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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 사법 운운(正法 邪法 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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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자의 소리 - 이은수 1987년 05월 63호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한 분인 사리불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선법이란 산 목숨을 죽이는 일,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일, 사음, 거짓말, 악담, 이간질, 꾸미는 말, 탐욕, 성냄, 그릇된 소견 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불선법의 근본은 또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있읍니다.
선법이란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으며, 사음을 하지 않고, 거짓말과 악담과 꾸미는 말을 하지 않으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 버린 것을 말하며 이러한 선법의 근본은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음에 있읍니다.”<사유경 중에서〉
올바른 법이란 거짓말과 악담과 이간질과 꾸미는 말을 하지 않음에 있다는 이 말은 이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될 언론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올바른 언론이 필요함을 가장 구체적이고도 쉬운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말, 즉 올바를 언론이란 문제를 은폐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정확하게 여러 대중에게 알리어 그 해결방법의 대중적 모색을 하는 데 있으며,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명예 등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음에 있다. 또한 올바른 언론이 바로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척도이며 이를 통해 대중적인 의식이 형성되고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할 때 올바른 언론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헌법에 언론의 자유가 분명히 명기되어 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의 자유를 약속했건만,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지 못한 오늘을 바라볼 때 올바른 언론을 구현하는 것은 올바른 법을 찾아 나선 불자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업 중에 가장 큰 업이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선 구업을 짓지 않음이 신앙의 첫째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려는 불자에게 있어서 올바른 언론의 구현이 중요한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불자로서 가슴을 여미고,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알려지는 불교에 대한 기사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마치 불교 집안은 깡패 집단, 탐욕에 가득찬 도적들만 모여 있는 것처럼, 침소봉대되고 있지 않은가? 승가대에 관한 기사라든지, 선암사에 대한 기사 등 최근의 기사들은 이를 반증하는 듯하다.
물론 불교에 그런 문제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관심을 갖고 싶은 것은, 기사의 크기나 발표의 시기에 있어 의구심을 감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을 씻고 신문을 뒤져봐도, 텔레비전을 보아도 타종교(기독교, 천주교)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기사는 없다. 대개의 사람들이 타종교는 원래 성스러운 종교이며, 반면 불교는 옛날부터 그랬듯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올바른 언론이 구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꿀먹은 벙어리인 양하는 불자들이 야속하다는 생각도 든다.
불교는 천육백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와 지금까지 민족과 함께 해 왔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역경과 고난을 민족사 속에서 헤쳐나온 종교가 불교였다. 한민족의 생활과 의식의 저변에서 불교는 뗄 수 없는 종교가 되었다. 물론 불교가 지닌 부정적인 모습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릇된 법을 행하며, 삿된 법을 삿된 법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삿된 무리들이 누구인가를 안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 불교의 부정적 모습을 지적한 것이 그들이며 이를 더욱 더 조장한 것이 그
들이기에 하는 말이다.
작년에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이 있었다. 시민들은 열렬히 호응했고, 그간 쌓였던 바른 언론에 대한 바램을 표출하였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기독교 단체는 종교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한 것이었다. 불자로서 올바른 법을 구현하는 것이 올바른 말을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신앙의 첫째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불교가 올바른 언론의 구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불자는 이 시대에 횡행하고 있는 그릇된 법의 원인을 규명하여 올바른 법을 구현해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오고가는 말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불교는 미신을 숭배하고 있으며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때문에 상식 이하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불교를 왜곡하고 그릇된 법을 말하는 반민족적인 미군들을 쫓아내야 한다. 이것은 올바른 법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신앙 생활이다. 더 나아가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했거늘, 야수와도 같이 생명을 도륙한 무리들을 몰아내야 한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 했거늘, 가난한 백성들이 피땀흘려 얻은 노동의 댓가를 약탈하는 무리들이 없어져야 한다. 사음을 하지 말라 했거늘 이를 조장하는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이질 문화를 마치 제것인 양 들여오는 사대주의적 발상과, 그 작태들이 없어져야 한다.
올바른 법을 구현하지 못하고, 삿된 법을 삿된 법으로 보지 못함이 올바른 말, 올바른 언론이 이루어지지 못함해 있다고 했을 때 우리 불자들에게 올바른 법, 올바른 언론을 구현해야 한다는 책임은 막중하다 하겠다. 산앙의 전체로서 우리 불자들은 가까운 데에서 먼 곳으로 두루 온 시방에 올바른 법, 올바른 언론을 구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