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절에 들자면 꼭 지나치는 곳이 있습니다. 산문 입구의 영지입니다. 전설 속에서 영지는 해인사를 둘러싼 일곱 봉우리에 올라 정진하고 있는 일곱 왕자의 그림자가 어려, 어머니인 왕비가 그 그림자만을 보고 안타까움을 달래며 발길을 돌렸다는 곳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슬픔과 자식들의 그리움을 생각하면 오로지 밑 모를 깊이의 투명함만이 전설을 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끼에 오륙백명이나 되는 대중을 걷어먹이고 난 설거지 물이 흘러들어 걸러지는 곳인 영지는 못가에 서 있는 제 얼굴조차 제대로 비춰 주지 못했습니다.
지난 여름 나는 가야산 자락의 한 암자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큰절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긴 한달간의 휴가를 보냈죠. 매일 한차례씩 암자와 큰절을 오가면서. 그윽한 가야산 품안의 모든 것들이 새롭던 첫날, 전설과는 달리 탁하기만 했던 영지는 단 하나의 예외였습니다. 둘째 날부터는 영지 곁을 지나치되 눈을 주지도 않게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오가기를 10여일째 되었을까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영지 곁으로 발걸음이 옮겨졌습니다. 아마도 거기에 걸터앉아 쉬기에 좋아 보이는 너럭 돌이 많았던 탓이겠지요. 그런데 바로 거기에 눈부시게 하얀 연꽃들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습니다. 그 빛깔은 일곱 아들을 모두 떠나보낸 슬픔에 바래고 또 바랜 어머니의 그리움만이 다가설 수 있을 정도로 순백했습니다.
연꽃이 진흙탕에서 핀다는 사실쯤이야 모를 나이는 지났습니다. 하지만 수백명의 허기를 닦아낸 수챗물 속에서 연꽃의 피어남이 전해 주는 감동은 이런 사실의 알고 모름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뛰어난 장인이 거기에 빛을 더 뿌린다고 혹은 빛을 덜어낸다고 그 아름다움이 더할 수 있을까요. 못물을 청정한 계류로 바꾼다고 그 향기 더할까요. 가장 낮고 천한 못은 가장 아름답고 귀한 꽃을 피워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꽃은 아름답되 미욱하지 않고, 우아하되 사치스럽지 않고, 품격 높되 교만하지 않고, 향기롭되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그 낮지만 귀한 자리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부단히 달싹이고 보채던 나의 마음 한 자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는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꽤나 되었습니다. 매사에 기쁨보다는 짜증이 앞섰습니다. 가지런하기보다는 번거로웠습니다. 평안하기보다는 부딪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공연히 건방 떨거나, 비굴해지는 모습들이 자주 마음에 걸렸습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치도 않은데 시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생각과 생각이 부딪치고, 주장과 주장이 으르렁댔습니다. 그리하여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곤 했습니다. 가깝기에 더욱 많이 부딪쳤고, 가깝기에 더욱 갈등했고, 가깝기에 더욱 미워졌습니다.
그래서 가깝지 않은 먼 곳으로,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경원하면서도 기대하는 그 곳의 번다함에서 떠나고 싶었습니다.
말은 그리하지만 사실 호강스런 자리였지요. ‘떠나라’하면 쉽게 발이 떨어질 리 만무인 일터고 가정이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내 마음자락은 샛바람에 풀잎 잦혀지듯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이를 어느 정도 넘게 되자, 비로소 ‘돌아와 거울 앞에 서게’ 된 탓이었을까요.
기나긴(?) 휴가를 산중 암자에서 보내기로 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겁니다. 적당한 거리에 큰절도 있어 예불에 참례도 하고 공양도 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을 희망했지요. 어떤 인연에서인지 그런 행운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거기서 저는 큰절에 하루에 한 번씩 들르기로 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마음자리를 살펴 내 삶의 서원을 새로이 하고자 한 것도 아닙니다. 언감생심 깨달음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었죠. 가득 차 있으되 비어 있고, 일어나고 사라짐이 무상하고, 나와 네가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추구하기엔 매인 것이 너무 많고, 걸림이 너무 많고, 버릴 게 너무 많은 나였습니다.
그저 경건하고 간절해지고 싶었습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마음자리를 조용히 진정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혼자서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흔들림이야 저에게서 비롯된 것인데 어찌 한손으로 돌을 던지며 다른 손으로 수면을 잔잔케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나에게 절하는 이의 모습은 가장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절집에서 가장 흔한 게 절입니다만 저는 평소 무심했습니다. 기껏해야 집안의 무병장수, 자식들의 입신출세 따위나 빌고 있겠거니 라는 선입관이 앞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편견은 첫날 대적광전에서 저 혼자 절하는 중년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그 분은 그저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고, 정성스레 떠받들기를 거듭했습니다. 그의 윗도리에선 어느새 땀이 흥건히 배어 나왔습니다. 그는 절 한번 하고 부처님 또는 보살님을 미련하리만치 그윽하게 우러렀습니다. 저는 그의 눈이 보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맑고 투명할까.
그 후 절하는 이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게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되었습니다. 큰절뿐만 아니라 홍제암 백련암 지족암 금강굴 등을 찾아가서도 열심히 구경했죠. 알량한 지식과 지위와 생각과 감정에서 온전히 떠난 사람의 모습, 구체적인 무언가를 기구하지 않더라도 누구도 그저 간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낮춘다는 것은 세상을 더욱 높고 귀하게 하는 것이고, 마음을 가난하게 한다는 것은 세상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절을 하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만 새겼지 몸과 마음은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점 흐트러짐없이 절하는 이의 뒷모습만을 망연히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몰래 지켜보듯이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느끼고, 느낌이 깊어지면 간절함이 쌓이고, 그리하면 나도 저렇게 몸을 낮추고 또 온전하게 내 몸을 던질 수 있겠거니 기대했습니다.
아마 산문 옆에 마침 상사화가 피어 있던 지족암에서일 겁니다. 스님도 처사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대웅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눈여겨보았던 대로 절을 했습니다. 한번 두번 세번… 그러나 내게 그런 간절함도 경건함도 일지 않았습니다. 내 사랑의 그림자도 곁에서 함께 머리를 조아렸지만 내 머리속의 무수한 번민은 칡덩쿨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휴가가 흘러가고 있을 때 가장 낮고 혼탁한 곳에 핀 연꽃이 홀연히 내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발 밑에 온몸을 던져 절이라도 하듯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경건하고 간절해지는 길은 몸을 낮추고 자리를 낮추는 것이라고 속삭이면서 말입니다. 거기서 마음속 불성을 보지는 못할지라도, 잠시나마 넋을 놓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온전하게 절을 할 수 있게 될 날은 언제일까요. 그리하여 내 마음에도 연꽃 한 송이 필 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