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譯經)의 시대 구분
역경의 시대 구분은 보통 구역(舊譯)과 신역(新譯)으로 구분된다. 구역은 구마라습까지를 말하고 신역은 현장 스님이후를 말하며, 구역은 다시 고역(古譯)과 구역(舊譯)으로구분할 수 있다.
안세고부터 시작된 고역에서는 용어들이 도교(道敎)의 성격을 많이 띤다. 그것은 중국에 불교가 들어와 중국 사람들에게 이해되기까지 격의불교(格義佛敎 ; 다른 종교나 사상을 빌어 불교를 해석하는 일) 시대를 거치는데, 이 시대에 불교는 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았던 도교의 개념을 받아들여 사람들에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식인 층도 그로부터 250년쯤 지나야 비로소 불교와 도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에 이루어진 첫단계 번역 작업은 문체가 서투르고 음사(音寫)가 많아 뒤에 가서 다시 손질을 많이 하게 된다.
구역기에 두드러진 역경가(譯經家)로는 구마라습(Kuma-rajiva, A.D.350~409)과 진제(Paramartha A.D.499~569)스님 들이 있는데 특히 구마라습의 번역은 의역으로서 문장이 빼어나다. 이 시기의 특징은 문체가 매끄럽고 아름다우며 의역이 잘 되어 읽기가 쉬운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이 쉽사리 불경과 친숙해질 수 있었는데, 그러한 점에서 지금까지도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장 스님(A.D.600~664) 이후의 신역기에는 용어들을 말의 어원을 쫓아 번역하였기 때문에 어휘들이 정확하고 전문적이었던 점이 두드러진 특징을 이룬다. 그런 한편, 전문적인 용어의 사용으로, 문체가 사변적이고 이론적이어서 대중이 접근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이 시기에는 음사(音寫)도 조직적이고 정밀하게 하였다. 따라서 이 신역기는 중국 불교를 인도불교에 가장 가깝게 접근시킨 시기가 된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역경가는 현장, 불공, 의정 스님 들이 있다. 현장 스님은 인도에 가서 나란다대학에서 구사 및 유식 등을 배움과 더불어 범어(梵語)를 직접 익혀 와서 번역을 시작했다. 현장스님은 주로 경장(經藏)과 논장(論藏)에 관계되는 경전을 많이 번역하였고 그의 번역은 한 글자한 귀절도 소홀함이 없는 정확한 것으로 유명하다. 불공스님의 번역은 밀교 계통이 많은데 음사가 정확하여 불교 진언에 많이 쓰였다. 그리고 의정 스님은 율(律)에 관계되는 경전을 번역하는 데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전역 기구(傳譯機構)
한역 경전을 펼쳐보면 경의 이름 바로 다음 줄에 역자의 이름이 나오고 그 다음 줄부터 경문이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어느 경은 누가 번역하고 어느 경은 또 누가 번역했다고들 말하나, 실제로는 한 사람이 그를 모두 번역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개 공공 사업으로서 또는 국가 사업요로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업을 보완하는 제도로 역경원 또는 번역원이라고 하는, 번역을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그 안에 다음과 같은 세부 직제를 두고 시행하였다.
1. 역주(譯主)/범본(梵本)의 원전을 읽고 그 뜻을 강의하는 사람으로 전역(傳譯)의 주인공이다. 어느 경이 누구의 번역인가를 말할 때 이 역주가 그것에 해당한다.
2. 증의(證義)/역주를 도와 범어 원본을 평량(評量)한다. 역주와 더불어 원본의 구성이나 의미를 규명하는 직책이다.
3. 증문(證文)/역주가 낭송하는 범어 문장을 듣고 그 발음에 관해서 검토하는 직책이다.
4. 서자(書字)/범어의 낭독을 자세히 듣고 그 음을 중국글자로 나타낸다. 곧 음사하는 직책이다. (보기 ; surra→修多羅)
5. 필수(筆受)/범어의 음을 옮겨서 중국어로 만드는 직책으로, 음사의 단계를 지나 의역을 행한다. 이를테면 ‘修多羅’를 한자 말로 경(經)이라고 번역하는 것 따위이다.
