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라면서 호박을 넣고 만든 음식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호박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내 유년의 기억 한 곁에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시골은 아니었지만 도심 변두리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우리 집 주변에는 유난히 공터가 많았고 아버지께서는 그 공터를 일구어서 봄이면 배추며, 상추 등 여러 가지 채소들을 심으셨다. 그 많은 채소 중에서 우리 육 남매가 유난히 좋아하는 채소가 있었으니 그것은 호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것질거리가 변변찮은 그 시절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별미의 주된 재료가 밀가루와 호박이었기 때문이다. 봄이면 아버지는 밭 군데군데 조그만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작은 호박씨를 두세 개 심으시고는 비료가 귀하던 시절이었고 보니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인분을 그 주위에 골을 내어 뿌리셨다. 인분을 뿌리고는 아이들의 근접을 막기 위해서 작은 돌멩이들로 표시를 하셨지만 길고 무더운 여름 밤 내내 동네 아이들과 뛰어 놀다 보면 그 인분 섞인 호박 구덩이에 빠지는 경험은 여름이 끝날 때까지 누구나 한두 번은 겪어야 했다. 그런 일이 있는 날이면 어린 마음에 그 역한 인분 냄새보다는 어머니의 꾸중이 두려워 집 주변을 맴돌곤 했었다.
여름이 깊어질 때쯤이면 호박넝쿨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어머니는 그 중에서 가장 연한 잎들만을 골라 까칠한 껍질을 벗겨내고 깨끗이 씻어 두었다가 밥 지을 때면 김이 오르고 뜸이 들기 시작하면 그 위에 얹어 쪄내셨고, 거기에 애호박이랑 풋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끓인 된장찌개가 곁들여지면 밥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여름밤은 깊어만 갔고….
아침저녁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호박넝쿨마다 우리들 머리보다 훨씬 큰 호박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우리는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실 “호박범벅” 생각에 마냥 신이 났다. 어머니께서 잘 익은 호박으로 만들어 주는 호박범벅은 별미중의 별미였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어머니께 떼를 쓴다고 해서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친척아이들이라도 우리 집에 놀러 오면 그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주셨으니 어린 마음에 애탐이 오죽했으랴….
어쩌다 어머니께서 광에서 잘 익은 호박을 꺼내 오시는 날이면 야단법석 우리 집은 제비가 물어 준 ‘박 타는 흥부네 집’ 그 자체였다. 앞마당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평상에 잘 익은 호박이 놓여지고 우리 육 남매는 어린 강아지들처럼 그 주위로 쪼르르 모여 들었다. 우리들의 탄성 소리와 어머니의 익숙한 칼 솜씨에 맞춰 그 속이 드러나면 거미줄처럼 가늘게 얽혀 있는 씨는 기인 겨울 밤 입이 궁금해지면 까먹기 위해서 햇볕에 말렸다. 단단한 껍질을 깎아 내어 고운 속살이 드러나면 커다란 솥에 넣고 한시간 정도 삶아 뭉글해지면 잘게 으깬 다음, 미리 삶아 놓은 팥과 설탕을 버무려 넣고는 밀가루 수제비를 얇게 떠 넣고서 약한 불에 이삼십 분 정도 끊이면 우리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호박범벅 완성이 되어 우리들 앞에 한 그릇씩 놓여졌다. 거기에 알맞게 익은 김치를 곁들이고서 밥상 가득히 둘러앉으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은 돌아오고 들판에는 호박들이 가을볕을 받으며 빛깔 곱게 익어가고 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호박범벅 한 그릇에 마냥 행복해 하던 어린 계집아이였던 난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지금 손수 호박을 텃밭에 심으시던 아버지도, 그렇게 맛난 호박범벅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도 돌아오실 수 없는 먼길을 떠나셨다. 부모님 생각이 날 때면 어설프게나마 잘 익은 호박으로 그 때의 기억들을 되살려 호박범벅을 만들어 보지만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을 찾을 수 가 없으니 살아가는 날이 더해질수록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병처럼 깊어지고….
늘상 직장 생활에 쫓기다 보니 아이들에게 해 주는 음식의 대부분이 빠르고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햄이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 위주다. 흙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지금 식탁에서 아이들이 자라서 지금의 내 나이가 되고 나 역시부모님들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난 다음에 내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워할 음식이 하나라도 있을지…. 깊어지는 이 가을에 내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