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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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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7년 05월 63호
1. 이 글이 지니는 의미
해마다 오월이 오면 불교계는 흥분과 기대로 술렁거린다. 진달래가 한바탕 흐드러지게 폈다 진 이 산하에 이제 갓 움트는 새싹의 연두빛 싱그러움으로, 그 설레임으로 그렇게 오월을 맞이하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
이는 분명 우리 중생들에겐 가슴 벅찬 하나의 광명이리라. 그러니 이 날은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참뜻을 새롭게 되새기고 가르치신 그 길을 올바로 걸어가며 그러한 실천의 모든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시킴으로써 부처님 그를 찬양하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간에 불교계에서 행한 부처님오신 날 행사는 반성해 볼 점들이 없지 않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오신 참뜻을 창조적으로 이땅에 펴고자 하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불교인들끼리 집안 잔치처럼 자축하는 식의, 행사를 위한 행사를 치루었다는 느낌이 크다.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인 봉축 행사치고는 너무나도 옹색하고 치졸한 프로그램들뿐인 것이다. 특히나 봉축 행사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제등 행렬은 그 본디의 취지는 온데 간데 없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강제로 동원된 종립 학교의 많은 중고생들, 제등 행렬의 의의조차 모르고 그저 대열만 쫓아가는 무리들, 제등 행렬을 자기네 단체의 선전 수단으로 생각하여 출발 순서를 서로 다투는 풍경들, 기독교와 교세가 비교되기 때문인지 칠순이 지난 노파와 유치부 어린아이까지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강행진을 시키는 행태들…오히려 서글픔이 앞서는 부처님오신 날이다.
이 글은, 그런 잘못들을 시정할 수 있기를 바라서, 부처님이 오신 참뜻을 올바르게 되새기고 봉축 행사의 백미라고 할수 있는 제등 행렬의 의의를 오늘의 현실에서 재창조해 보고자 함에 뜻을 두고 있다.

2.부처닙 오심의 잠뜻
부처님께서는 탄생하신 후 바로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모든 존재는 함께 존엄하며 온 누리가 모두 고통에 차 있으매, 마땅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고 외치셨으니, 이는 만민 평등, 인간 해방을 뜻하는 참으로 위대한 선언이었다.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까닭은 바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함에 있을진대, 그를 기리는 봉축 행사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그 뜻과 내용을 참되게 담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불교인 스스로만을 위한 행사, 어느 특정인 또는 특정 계층을 위한 행사, 심지어는 중생들이 겪는 현실의 고통을 유지, 존속, 발전시켜 가는 세력들을 비호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행사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제등 행렬을 비롯한 그 모든 행사를 과감히 혁신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제등 행렬은 그것이 갖는 본디의 의의가 중생 구제의 원력으로 이땅에 오신 부처님을 흔쾌히 맞이하고, 그를 찬양하고 가르치신 바 그 길을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스스로 검증해 보며, 인간 해방을 가로막는 현실의 고통으로서의 사회적 질곡을 극복하려는 노력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데에 있으리라. 따라서 오늘의 우리의 제등 행렬은 그런 모든 발원과 노력을 담아 분단된 한반도라는 사회적 질곡을 안고 있는 이땅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웃들 곧 민중들에게 회향시키는 인간 해방, 민족 통일의 대행진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민족 통일, 인간 해방의 대행진,
인간 해방, 민족 통일을 염원하는 대행진인 제등 행렬이 지나가는 그 길들은 바로 한국 사회의 역사적 질곡이 점점이 새겨진 현장이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지날 때에 우리는 과거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아울러 그것을 극복하려는 실천 의지를 확고히 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하는 과정이 되도록 철저하게 정진하는 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 화합의 마당(여의도 광장)
여의도! 관권에 의해 강제 동원된 중고생들의 국민 총화의 마당도, 이데올로기의 속박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이산 가족찾기의 마당도, 군복입은 자들의 대국민적 시위 현장으로서의 마당도 아니라, 진정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진리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 해방을 갈구하며 빈부귀천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함께 어우러지는 화합의 마당이어야 한다. 가진자가 거들먹거리고 없는 자가 주눅드는 마당이 아니라, ‘빈녀일등’의 정신으로 모두가 만나서 다같이 하나되는 대동(大同)의 마당, 화합(和合)의 마당인 것이다.