6. 철문(綴文)/번역된 단어를 늘어 놓고 중국어의 문법에 맞게 맞추는 직책이다.
7. 참역 (參譯)/양국의 글자를 검토하여 잘못이 없게 하는 직책이다. 곧 번역본을 원본과 대조하여 검토하며 문장을 다듬는 단계이다.
8. 간정(刊定)/긴 문장을 빼고 다듬어 구절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한다.
9. 윤문(潤文)/문장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작업이다.
한역대장경의 특성
경전을 한역하는 작업에 따른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범어는 표음(表音) 문자인데 한문은 표의(表意) 문자여서 글자의 속성이 본질적으로 달랐을 뿐더러,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 중국과 인도 사이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으므로 서로 문화적인 동질성을 갖지 못한 데에서 오는 어려움이 특히나 컸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중국은 불경의 한역 사업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번역 기구를 설치하고 수많은 역경가를 동원하여 한역대장경을 이루어냈다.
한역대장경은, 첫째로, 그 양이 무척 방대한 것을 특징으로 꼽는다. 현장 스님이 번역한 반야부 600부만 하더라도 기독교의 신-구약 성경을 합친 것의 25배나 된다. 그러한 한역대장경의 분량은 다른 어떤 대장경도 따라올 수 없게 방대하며, 인도 원전의 대부분이 상실된 현재로서는 인도 불교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둘째로, 한역대장경은 번역이 일찍 시작된 것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특히 지역적으로 국가적으로 맥이 닿을 때마다 산발적으로 번역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같은 경천이 수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 인도에서는 같은 경을 시대가 지남에 따라 개정, 중보하였을 경우에 옛것은 없어지기도 하였으나, 한역에서는 옛것과 새것이 함께 보존되어 있어 그 변화 발전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가 있다.
그밖에 한역대장경은 연대가 대체로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어 경전의 성립 시기를 쉽사리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한역에 사용되었던 범어 경전이 전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하나의 미스테리로 학계의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 이것은, 미루어 짐작하건대, 중국인의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에서 그리고 완전 번역을 하였다는 자신감에서 한역 사업을 끝마친 뒤에 범어 원전을 없애 버린 듯도 싶다.
맺는 말
중국에 전해진 경전은 다라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문으로 번역되었다. 자국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과 자부심이 강했던 중국인들은 그들의 문자와 언어로 불교를 이해하려 하였고, 그런 의지가 밑받침이 되어 후한에서부터 송대에 이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세계의 번역사상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방대한 사업인 한역대장경의 완성을 보게 된것이다.
중국 불교는 이 한역대장경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중국 불교가 실론, 버마, 타이의 불교와 다른 점은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성하던 시대에 받아들여 대승불교라는 점이다. 대승불교는 중국에서 발전되고 형성되어 천태종이나 화엄종 같이 깊은 철학을 가진 교학을 발달시켰으며, 선(禪)이나 정토와 같은 실천 불교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중국의 대승불교는 한역대장경과 함께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 여러나라에 전래되어 각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과 일본 불교의 원류도 이 중국의 대승불교이다.
중국인들은 경전의 한역뿐만 아니라 수많은 불교 전적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영향으로 불교가 중국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컸다. 중국에는 유교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뛰어난 정치 및 윤리 사상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종교사상이나 종교 문화는 부족한 면도 있었다.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의 사상계는 보다 넓고 깊게 전개되어 시야가 확대되고 그 내용이 풍부해졌다. 곧 유교의 경우에는 송학(宋學)이나 양명학(陽明學)을 완성시켰고, 도교는 도교의례나 도교 교리를 발전시키는 데에 불교의 전래가 큰 공헌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 공예, 천문역수(天文歷數), 음악과 의학의 분야에서도 인도나 서역의 문화 요소를 섭취함으로써 한층 더 그 내용을 풍부하게 할 수 있었다.
중국 불교는 한역 작업을 완료함으로써 불교를 외래 종교로서가 아니라 중국인의 사상 속에 깊이 침투된 중국인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데에 그 독특한 점이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