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스님 하면 자연스레 사찰음식이 떠오른다. 불교TV에서 5년째 <푸른맛 푸른요리>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최근에는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스님은 사찰음식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부쩍 일반 잡지와 방송에서까지 스님을 등장시키고 싶어 안달인 통에, 많이 고사하고 사양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꽤 여러 곳에 얼굴을 내밀게 되는 바람에 또한 본의 아니게 스타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얼굴보다는 손이, 손보다는 손으로 만든 음식에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지기는 했지만. 엄청난 매스컴의 영향력이다.
선재 스님에 대한 관심은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을 뜻한다. 이는 또한 ‘전통사찰음식=채식= 건강식’이라는 음식관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한때는 “이밥에 고깃국”이면 최고라고 여기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일부러 건강식이라며 보리밥과 나물을 찾아 나서고 있으니, 한편으론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참으로 간사하구나 싶기도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남의 살에 집착함으로 인해 생기는 유형 무형의 폐해를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채식이 곧 사찰음식이라는 등식은 성립시키지 말라.”고 선재 스님은 당부한다. 재료면에서만 본다면 사실 다른 점은 별로 없다. 그러나 사찰음식은 음식에 대한 일반적 상식과는 차이가 있는 불교의 음식관이 스며 있다.
“사찰음식은 약입니다. 음식을 식도락의 대상이나 식욕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약으로 대하는 것이죠.
따라서 만드는 방법도 맛을 내기보다는 약성분을 강화시킵니다.
자연 먹는 방법은 섭생을 위해 때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육체적 섭생이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고려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일 것입니다.” 선재 스님은 요리를 한다기보다는 약을 만들고 있었다. 따라서 스님의 요리법은 다른 요리사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흔히 우엉요리를 할 때 껍질을 까서 물에 담가 놓는 것이 보통이다. 색이 변하는 것을 방지하고 떫은 맛을 우려내기 위해서. 그러나 스님은 절대 물에 담그거나 데치는 법이 없다. 맛과 향기, 약효가 다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입에는 좋은 음식일지 몰라도 약효는 제로가 된다. 사찰음식은 자연물이 갖고 있는 맛과 향이 그대로 배어 있어야 한다. “우엉이 떫다고 하지만 바로 그게 약이라. 탄닌이라고 하여 암예방도 해 주고 소화도 촉진시키고,요즘 광고에서 많이 나오는 장에 좋은 비피더스균이 바로 거기에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좋은 것은 다 빼고 요리를 하니 어리석은 일이에요. 물론 독한 것은 독기를 빼기도 하죠.” 음식이 곧 약이라, 그렇다면 사찰음식에서 맛은 아예 포기?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실제 선재 스님이 해 주시는 음식 맛은 깔끔하고 개운한 것이 한마디로 ‘최고’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거기에는 분명 비결이 있음에 분명하다. “김치 담글 때 찹쌀가루로 하는 것보다 찹쌀죽으로 하는 것이 더 맛있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찹쌀가루로 하려면 일단 물에 담가 불려 건지잖아요. 그 물에 단물이 일부 빠져나가요. 그러니까 찹쌀을 담갔다가 그 물로 죽을 쑤면 단맛이 덜 빠지니까 더 맛있죠.”
선재 스님은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이라는 책을 디자인하우스라는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그 동안 방송에서 했던 것을 정리한 것인데, 무슨 스님이 요리사처럼 요리책을 내느냐고 막무가내로 거절하다가, “절집의 식문화를 알려줘서 늘어나는 환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의사모임 회원들의 꼬임(?)에 넘어간 결과물이란다.
스님은 책을 낸 것에 대해, 남들처럼 자랑스럽게 여기기 보다는 혹시 ‘비구니가 상 내기에 여념이 없다’ 내지는 ‘요리사냐 수행자냐’는 핀잔을 들을까 무척 걱정스러워했던 눈치다. 어쨌든 그 속에 담겨 있는 229가지 음식들은 모두 육체와 정신을 맑게 하는 약이 되는 일상의 음식들이다.
그리고 그 만드는 법은 스님 고유의 창작이라기보다는 이미 사찰에서 전래되고 있는 전통적인 방법을 재현한 것이다. “요리학원이라도 다녔느냐구요? 출가하면 누구나 배웁니다. 부처님께 마지 올리는 거며, 국 끓이는 거, 김치 써는 거, 나물 무치는 거 등등 사실 음식은 옛 스님네들이 더 잘하지요. 다만 나는 그것을 체계화시켰던 것 뿐이에요.(스님의 승가대 졸업논문 주제가 ‘사찰음식’이었다)” 절음식에는 우리 옛스님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식품영양학 강의를 듣지 않은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영양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고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일례를 들면 절에서는 표고버섯 등 튀김요리를 할 때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해서 튀긴다. 그러면 느끼한 맛이 없어지게 되는데, 된장이 지방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물론 절집안에서 보고 배운 바도 있지만 스님의 타고난 감각과 손맛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머니가 요리를 무척 잘하셨다. 그 영향도 컸을 것이다.
어려서 먹어본 대로 한다지 않는가. “장을 참 잘 담그셨어요. 친구집에 가보면 진간장으로 쓰던데 우리 어머니는 절대 간장을 사지 않았죠. 그런데 집 간장에 전 같은 것을 찍어 먹어보면 너무 맛있는 거예요. 동치미도 잘 담그셨는데 마치 사이다 같았어요. 우리 어머니가 만든 동치미와 장맛을 내는 데 10년이 걸리더군요.”
