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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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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1999년 12월 214호
느닷없이 젊은 스님네 몇이 들이닥쳤다. 그것도 밤 매우 늦은 시간에. 이렇게 스님네를 맞이해 본지도 얼마만인지. 이 곳에선 거의 없던 일이다 놀라기도 했지만 반가운 마음은 서둘러 따뜻이 불 때고 촛불도 아낌없이 더 밝혔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도 잊은 채 찻상 앞에 모여 앉았다. 산골의 밤이 하염없이 깊어 가도 오랜만의 지기知己들은 먼 여정이 고됨직하련만 다 풀어헤치고 속절없이 들떠 올랐다.
그러지 말자면서도 반가움에 겨워 서로가 들뜨는 마음을 누르기 어려웠다. 늦은 시간에 길을 못 찾아 스님들은 한참이나 해매기도 했던가 보다. 그러했을 태지. 여기가 어디라고. 늦기도 하였지만 외지기도 하여 뉘게 물을 곳도 없어 고생고생 찾아온 스님들을 바라만 보아도 기꺼웁다.
날이 밝으면 왔던 길을 쫓아서 내려갈 테지만 바라보는 동안은 즐겁다. 사람이 그리웠던 거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더라’며 떠나온 것은 아니어도 호젓하게 살아본다고 깊숙이 들앉았음에도 한번씩 사람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직 그런 외로움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으나, 문득 그럴라치면 악을 쓰며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눈물 찔끔거리며 청승을 떨어대기도 한다. 그래도 그리운 마음이 다 부서지는 젓은 아니다. 이런 지경이니 사람의 모습이 비칠 때의 반가움은 무엇에 비기겠는가. 자주는 아니라도 간혹 집배원 아저씨들이 사람 구경을 하게 해 준다. 죄송한 표현이기는 한데. 요즘에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게 외딴 곳.
마을에서도 멀지만 길이 험하여 여간해선 엄두를 못 내는데, 아무리 그분들 일이기는 해도 보통 미안하고 고마운 게 아니다. 사실 오늘은 낙엽도 거의 떨어져 스산해지는 마당이라 여기서 만난 이분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누가 주소를 물어도 이런 데까지 설마 와 줄란가 싶어서 우물쭈물 넘겼었으니까. 그런 어느날 젊은 집배원 한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편지 한 통을 들고 올라왔다. 그 때는 길이 망가져 걸어서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던 때이기도 했는데. 아니나, 미안한 마음에 차나 한잔 들고 가라 했더니, 어떻게든 올라오려다가 오토바이가 펑크가 나서 서둘러야겠다며 바로 돌아섰다. 더욱 몸 둘 바를 모르겠긴 했으나 한번 길이 터지고 종종 사람 귀한 곳에 사람 혼적을 내려 주며, 적적함을 덜어 준다. 지나친 과찬일까.
이분들만큼 삶을 진솔하게 사는 사람들도 드문 것 같다. 세 분이서 번갈아 오는데 누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수고. 그 중에도 가장 나이 드신 김 주사님은 세월이 오래되어도 잊히지가 않을 것이다. 그런 날에 공교롭게 이쪽 담당이긴 했을 테지만, 몹시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이런 날은 별일 있어도 산길을 오기는 어렵다. 근데 이 아저씨 정말 올라오신 것 있지. 그 달치 해인지가 든 소포 뭉치를 들고. 폭우 속에 오게 된 걸 원망하는 게 아니라 비에 젖은 우편물만 오히려 미안해 하면서 들어서셨다. 얼마나 감동스럽던지, 무엇이든 다 내놓고 대접하고 싶은 마음. 그런데 어쩌나 마땅한 게 없으니.
여름이라도 빗속에 오시느라 줍기도 여간할 텐데 하며 겨우 차 한잔 뜨겁게 하여 온 마음대신 할 밖에. 젊은 아저씨 두 분도 마찬가지. 정직하게 살면 큰 손해나 입는 것처럼 되어 버린 풍토 속에서 비록 작은 모습이지만 이런 분들은 큰 감동을 선사한다. 자신들은 알는지 몰라도 아무리 통신 방법이 흔해도 우편물을 받아 드는 마음은 예나 이제나 반갑기는 똑같은 법. 크고 이름내는 일에나 서로 추켜들고 덤벼드는 세상에, 꾀 한번 부리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은 차라리 아름답다.
이 골짜기 마다지않고 오면서도 낯 한번 찌푸리지 않고 언제나 밝은 모습이다. 오래도록 이 분들을 가까이서 보며 살고 싶은 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