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구보리 우화중생(左求菩提 右化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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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성동
1987년 06월 64호
사람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진여(眞如) 곧 참 나를 찾아서 주체적으로 확립시키자는 것이 상구보리(上求菩提)이다. 깨달음의 지혜를 얻어서 개인으로서의 자기 인격을 완성시키자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 나가자는 것 곧 밑 모를 고통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중생들을 제도해 주자는 것이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속박하고 있는 온갖 부자유로부터 해방시켜 사람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평등과 자유의 세계로 끌어올려 주자는 것이다. 상구보리는 따라서 성불의 완성을 말하며 하화중생은 불국토의 건설을 말한다. 개인의 완성과 사회의 완성이 합쳐져서 부처의 나라가 이룩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구도자 곧 스님이라고 부르며 스님을 가리켜 우리는 또 비구(比丘)라고 부른다.
부처님 당시의 원시 불교 사회에서는 독신 출가 수행자 곧 비구는 생산 활동에 전혀 종사하지 않고 걸식에 의한 생활을 하였다. 당시의 승단에서는 일체의 경제 행위가 규범으로 금지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승단 생활의 제일의는 수도에 있었고 수도자들은 나무 위나 바위굴에서 거처하며 누더기옷 세 벌과 밥그릇 하나만을 가지고 걸식으로 생활하는 것이 당시의 생활 풍습이었다. 따라서 수도를 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 도구인 세 벌의 누더기와 한개의 밥그릇 그리고 걸식으로 얻는 하루 한끼니의 밥 이외에는 무소유(無所有)가 근본 원칙이었으므로 경제 행위 자체가 필요없었다. 이것은 당시의 인도 사회가 이모작의 쌀생산과 천혜의 생산물 때문에 생산 활동의 윤리가 특별히 강조될 필요가 없었다는 측면과 종족 사회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당시의 사회에서는 생산의 문제보다공평한 분배가 문제였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승단의 규모가 커지고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무소유의 근본 규범이 흔들리게 된다. 물론 불교 사상의 핵심 윤리인 무소유의 정신이야 다를 바 없으나, 승단의 소유물 규모가 커진다는 말이며 이것은 부처님의 입멸 후 부처님의 사리를 여덟 지방으로 분골(分骨)해서 탑을 세우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처음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에만 재가 신도들의 기진물(寄進物)이 들어오던 것이 나중에는 부처님의 다른 유품이나 부처님을 상징할 만한 것을 대신 넣고 탑을 세움으로써 신도들의 기진물을 유도하게 되었다. 이른바 불탑 신앙으로서 부처님께서 그렇게도 경계하셨던, 형상을 보고 예배하는 이 불탑 신앙으로부터 승단의 경제는 비롯된다. 무소유를 주장하는 불교에서 소유를 확대하는 모순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중국으로 건너온 다음에는 일일부작(一 日不作) 일일불식(一 日不食)을 주장한 백장정규(百丈淸規)에서 볼 수 있듯이 비구들이 생산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노동과 수도를 별개의 것으로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원시 불교 시대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므로 농경을 금했으나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중국에서는 걸식을 악덕으로 여기게 되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승단의 생산 활동 참여는 승단의 유지를 위한 공유 재산의 확보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 개인 재산의 확보와 확보된 개인 재산의 증식을 위한 경제 활동은 아니었다. 따라서 불교의 승단 경제 원리는 자급 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 경제였다.
불교 사상의 핵심은 소유 관념의 탈피에 그 최종적인 목적을 둔다. 소유의 관념으로부터 집착이 생기고 집착은 곧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은 바꿔 말해서 무엇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뜻하며 소유는 그리고 물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물론이고 사람의 마음에까지도 적용되는 모든 불행의 뿌리가 된다. 소유는 곧 구속이며 구속은 곧 자유의 상실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그리하여 수도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 필수품을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이른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생활 윤리다. 여기서부터 불교는 사유 재산의 끝없는 확장과 소유권의 극대화를 그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날카롭게 대립한다. 무소유를 그 사상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불교와 소유에 끝없이 탐닉함으로써 무명(無明)을 심화시켜 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본주의 윤리와는 처음부터 입장을 달리하는 것이다. 완전무결한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불교와 불명등과 부자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와는 영원히 합쳐질 수 없는 창과 방패의 관계로 된다.
