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대지 위에 장대석으로 축단을 구축하여 탑전塔殿을 마련하였는데 그 중앙부에 장대석으로 정사각형의 탑구塔區를 이루고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을 건조하였다.
부도탑의 구성은 일반형과 같이 기단 위에 탑신을 안치하고 정상에 상륜을 장식하였다. 그러나 평면 구성은 부분적으로 같지 않다. 즉 기단부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으나 하대석은 정사각형이고 중대석은 8각이며 상대석은 원형에 가깝다. 하대석 측면에는 각 면에 양우주와 2개의 탱주를 모각하고 상·하단에 갑석형과 굽형을 돌렸으며 3구씩의 직사각형 편액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면에는 널찍한 복련 8판을 굵게 조식하고 그 중심부에는 1단의 괴임을 마련하여 중대석을 받고 있다. 중대석 여덟 귀퉁이에는 원주형을 모각하고 각 면에는 4엽문을 큼직하게 조식하였다. 상대석은 하면에 낮은 2단의 팔각받침을 각출하여 중대석 상면에 놓이게 하였는데 측면에는 하대 상면의 복련과 대칭으로 굵게 조식한 앙련 여덟 판을 돌리고 각 판내는 고사리문으로 장식하였다.
상륜부는 옥개석 윗면의 굵은 괴임 위에 마치 원구를 상·하로 자른 것과도 같은 고복형高腹形 부재를 놓았는데 표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으나 부드러운 치석과 유려한 곡선은 주목할 만하다. 그 위의 보개석은 팔각인데 하면下面의 처리와 낙수면의 형식, 여덟 귀퉁이 전각의 귀꽃문까지 옥개석과 같아 마치 옥개석의 축소형처럼 보인다. 다만 옥개석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전각부의 장막문이 두 곳 뿐이라는 점이다. 옥개석 위에는 연화문을 장식한 대석 1매를 놓고서 정상의 보주석을 받치고 있다. 보주석은 방주형方柱形인데 하부의 네 모서리에 앙련을 1판씩 장식하였으며 상부의 보주는 4귀퉁이에서 구슬을 물고 있는 형식으로 주변에 화염문 등의 장식은 없다.
이 부도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기단부에서 상륜부에 이르기까지 통일성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정사각형 위에 8각과 원형의 부재들이 그런 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고려말기에 건조된 부도탑으로서는 규모도 크며 가작佳作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 부도탑의 건조연대에 관해서는 태고사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 원증국사탑비에 의하여 추정할 수 있다.
비문에 의하면 우왕禑王 8년(1382) 12월 23일 국사가 입적하였으며 다음해 정월 12일에 다비하였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국왕은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향을 보내어 다비하게 하였으며 「원증圓證」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을 중흥사重興寺의 동쪽 봉우리에 세워 「보월○공寶月○空」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석종石鐘을 조성하여 사리를 가은양산加恩陽山, 양근사나楊根舍那, 차사此寺(지금의 태고사) 세 곳에 안장하였다.
한편 탑비를 건립한 시기는 비문 말미에 「홍무십팔년을축구월십일일洪武十八年乙丑九月十一日 문인전송광사주지대선사門人前松廣寺住持大禪師 석굉石宏 입석立石」이라 하였으므로 곧 우왕 11년(1385)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도탑의 건립은 언제인지 정확한 연대가 보이지 않는다. 국사의 입적은 우왕8년이나 다비한 것은 우왕9년이며 비는 우왕11년에 세워졌다. 그러므로 우왕9년부터 11년 사이에 부도탑도 완성되었을 것이다. 부도탑을 구축하고 치석과 부재의 조성 등을 감안할 때 부도탑의 건립연대는 우왕11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현재 이 석조부도는 태고사원증국사탑이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749호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근년에 이르러 이 곳의 통제구역이 완화되어 등산객들의 출입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점차 방문객이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