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미학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호산
1997년 12월 190호
흔히 불교 교단을 승가僧家라고 한다. 평화를 실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화합승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승가는 화합, 평등, 무차별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옛적부터 승가에서는 대중생활에서의 그릇된 행동을 막고자 계율 이외에 일체 행동을 청규로 규범해 놓고 있다. 주로 소임의 목적과 자세, 소임자와 대중의 자기 반성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소임을 맡은 자는 무릇 그 권한을 남용하지 말고 대중을 공경으로 대하여야 하며 또한 대중은 사중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절은 흔히 절집이라는 말로 불리운다. 그것은 저마다 다른 수행자가 모여 살면서도 기정과 같은 자연스러운 질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나 제도가 아니어도 유지되는 질서. 이 질서의 아름다움을 화목과 화합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가정과 절집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부터 물러섬과 나아감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했다. 그것은 언제나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을 살피는 보살의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이란 언제나 자기 원근법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엄밀한 의미의 객관이나 공평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보살의 마음을 잃을 때 우리는 지혜를 잃게 되고 절집이 가지고 있는 ‘집’ 의 의미 또한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불교를 이해함에 있어 기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자리이타自利利他란 말을 할 것이다. 개인의 수행도 중요하겠지만 함께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어다. 함께 함으로써 거리낌 없이 허물을 드러내어 참회할 수 있고 그리하여 신뢰와 격려로 탁마하여 나갈 수 있다.
다행히 절집안에는 다른 종교에서 볼 수 없는 우리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대중으로 하여금 견見, 문聞, 의疑의 삼사三事에 있어 지신의 잘못을 비구대중에게 고백하고 참회하여 화합승가로 거듭나게 할수 있는 제도가 있다.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이 그것이다. 오직 불교만이 지닐 수 있는 우리만의 미학인 셈이다. 모두가 자신을 완전히 비운뒤 새로운 마음으로 만나서 불일증휘佛日增輝하고 법륜항전法輪桓轉하기를 발원해 보자.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