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개천에서 용나는 일, 이제는 불가능 -가진 자를 위한 7차 교육과정-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김지예 2001년 10월 236호
부모의 눈으로 요즈음의 교육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예전의 우리가 자라고 뛰놀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생활형편이 나아져 부족함이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다행스럽고 부러운 마음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여유없이 이리저리 부대끼는 애들이 안쓰럽고 딱하기도 합니다.
물질의 풍요만으로는 인간의 행복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에서 배웠습니다. 우물에서 수도로, 부뚜막에서 싱크대로, 걸어 다니거나 버스 이용에서 자가용으로, 공기놀이에서 컴퓨터오락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혹은 훨씬 더 우리는 바쁘고 숨가쁘고 고통스럽습니다.
삶의 형태가 아무리 바뀌어도 진정한 인간의 행복은 ‘더불어 같이 사는 즐거움’에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최근 뉴욕의 테러사태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배웁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생활은 미래사회에 적응시켜야 한다는 부모들의 불안과 이기심에 의해 그들이 지금 이 때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미래사회의 모습이 어떠할는지, 그 모습은 우리가 함께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 합의도 없으면서 서로가 앞다투어 지지 않으려고 그저 돌진할 뿐입니다.
여기에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조차 더한층 불을 지펴 학부모와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7차 교육과정”이라는 괴물입니다. 말로는 ‘창의성’이니 ‘수월성’이니 ‘수준별’이니 하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교육학적 용어를 마치 새로운 이론인 듯 포장하여 현혹합니다. 교육이란 근본적으로 개개인의 개성와 창의성을 키워 주는 과정이고 그 하나하나의 수준과 관심과 이해도에 따른 접근을 시도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고 또 그렇게 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육부가 교육개혁 조치인 양 떠들고 학원이 함께 떠들썩하게 각종 선전광고로 호들갑을 떠니 학부모로서는 “도대체 ‘7차 교육과정’이 뭐길래 저러나. 일단 학원에 한번 맡겨보자”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7차 교육과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험과 짐작으로 ‘수준별’이란 말은 곧 우열로 나뉘어진다는 것쯤이야 쉽게 알고서, 가뜩이나 불안한 마음에 일단 과외나 학원을 보냅니다. ‘단계형’이란 것도 수준에 맞게 진급시키거나 아니면 유급시킨다는 뜻이니 영어와 수학은 더 일찍부터 배우게 합니다. 미술이나 피아노·수영이 아니라 영·수 그리고 컴퓨터에 집중하게 됩니다. 유치원부터 영어학원에 다니고, 해외연수를 가고, 경시대회용 학원을 따로 다니고, 모든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면 유랑의 무리처럼 학원을 전전하는 지금의 교육, 그것이 바로 7차 교육과정의 문제입니다.
특히, 고 2·3학년부터는 선택교과제가 도입되는데, 이는 원론적으로는 학생이 원하는 과목은 무조건 개설하게 되어 있으나 교사수요와 교실여건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제도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대학입시 하에서는 오로지 대학 가기에 유리한 과목과 대입수능 반영비율이 높은 영어와 수학, 과학 중심으로 시간표가 짜여지고 아예 타 과목은 개설조차 되지 않습니다. 대입에 유리한 과목으로 시간표가 잘 짜여지는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간의 편차는 점점 심해지게 됩니다. 일반학교에서는 교사수와 시설의 부족으로 사실상 선택교과제는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자율운영이 가능한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하여 대입에 유리한 시스템을 갖추어 일명 ‘귀족 입시 명문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젊은 석·박사를 데려와 쪽집게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열어 주면서 등록금이나 학생선발권을 학교에 일임하는 제도입니다. 예산을 투자하지 않고는 선택교과제가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아는 정부는 입시에 대한 학부모의 요구를 귀족학교로 유도하면서 사학재단에 넘겨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시범운영이라는 말로 자리잡겠지만 얼마 안 되어 거의 모든 사립학교는 귀족학교로 전환될 것입니다. 적게는 4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등록금을 낼 능력이 있는 학부모는 자녀를 이런 학교에 보내 명문대에 입학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결국 다양한 ‘선택’이란 이름으로 가진 자의 선택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이렇듯 ‘7차’의 교육이념은 ‘즐겁게 뛰놀고 더불어 사는 인성교육과 공동체 교육’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경쟁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원리로 교사와 학생을 모두 무한 경쟁체제로 내몰면서 교육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고 소비자인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제도입니다.
이 모든 배경에는 더 이상 교육을 위해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는 정책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교육이나 의료 등 복지정책은 그 사회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사회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국민들은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과 국가는 이러한 책무를 파렴치하게 저버립니다. 오히려 교육을 이윤창출의 동기로, 기회로 바라보고 시장화합니다. 외국자본이 교육시장에 들어오도록 개방하고, 학교를 사학재단에 넘깁니다.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학부모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도록 유도합니다. 공공부문, 특히 교육재정 부담을 줄이는 획기적인 방법이며, 이를 속이기 위한 말치장이 바로 ‘7차’입니다.
학급공동체나 인성교육의 중요성보다는 교과실력 중심으로, 다양한 교과의 균형성보다는 국·영·수·사·과 중심으로, 다수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소수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한 정책으로, 교육의 공공성 확보보다는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선택과 시장화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기본원리가 경쟁의 원리이기 때문에 온갖 사교육을 동원해서 좀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고, 소수엘리트를 위한 교육시스템으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20대 80의 사회로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상류층을 위한 귀족학교가 필연적입니다. 학교간의 서열도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우열 학교, 우열 과정, 우열 분단이 필수적이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교묘히 구성해 놓았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개개인은 처음에는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약하게, 그리고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단계적으로 도입됩니다.
가뜩이나 우리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나 자기 계발은 심각하게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작년 서울대 입학생의 반은 서울 강남에 살고 있으며 그들의 학부모의 직업은 고위 관료나 의사, 판·검사, 교수 등 전문직이나 회사 경영인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고교 평준화 구도 속에서도 교육 불평등의 문제는 이미 심각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자립형 사립고란 귀족학교를 만들어 아예 서민의 자식들은 대학에 들어갈 기회마저 빼앗아 버리면 그 동안 힘들게 지켜왔던 교육의 평등권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제 노동자, 농민의 자식은 일년에 수백만원 되는 귀족학교에 보낼 수도 없고, 천만원이 넘어가는 대학에 보낼 수 없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아이들은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7차 교육과정은 이러한 거대한 교육계 구조조정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인간의 권리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제대로 교육받는 것입니다. 자기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소질을 계발하고 이끌어 주는 것은 그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그래서 신분과 성별과 지역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자립형 사립고를 필두로 한 7차 교육과정은 이러한 교육평등권을 국가가 보장하지 않고, 교육의 공공성을 부인하면서 가진 자의 요구만 충족시킬 따름입니다. 이제 ‘개천에서 용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 만큼이나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났는가가 평생을 좌우할 겁니다. 아니 이미 주변에서 많이 보아오고 느껴왔습니다. 점점 닫혀진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의 밝은 미래, 차별받지 않고 사는 밝은 미래를 만드는 것, 우리 교사들과 학부모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