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득이네가 고향에 닿은 것은 새해 2월 l일이었다. 음력으로는 바로 섣달 그믐날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설날을 고향 친정에서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길을 재촉했지만, 겨우 이렇게 그믐날, 그것도 저녁 나절에야 닿은 것이다
고향 마을을 5리를 남겨 놓고부터 어머니는 벌써 눈물을 글썽이었다.
“점례야, 저 산모롱이만 돌아가면 외갓집이 있다.”
“정말!”
점례와 점득이는 너무도 기뻤다. 외갓집에 다 왔다는 기쁨보다 그 멀고 먼 고달픈 길이 이제야 끝났다는 기쁨이 더했다.
산 밑으로 뚫린 우차길을 동동 걸음으로 뛰다시피했다.
산모롱이 저쪽에 옹기종기 초가집이 모인 마을이 나타났다. 처음 보는 마을이 웬지 쓸쓸하고 외로와 보였다.
골목길로 아이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점득이네가 걸어오는 모습을 뻔히 쳐다보고는 킥킥 웃으며 돌아서 갔다.
조금 후미진 모퉁이에 돌담으로 지은 집이 외갓집이었다. 어머니는 숨이 찬지 잠깐 멈추어 섰다가 사립문으로 들어갔다.
먼저 눈에 띈 것이 사랑채 앞에 짚으로 엮어 세워 놓은 여막기둥이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검둥이가 공공 짖었다.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남자 어른이 돌아봤다. 마흔 살이 넘었을까 싶은 남자 어른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어머니가 목메인 소리로 불렀다.
“이게 누구야? 쪼깐이 아니냐?”
외숙부는 어머니의 손을 움켜쥐었다. 둘의 눈에 한꺼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엌에서 외숙모가 내다봤다.
“형님!”
어머니가 그쪽을 돌아다봤다.
“승호 고모 아니야?”
외숙모가 달려와 어머니를 부둥켜 안았다. 둘은 어우러져 섧게 울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눈물을 거두었다.
“어머닌 언제 돌아가셨수?”
“지난 가을에 세상 뜨셨어.”
어머니는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또다시 통곡이 쏟아져 나왔다. 울어도 울어도 설움이 가시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무척 보고 싶어했다고 외숙부는 거듭거듭 들려주었다. 섣달 그뭄밤을 꼬박 지새면서 길고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설날 아침은 제법 흥겨웠다.
외사촌 형들이 차례로 세배를 했다 점례와 점득이도 따라 외숙부와 외숙모한테 절을 하고 세배돈을 얻었다.
열여넓살이 된 외사촌 승호는 점득이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갔다. 뒷산으로 올라간 것이다.
“점득아, 나 고모부님 잘 안다.”
“어떻게 알어?”
점득이는 아버지 말이 나오자 가슴이 철렁하도록 놀랐다.
승호는 찬바람이 부는 뒷산 중턱의 소나무 밑에 앉았다.
“고모님하고 설날이면 우리 집에 놀러 오셨거든.”
“언제?”
“내가 꼭 점득이 나이만할 때.”
“……”
“‘고모부님은 나한테 세배돈도 많이 주셨어.”
“아버지가 형한테 돈을 줬단 말이지?”
점득이는 아버지가 아주 훌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배돈도 주고 옛날 얘기도 들려 주고 팽이도 만들어 주셨어.”
“그만치나 많이?”
“그래. 아주 자상하고 어질었어.”
점득이는 어깨가 자꾸 우쭐우쭐 올라갔다. 저쪽 잔솔밭에서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점득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점득이는 문득 가슴에 커다란 덩어리가 꿈틀하면서 목으로 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승호 형!”
“응?”
“나도 크면 아버지같이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정말이니?”
“그럼, 이제 설을 맞았으니 나도 일곱살인 걸.”
“그렇구나. 점득인 진짜 고모부님 닮았어.”
승호는 점득이를 껴안고 번쩍 치켜올렸다. 치켜올린 채 빙그르르 한 바퀴 돌리고는 내려놓았다.
승호 형의 필에 안긴 점득이는 온몸이 찌릿하게 기분이 좋았다.
둘은 산등성이를 타고 뛰어다녔다. 이등 저등 뛰어다니다보니 몸이 활활 더워졌다.
저녁엔 승호 형파 승숙이 누나와 막내 형인 승기와 함께 윷놀이를 했다. 편을 갈랐지만 하나가 남아서 점득이는 이쪽 저쪽 돌아가면서 놀았다.
승숙이 누나는 한꺼번에 다섯 번이나 모를 내기도 해서 결국은 승숙이와 승기 편이 이겨버렸다.
“한 번 더 놀아야지, 삼판 이승이야.”
점례는 져버린 것이 분해서 입을 비쭉대며 나섰다.
“그래, 맞다. 삼판 이승이다.”
승호가 따라 나서자 점득이도 덩달아 승호 편을 들었다.
“한 번 더 놀아야 정말 이기는 거다.”
“점득이는 뭐, 아무 쪽 편도 아니잖니?”
승숙이가 비쭉거렸다.
“나, 형하고 한 편이잖어?”
“넌 이쪽 저쪽도 아니다.”
승기가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어쨌든 윷은 다시 판이 벌어지고 끝내 점례와 승호 편이 이겨 버렸다.
설 명철은 이렇게 해서 외갓집 형과 누나하고 어울려 그런 대로 즐거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결코 즐거운 설 명절이 아니었다. 그동안 외숙부와 외숙모와 함께 앞으로 살아갈 일을 의논한 끝에 이곳 모과나무골 외딴집에 빈 방을 하나 구했다.
점득이네는 거기서 두부 장사를 했다.
아버지의 고향집은 고개 너머 20리를 가면 있지만, 본래부터 일가 친척이 없던 아버지여서 찾아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외갓집 마을에 그냥 머물게 된 것이다.
두부 만드는 일은 번거로왔지만 어머니는 부지런히 했다. 가마솥을 하나 장만하고 물그릇도 몇 개 샀다. 맷돌은 외숙부가 구해다 줘서 일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승호가 소 등으로 장작을 해다 줬다.
밤새 불린 콩을 맷돌에 갈 때는 점례와 점득이도 번갈아 매달려 맷돌짝을 돌렸다.
어머니는 손이 부르트고 어깨에 담이 올랐다. 밤이면 돌아누워 몰래 눈물을 훔쳤다. 점득이도 꼭 한 번 어머니가 우는 것을 엿보았다.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 보니 나들이문 쪽으로 돌아누운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소리 안 나게 흐느끼고 있었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점득이는 “엄마” 하고 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웬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났다. 조용허 요강에 오줌을 누고는 또 조용히 이불 속에 들어갔다.
어머니와 등을 돌리고 누우니 어느새 점득이 눈에도 물기가 가득 고여 들었다.
(아부지이…)
점득이는 마음 속으로 부르고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