나와서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나이를 백살도 더 먹은 큰 나무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우리를 나무 곁으로 데리고 갔다. 일행 중에 한 스님이 우리는 천년이 넘은 나무도 많이 있다고 했더니 더 이상 나무 자랑을 못하고 큰 웃음으로 멋쩍음을 대신했다. 연신 함박웃음을 머금고 안내하더니 헤어질 때는 못내 아쉬워했다. 마지막에는 그 고장 특산품을 사서 우리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헬멧을 쓰더니 너무나 씩씩하게 스쿠터를 타고 우리가 탄 버스를 안내했다. 넉넉한 스님의 몸무게에 작은 스쿠터가 힘겨워 보였지만 그 스님의 얼굴에 담긴 미소의 무게가 맑은 하늘의 햇살만큼이나 가벼워 보였다. 마음씨 좋은 자매 스님을 뒤에 두고 오는 것 같아 서운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 미소를 간직하고 수행하자고 두 손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