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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이지 않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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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7년 06월 64호
우리 수행자들에게는 계절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 좋은것 같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면 더위를 피하여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선실(禪室)에서 정진만 할 수 있는 결제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결제(結制) 기간이 되면 일체사를 접어 두고 용맹정진하고, 해제(解制)가 되면 하늘에 표표히 떠도는 구름 한조각처럼 만행(萬行)을 할 수 있는 것은 수행자들만이 누리는 혜택일 것이다.
이러한 결제와 해제의 제도는 부처님 생존시에 제정되었다. 인도의 원시불교 교단에서는 비구들은 무소유와 고행을 위주로 숲속이나 들판의 나무 아래서만 공부를 했다. 그러나 우기가 되면 기온이 습하고 사람을 해치는 독충이 많아서 아무데서나 명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질병과 불의의 사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정사(精舍 ; 사원)를 마련하고, 우기가 되면 비구들이 안전한 정사에 모여 함께 공부하는 가운데 서로서로 탁마하면서 수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다. 결제와 해제 기간은 이와 같은 배려가 깃들어진 합리적인 제도이다.
그뒤로부터, 나라의 기후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불교가 전해진 곳에서는 반드시 이 결제와 해제 제도를 정하여 지킨다. 이 결제를 안거(安居)라고도 하는데, 그리하여 불교에서는 수행 경력을 몇 안거 순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활동하기 힘든 무더운 여름 석달과 추운 겨울 석달을 결제 기간으로 하고, 만행하기 좋은 봄철과 가을철을 해제 기간으로 정해 놓았다.
지금은 결제와 해제에 대한 개념이 다소 희박해지고 있지만, 가까운 옛날만 해도 결제 기간 중에 돌아다니는 중은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다고 했으며 또 부모가 돌아가셔도 갈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지켰다고 한다. 생사일대사를 해결하고 고통 중에 헤매는 중생들을 하루빨리 구원하려면 그만큼 투철하게 공부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옛 조사스님들은 태어남이 바로 결제의 시작이고 죽을 때가 해제하는 날이라고 하여 항상 마음을 놓지 않고 정진하였다고 한다.
세속적인 모든 것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출가하여 일평생 선원에서 방석 하나로 만족하고 오로지 화두(話頭)하고만 씨름하는 수좌들에게는 결제날이 임박하면 어느 회상(도량)에 가서 정진할까 하고 망상 아닌 망상을 펴게 된다. 그리하여 수좌의 전재산인 바랑을 둘러메고 이 산속 저 산속을 왔다갔다 하면서 공부에 진전이 있을 곳을 물색한다. 그리고 그곳 회상의 어른인 조실이나 방장스님을 권견하고 능히 자기를 지도해 줄 수 있는지를 떠보기도 한다. 그런 후에야 바랑을 풀고 선원에 방부를 드리게 된다.
이러한 선택의 자유와 행각은 전문 납자(衲者 ; 수행승)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가승은 누구나 언제든지 자기의 자유 의지에 따라 선원에 들어갈 수 있다. 초파일 행사를 준비하느라 들떴던 마음을 쉬러 가기도 하며, 또 그간 저자거리를 배회하면서 해이해진 마음을 다 잡으려고, 아니면 지적인 갈등을 떨쳐 버리려고 가기도 한다.
우리 수행자들은 좋은 때와 좋은 장소를 선택하여 언제든지 돌아갈 곳이 있다.
그러나 도시의 소시민들은 태양이 벌겋게 타오르는 무더운 여름이 되어도 녹음이 짙게 물든 산사와 손시린 물이 쏟아지는 깊은 계곡 같은 것을 그저 동경만 할뿐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때문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면서 한 여름을 비지땀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어수선한 사회에서 아침마다 접하는 신문의 특종 기사마저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과 대기업의 외화 도피 사건, 그리고 가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정치 현상을 대하다보면 더더욱 답답하고 열화가 치밀 것이다. 하지만 끈끈한 인연에 얽매여 어쩌지 못하고 그저 오늘내일 하면서 기대 아닌 기대를 한 가닥 걸어본다. 그리고 애꿎은 소주와 담배 연기로 그날그날의 한을 풀어가면서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오늘날 산업 사회에서 자기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바둥바둥대고 사는 세인들에 비할 것 같으면 우리 수행자들은 어찌되었거나 선택받은 것 같다. 세인들이 선경의 세계로 여기는 곳에서 큰소리 치고 대접 받아가며 자기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별천지의 일로 볼 수만은 없는 현실에 함께 살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산중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정진에 임할 수 있는 것은 다 그들이 산업전선에서 흘린 피와 땀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에게 보답하려면 결제 기간만이라도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자세로 용맹 정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없는 신음소리를 죽비의 소리로 들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할진대 우리의 수행은 한낱 사치스러운 취미 생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포행 시간에 송화가루 머금으며 오솔길 돌아 해지는 저녁노을 바라보아도 부끄럽지 아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