어려서부터 부엌에 들어가 간식을 만들어 언니 동생들에게 주는 것을 좋아했다. 간식 만들 재료가 없음에도 무 하나만 있으면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갖고 와서 먹는 즐거움을 안겨 주곤 했다. 유능한 농부는 연장 탓을 안 한다고, 음식 잘 만드는 사람이 재료 탓을 할 리 없다. 방송국에서 요리강좌 할 때도 그랬다. 장을 봐오는 이가 중요한 재료를 빠뜨려 도저히 예정된 음식을 하지 못하게 되어도 스님은 즉석에서 있는 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것은 재주가 아니라 정성스런 마음이었다. 선재 스님은, 어떻게 하면 맑은 음식을 만들어 스님들 수행에 도움이 될까 하고 생각하면,어떤 재료로도 요리가 된다고 한다.
“난 요리할 때 부처님께 공양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고 몸이 좋아진다고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러나 이생의 일만은 아닌 것같고. 전생에도 요리연구가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봐요.
이생에서는 법당에서 기도하며 한생각 쉬는 것이 제일 행복한데 그게 또 마음대로 안 되는군요.”
확실히 음식은 먹는 사람의 마음은 물론이고, 만드는 이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모양이다.
선방에서도 공부가 끝나고 맨 마지막 소임의 공양주는 제일 신심이 있거나 도가 높은 사람이 맡기 마련이다.
그만큼 만드는 이의 기운을,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재 스님의 애초 전공은 사회복지였다. 스님의 논문은 장애인이나 환자, 태교를 해야 하는 임산부들의 올바른 정신을 위하여 사찰음식의 효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논문을 쓰면서 스님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특히 음식의 중요성을 부처님께서 무척 강조해 놓으셨다는 점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食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 《증일아함경》”고 하였고, 특히 율장에 설해진 식생활 규칙을 보면 그 자상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식전·식후 예절, 양치질, 대소변, 주방의 위치와 배치 관리, 음식을 만들 때 쓰는 양념, 병이 났을 때 먹어야 할 음식 등등까지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뿐인가. 경전 곳곳에 음식과 음식을 대하는 자세를 설해 놓고 있는데 “때에 맞는 음식을 먹어라, 제철음식을 먹어라, 골고루 섭생하라, 과식은 금하고 육식은 절제하라” 등. 《금강명최승왕경》 24 〈제병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중생들에게 네 가지 병이 있으니, 봄에는 가래심화병이 나고,여름에는 풍병, 가을엔 황열, 겨울이면 세 가지 병이 한꺼번에 생기니, 봄에는 떫고 뜨겁고 매운 것을 먹고, 여름에는 미끈미끈하고 뜨겁고 짜고 신 것을 먹으며, 가을에는 차고 달고 미끈미끈한 것을, 겨울엔, 시고 떫고 미끈미끈하고 단 것을 먹어라’ “결국 제철음식을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음식 연구하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3천년 전에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 음식의 원류가 사찰음식에서 온 것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과 당위에 불과했다. 스님 스스로 사찰음식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게 된 것은 스님의 건강악화가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스님의 식사습관은 좋지 않았다. 빨리 먹고 꼭 자기 전에 먹는 습관이 있었다. 위와 간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간이 안 좋은 것은 집안의 내력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거기다 논문이다 수련원 일이다 해서 피로가 겹치고 식사가 불규칙하게 되자 드디어 탈이 났다. 선재 스님은 간 회생불능의 판정을 받았다.
그 때 담당의사가 이 방법밖에 없다고 가르쳐 준 것이 자연식 바로 사찰음식이었다. 선재 스님은 도저히 엄마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고 한다.
출가의 초발심이 《부모은중경》을 만난 까닭이다. 그리하여 출가해서 부모님을 제도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도는커녕, 출가한 것만으로도 한이 될 터인데 부모님보다 먼저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식으로 반드시 고치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지어가며 절대 자연에 거스르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자신의 논문을 자신의 몸에 실험한 것이다. 결국 1년 만에 항체가 형성되는 기적을 이루었다.
선재 스님은 죽다 살아난 자신의 경험적 오류를 다른 사람들은 거치지 않기를 바라는 오로지 그 한 마음으로 사찰음식 강의를 하고 있다. “의사가 하는 말이 요즘 한 집에 한 사람씩 암환자가 있다고 해요. 심각합니다. 그런데 암환자의 공통점이 식습관이 안 좋다는 거예요. 과식을 한다거나, 자기 전에 먹는다거나. 그리고 먹는 음식도 빵, 우유, 치즈, 햄버거, 밀가루음식,튀긴 음식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거죠.
주부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입에만 맞는 음식을 할 것이 아니라 약이 되는 음식, 정신을 맑게 하는 음식을 만들어야 가족이 건강합니다.”
“스님 사진 찍어야 하는데 여기 장독대가 좋겠는데요,” 도량 앞에 늘어선 장독들이 하도 탐스럽고 좋아보여 사진발 받겠다 싶어 자리를 잡았더니 스님은 그 곳 말고 굳이 옆에 있는 작은 불상을 고집한다. “음식한다고 매번 장독대에서만 찍으라네.”
사람들은 자꾸 장독 옆을 권해도 스님은 역시 불상 옆이 편하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