그렇다면 자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유 재산 제도가 생겨나서 계급이 나뉘어지면서부터 이 자유라는 말은 모든 혁명의 중심 명제가 되어 왔고 오늘에 있어서도 그것은 더욱 절박한 명제가 되어 고민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친다. 지금까지 있어 왔던 모든 혁명의 깃발에는 지금 이곳에서의 체제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큰 자유를 가져다 주겠다는 내용이 피로써 씌어 있었다. 이같은 깃발을 드는 것은 비단 민중 세상을 염원하는 혁명가들만이 아니라 독재자와 심지어는 히틀러와 뭇솔리니 그리고 대한민국 육군 소장이었던 박정희를 비롯한 제삼 세계의 모든 군사 팟쇼 독재자들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낡은 사회 체제를 타파하여 새로운 사회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모든 피압박 인민 대중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주겠다고 혁명가들은 입을 모아 부르짖는다. 그런데 혁명이 성공된 다음에는 혁명가 자신이 곧바로 자기가 만든 체제의 방어자가 되어 혁명은 혁명의 성격을 잃고 보수화된다. 이것은 혁명의 타락이며, 그러므로 아직도 우리가 이루어진 사회를 위한 긴 도정에서 겨우 그 첫발을 떼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용변으로 말해 준다. 서구의 자본주의자들과는 달리 불교에서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도 않았고 현존하는 정치 및 사회 체제 안에서는 결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불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현존하는 정치 및 사회 체제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 진정한 자유는 현존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모든 인위적 제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정이다. 부정을 통해서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또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에 이를 수 있고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는 불교적 변증법이 나오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영구혁명 철학이다. 이 점에서 불교와 진보적 사회주의 사상과는 놀랍게도 그 견해를 일치시키고 있다. 스스로가 부자유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최초의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 되므로 인간이 사회 경제적 제반 조건들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 제반 조건들이 인간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 소외를 극복하여 해탈 곧 인간 해방의 저 언덕에 오르자는 인간주의를 말한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개념이 불교의 근본 이념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지극히 당연한 당위 속에 오늘 우리나라 불교의 제반 모순과 문제 고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숨겨져 있는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다. 그렇지않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깨달음을 얻고 난 다음에 비로소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이분법적 수직 개념이 아니라 괴로움의 똥바다를 허우적거리며 헤쳐가고 있는 동시대의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깨우치고 더불어 함께 힘을 합쳐 고통의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마침내 이 세상을 사람의 땅과 자유의 나라로 만들자는 좌우의 수평 개념인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보살의 행이며 불교가 영원할 수 있는 길이다. 비구가 스스로는 노동을 하지 않고 피땀 흘려 일한 세속 중생들의 생산물을 시주라는 이름 아래 공양받는다는 것은 사유 재산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며 이 말은 다시 비구가 추구하는 목표가 개인적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얻은 바 경지를 그대로 세속 중생들에게 되돌려 준다는 적극적 행동의 실천 윤리를 말한다. 비구는 그리하여 어떤 경우에도 단지 노동을 하지 않고 시주물을 공양받는 결사여서도 안 되며 세속과 절연된 채로 개인의 성불만을 추구하는 자여서도 안 될 터이다. 떠난자는 반드시 다시 되돌아 와야만 할 것이며 되돌아와서는 자기를 떠나게 만든 동시대의 중생들에게 깨달은 바 경지를 널리 보시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산에 살든, 저자에 살든, 머리를 기르든, 머리를 깎든, 장소리든지 겉모습에서는 차라리 아무런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까닭이 진실로 여기에 있다. 불교만이 아니라 무릇 인간의 구원과 해방에 그 궁극적인 목적을 둔 종교일진대 한가지로 마찬가지일 것임은 물론이며. 생산 개념이 희박했던 원시 불교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고도로 분업화된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이른바 산업화의 시대이다. 생산과 분배가 문제의 핵심을 이루어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 중소 상인, 양심적인 성직자와 진보적 지식인 들이 좌죽입백(坐竹立白)으로 들고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팟쇼의 무리를과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혁명의 시대이다.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서 살인적인 저임금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몸을 불태워 죽고, 가구당 평균 삼백만원이 넘는 빚에 시달리는 농민들은 농약을 마시고 죽으며, 부자들을 위한 재개발에 밀려난 도시 빈민들은 삶의 터를 빼앗긴 채 울부짖고 있다. 칠십년대 벽두에 민중 해방 투쟁의 장엄한 횃불을 당겼던 전 태일 열사 이래로 작년까지 열두명의 노동자와 열명의 농민 그리고 스물세명의 학생들이 분신했다. 비구가 스스로 노동하여 최소한 지급 자족의 경제 체제를 갖추지 않고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허황한 구호에 매달려 시주물만 받아먹으면서 그 시주물의 독과점을 놓고 진흙 밭의 개싸움을 벌인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어찌 면할 것인가? 선농일여(禪農一如)를 실천했던 저 용성선사(龍城禪師)의 화과원(華果園) 운동을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아니라 좌구보리(左求菩提) 우화중생(右化衆生)이 맞는 말이다. 먼저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평생을 벽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동안 중생들은 다 지쳐서 죽고 말 것이다. 이것이 어찌 또 비구들에게만 국한된 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