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차! 대들보를 동쪽으로 들어올려라(兒郞偉抛樑東).
동방은 아축비불, 수미광불, 묘음불, 금강승보살이
가장 먼저 마귀를 항복시키네
(東方阿須彌光妙音金剛勝菩薩最降伏降魔).
어영차! 대들보를 남쪽으로 들어올려라(兒郞偉抛樑南).
남방은 허공주불, 덕운법혜불이오, 그 다음으론 수미등불, 일월등불이네
(南方虛空住德雲法慧佛次復須彌燈次復日月燈).
어영차! 대들보를 서쪽으로 들어올려라(兒郞偉抛樑西).
서방은 무량수불이 무외행으로 정진하고, 대광불, 대명불이 해지는 곳을 정관하였네
(西方無量壽精進無畏行及大光大明正觀日沒處).
어영차! 대들보를 북쪽으로 들어올려라(兒郞偉抛樑北).
북방은 운자재불과 운자재왕불이 함께
중생을 자비로 비호하니, 무심무착한 까닭이네
(北方雲自在雲自在王俱衆生蔭慈覆無心無着故).
어영차! 대들보를 아래쪽으로 내려라(兒郞偉抛樑下).
하방은 명문불, 명광불, 또 달마불이 크게 사자후를
내지르니 하늘을 떠받치고 법의 깃발을 세웠네
(下方名聞佛名光復達摩大放獅子吼撑天竪法幢).
어영차! 대들보를 위쪽으로 들어올려라(兒郞偉抛樑上).
상방은 금단천이고, 향광의 대염견불, 무상사라수불, 잡색보화엄불이네
(上方金團天香光大焰肩無上娑羅樹雜色寶華嚴).
가지가지의 모든 색상이 다 이 곳으로부터 나타나니
(種種諸色相. 悉從此地現),
이는 바로 광명해요(此是光明海),
이는 바로 반야해요(此是般若海),
이는 바로 청정해요(此是淸淨海),
이는 바로 묘법해요(此是妙法海),
이는 바로 원각인이요(此是圓覺印),
이는 바로 수능엄인이요(此是首楞印),
이는 바로 금강인이요(此是金剛印),
이는 바로 법화인이라(此是法華印).
원컨대 이 세계, 이 해인에 길이 머물기를 비나이다
(願長住此界, 此海而此印).
상량문 육위사에 노래한 이 비방秘方으로 인하여 그 뒤부터 해인사에는 과연 큰 화재가 없었다. 이 상량문은 30대 추사체를 아는 데 전형을 보이는 글씨라고 하지만, 추사가 해인사에 남긴 유일한 글씨이기도 하다. 추사는 전국의 많은 사찰들에 글씨를 남겼지만,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판의 수백만 글자가 틀린 자나 빠진 자가 없이 바르게, 그것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필체가 한결같음을 보고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요, 마치 선인仙人들이 쓴 것 같다”고 찬탄해마지 않으면서 건물에 현판 글씨를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대적광전에는 건물 네 면에 현판이 걸려 있다. 정면인 남쪽에 걸린 <대적광전大寂光殿> 현판은 누구의 글씨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서쪽의 <법보단法寶壇>, 동쪽의 <금강계단金剛戒壇>, 후면인 북쪽의 <대방광전大方光殿> 현판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8-1933)의 글씨다.
대적광전 정면 여섯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차례로 걸린 주련 중에서, 처음 두 기둥의 글씨는 고종(1852-1919) 임금이 어린 나이일 때에 쓴 글씨다. 유심히 살펴보면, 아직 자기 것으로 완성되지 못한 글씨체임을 알 수 있다. 나머지 네 기둥의 글씨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1820-1898)의 글씨다. 주련의 글귀는 《화엄경》 제11권 비로자나품 제6 대위광동자게송이라고 한다. 여섯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 대광명을 두루 비치심이여(佛身普放大光明), 상호도 지극히 청정하시다(色相無邊極淸淨).
구름이 일체 국토에 충만하듯이(如雲充滿一切土), 곳곳에서 불공덕을 찬탄하네(處處稱揚佛功德).
광명이 비치는 곳에 넘치는 환희여(光相所照咸歡喜), 중생은 고통을 씻은 듯이 잊는다(衆生有苦悉除滅)
(번역은 해인사 내부 자료를 참조하였음)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해인사 전경에는 대적광전이 중층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원래 중층 건물이었던 것을 1817년 화재 이후 단층으로 지으면서, 비례감을 벗어난 현재의 건물로 세웠을 가능성을 읽게 한다. 현재의 대적광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로, 규모는 크나 건물의 짜임새에서 건물 뒤에 있는 대장경 판전에 비하여 훨씬 떨어진다. 아마, 화재 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신심 하나로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적광전은 정면에서는 어간으로만 출입하게 되어 있고, 동·서 양측면에는 전면쪽과 후면쪽으로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배면에서는 중앙 한곳만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1971년 지관 스님이 중수하면서 동·서 양측면에 출입문을 더 내었고, 1993년에는 법전 스님이 처마를 밖으로 더 빼내어 지붕을 고쳤다.
현재 법당 안에는 일곱 불상이 모셔져 있다. 법당 안을 향하면서 볼 때, 왼쪽부터 철조 관음보살, 목조 문수보살, 목조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그리고 맨 가운데에 본존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다시 그 옆으로 목조 지장보살, 목조 보현보살, 철조 법기보살이 차례로 봉안되어 있다.
본존 비로자나불상은 1769년에 조성되었는데, 그 왼편에 있는 또 하나의 목조 비로자나불상은 가운데의 본존불을 모시기 전까지의 본존불이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그 좌우의 보현보살상, 문수보살상과 더불어 삼존불로서, 고려시대에 가지가 셋인 큰 은행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삼존불은 처음에는 경상북도에 있는 금당사金塘寺에 모셨다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가야산의 용기사龍起寺로 옮겨졌다가, 용기사가 폐사가 되면서 1897년 해인사 대적광전에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밖의 불상들은 조성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다. 이와 같이 대적광전 불단에 주불 비로자나불과 양대 보살상 사이에 작은 불·보살상이 중첩되어 모셔져 있는 것은, 끊임없이 해인사가 중건되었음을 읽게 한다.
2002년 8월이면 해인사 대적광전은 1200년을 맞게 된다. 육십갑자가 10번씩 2회 지나간 긴 시간이다. 이 1200년은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의 개념에는 빗댈 수 없는 찰나에 속하는 짧은 시간에 속할지 몰라도 세속의 많은 중생들이 구제를 받아왔고, 또 해인사를 거쳐간 많은 고승과 대덕이 정진하였던 지난날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을 기리고 앞날의 발전을 위한 일을 도모한다면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사의 건물이나 불사가 주는 아름다움은 모든 미적 감각과 마찬가지로 감각적일지 몰라도, 사찰에 담긴 정신이 주는 아름다움은 감각적인 것에 끝나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곧 사찰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끌고 가는 깨달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현대인을 올곧은 정신세계로 통하게 하는 길이다. 그런 일을 이 기회에 도모하는 것은 현대사회와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