● 분단 극복의 마당, 여의도 대교
우리 민족사의 큰 불행인 분단, 그 질곡의 심연은 한강 물보다 더욱 깊다. 그 길고 깊은 분단의 심연을 건너는 희망으로 여의도대교는 우리 앞에 의연히 놓여 있다. 민족 통일, 인간 해방의 염원을 담은 등불이 꺼지지 않게 조심스러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러나 한강에 부는 바람은 차고 매섭다. 지난 날 이땅을 수탈하려고 몰려 든 열강제국들이 이 매서운 한강 바람에 편승했듯이 지금의 분단현실을 극복하고자하는 민족적 노력을 앗아가 버리려는 세력도 차가운 한강 바람으로 휘몰아쳐 온다. 한강, 그 바람 매섭고 그 심연 깊고 깊다 해도, 이미 내가 아니요 우리로서 하나된 조막손 모두 잡고 분단의 강 힘차게 건너 가리라. “석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 민생 확보의 마당, 공덕동 오거리
지아비 타고 떠난 새우젓배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낙의 간절한 바램이 조밥에 된장국 조촐한 저녁상에 영글 때, 옹기종기 불어 있는 마포 서강 판자집 청솔가지 태우는 내음은 분명 지아비 새우젓배에까지도 물씬 풍겼을 것이리라. 지금은 새우젓배도 다닥다닥 붙은 판자집도 온데 간데 없고 그 손자뻘 되는 젊은 부부는 보통이 몇개 머리에 이고 철거되는 판자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무거운 발걸음을 삼양동 달동네로 옮겼다는데 그 옛 자리엔 조국 근대화의 상징인 양 커다란 호텔 하나와 어마어마한 맨션단지가 들어 차있다.
조국 근대화!
전쟁의 폐허 속에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뿐이었던 시절. 봄이면 부황든 얼굴로 칡뿌리, 솔잎 씹으며 허우적거리며 넘던 보리고개. 못먹고 못살았기에 잘살아 보자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마는 외국에서 빌려온 돈은 몇몇 재벌이 나눠먹고 서민 대중들의 삶은 송두리째 뿌리뽑혀 빚잔치로 토지 잃은 농부들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어 하천변 산꼭대기에 한몸 누일 판자집 지었건만 광명 단지, 목동 신시가지, 상계 대단위 아파트에 밀려나 산으로 산으로만 내쫓기다보니 이제 더 오를 곳이 없어 달동네라 하였던가! 분명 이것은 아니다. 인간 해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민 평등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기본생존권마저 위협당하는 현실은 분명 선진 복지국가가 아니다. 정의사회가 아니다. 나라의 재산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을 미치는 그때가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가 된다.
오늘도 기본생존권을 보장받으려고 분투 노력하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이 공덕동 오거리를 민생 활보의 마당으로 삼아 격려의 응원가를 불러주자.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민권 승리의 마당, 서대문 네거리
서대문, 이 승만 독재의 선봉장 이 기붕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헐려 4.19기념 도서관이 들어 선 곳. 그날 그 함성, 백성의 승리, 민주 승리의 그날, 십여년 독재의 아성이 무너지던 날.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민권의 승리였다. 아들과 아버지가 한데 어우러져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고 어우러진 힘의 위대함을 확인한 백성들의 승리의 날이다. 그러나 어느 시인의 독백처럼 “민주는 피를 먹고자라는”것이던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중학생의 파편 박힌 시체. 백여명의 꽃다운 젊음을 앗아간 그 충성. 그러나 백성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거대한 ‘우리’ 였으니까. 백성은 결코 약하지 않다는 엄연한 진실을 역사 속에 새져 놓은 민권 승리의 마당에서 산화한 젊은 넋을 위해 진혼곡을 울려야 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벌, 나무아미타불.”

● 민족 자주 독립의 마당, 광화문 네거리
광화문, 세종로 일번지.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곳. 물밀듯이 닥쳐오는 왜적의 침략을 백의종군도마다 않고 민족자존의 영광을 수호하다 스러져간 겨레의 별 이순신 장군이 지켜보고 있는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얼마나 많은 이민족의 발길이 스쳐 지나갔던가. 일본 식민 제국주의자의 발, 소련의 군화발, 중국, 미국…
삼국시대 이후로 이땅에서 진정한 민족자주 독립의 염원은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나라에 복속된 통일신라로부터 시작하여 중국에 예속되었던 고려, 조선, 일본에 침탈되었던 식민지 시대, 분단 이데올로기에 맥을 못추며 미국에 종속된 해방 이후의 시대, 그야말로 종속으로 이어진 오욕의 역사뿐이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종속의 쇠사슬을 끊고 민족지주독립의 새역사를 창조하고자 새벽을 달려왔던 선각자들이 있지 않았던가. 후삼국의 나라 잃은 유민들, 고려의 묘청스님, 최 영장군, 조선의 전 봉준을 위시한 구한 말 의병들, 일제시대 때 북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무장항일 투사들, 그 못다 핀 꽃송이들 아직도 우리들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는데 민족자주독립의 대행진을 예서 그칠 수는 없는 것이다. 종속의 사슬을 끊고 우리것 우리가 찾으러 가는 힘찬 발걸음을 한발자욱씩 내디뎌야만 한다.
“나무미륵보살, 나무미륵보살, 나무미륵보살.”

● 회향의 마당, 조계사 마당
조계사 앞마당.
하늘높이 치솟은 홰나무 한 그루.
탑돌이 하는 아낙네들의 간절한 염원이 무성한 홰나무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려 있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오월의 하늘엔 어느덧 별 한무더기 쏟아져 내려 광명의 하늘을 열었다. 내 이제 돌아와 두손 모아 당신 앞에 섰아오니 부디 지금까지의 모든 공덕 일체 중생에게 베풀어 주시옵고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어우러짐 속에서 모두 함께 고통을 여의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옵소서.
지금, 이곳으로부터 인간 해방, 민족 통일의 사명을 우리 모두에게 깊게 심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돈독한 의지를 한데 모아 발원하옵나이다.
“온 누리가 모두 고통에 차 있으니 마땅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