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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를 두려워 할 줄 아는 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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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7년 08월 186호
절집 안에 많이 퍼져 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조계종 돌아가는 모습과 나라 돌아가는 모습이 빼닮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조계종과 정치권의 호름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옛날 이야기는 그만두고 개혁종단 출범 뒤만 보더라도 나라의 정국과 종단의 정국은 매우 비슷하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과 함께 스스로를 문민정권이라고 부르고,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취임 뒤 스스로 문민집행부라고 지칭한 것은 정부와 조계종단 사이의 닮음꼴 행진을 알려는 시작에 불과하다. 김영삼 정권이 깜짝쇼 로 대변되는 이른바 ‘한건 주의식 언론 플레이’ 로 국민의 시선을 ‘현혹’ 시키고 임기 초기 서슬퍼런 개혁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다가 결국 스스로의 올가미에 갇힘으로써 역대 가장 형편없는 정권으로 전락한 것이나, 조계종 월주스님 집행부가 정도가 지나친 ‘이벤트성 행사’로 종도들의 빈축을 사고 원장 스스로가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지나치게 선호한 나머지 끝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된 것, 그리고 개혁의 보루요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삼보정재의 투명한 운용원칙이 선본사의 예산 임의전용이나 유출 의혹 등으로 크게 퇴색해 개혁종단이라는 명분에 먹칠을 한 것 등은 정치권과 조계종이 얼마나 유사한 궤도를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런데 정치권과 조계종과의 닮음꼴 행진은 행정부(청와대)나 총무원의 닮음꼴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회와 조계종의 11대 종회의 모습도 판에 박은듯 닮았기는 매한가지이다.
초선 국회의원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의욕분출, 상당수 의원들의 물갈이 등에 힘입어 새로운 국회상을 보여주리라 기대를 모았던 국회는 결론적으로 여야 공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이다. 청와대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던 여당 의원들의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개정, 전근대적 ‘보스 정당정치’ 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야당 의원들의 자연스럽지 못한 창당 강행 등은 결국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자존심을 구겨버린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들도 불자들을 적잖이 실망시켰다. 구태는 사라지지 않았고, 개원 초반 잠시 활발했던 활동과 개혁성은 이내 수그러들고 말았다. 총회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몇몇 정치승의 주도아래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종회의원은 의정활동을 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참신한 활동을 기대했던 초선 종회의원들이 정치논리에 휘말려 어설픈 기성 정치승의 행태를 답습하는 경우를 접할 때면 종단의 미래가 암담한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관점에따라 다를수도 있겠지만 조계종 종회의원들의 수준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어쩌면 종단의 미래에 있어 지금의 종회는 과거의 종회보다 더 골치 아픈 장애요인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 동안 종회활동을 하면서 이미 참신성을 잃어버렸거나 개혁성보다는 개인 또는 집단의 이해에 더 길들여진 것으로 보이는 소장, 신진급 종회의원들이 종회에 입성하기 전의 참신성이나 개혁성의 ‘껍데기’ 를 애써 버리지 않으면서 눈앞의 이해나 부지불식간 생겨난 기득권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94년 종단개혁이라는 역사에 남을 거사를 성공시킨 뒤 조계종 종무행정의 체계는 많은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서의현 시대의 무소불위했던 총무원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고, 종무행정의 근간을 3원 체제, 곧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으로 분산시켰다. 이 가운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중앙종회의 비중이 더욱 커진 점이었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개혁의 장이 되어야 할 조계종 중앙종회의 구부러지고 빗나간 행태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입법 및 대의기구로서 종헌종법제 ·개정과 원로회의 의원 추천, 총무원장·교육원장·포교원장·호계원장 선출권, 호계위원·법규위원·중앙선거관리위원 선출, 호법부장의 임명 동의, 총무원장·교육원장·포교원장의 불신임 , 예결산안의 심의 및 승인, 종단재산의 처분동의 종단기관 및 각곱 종무기관에 대한 감사, 직영사찰·특별분담사찰 지정에 대한 동의, 종무위원 해임 결의, 정계의 사면 및 경감·복권에 관한 동의권 등 말 그대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 정도면 마음먹기에 따라 못할 일이 없을 정도다. 실제 개원 초기 11대 종회의 활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조계종에 총무원은 없고 종회만 있다’ 는 말이 나올만큼 때로는 총무원이 맡아 처리해야 마땅할 사안까지도 갖가지 특위를 구성해가며 종회가 앞에 나서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은 여전히 식지 않은 94년 개혁 열기의 관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중앙종회에 ‘종발당’ 이니 ‘종실당’ 이니 하는 파벌이 형성되고, 개혁 열기가 차츰 소멸되자 종회는 이해를 논하고 기득권을 지키고 확장시키려는 진흙탕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날로 퇴색하는 개혁의 기운을 지켜내야 마땅할 당사자들도 개혁의 지속보다는 진부한 논리를 동원해 가며 자신들이 기득권이나 지키려는 정치논리에 깊숙이 빠져 있다. 개혁성향이 체질화하지 않은 세력들은 권토중래의 의욕속에 세를 넓히거나 총무원 집행부에 대한 즉흥적이고 간헐적인 공세로 도리어 정당한 비판에 대한 총무원 집행부의 면역성만 길러 주는 결과를 낳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최근 불교방송 공금횡령 사태나 선본사 예산유용사건, 봉은사 체육문화회관 건립을 둘러싼 의혹 등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일부 종회의원들에 대한 종회의원들의 시각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태의 진상을 은폐하고 책임질 사람을 골라내 다시는 이러한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는데도 불교 전체의 이익이라는 큰틀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 이해에 얽매여 불교를 망치는 행동을 서슴지않는 사람들을 용인하거나, 또 이러한 행태가 가능하도록 다수 종회의원이 이를 방관하는 풍토는 종회의 현주소를 잘보여 주는 단면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11대 중앙종회는 초기에 종단의 입법 및 대의기구로서 그런대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오히려 전의 종회보다도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정파로 갈려 이해득실의 계산에 급급하다가 종회의장 선거를 앞두고는 세속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극한적인 대립과 술수의 동원, 합종연횡의 만연 등 볼성사나운 행태를 보여줬다. 지난 4월 15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임시중앙종회는 성원이 되지 않아 아예 개원조차 못하는 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종단의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이에 대한 처리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 논리에만 끄달려 다니다보니 상정된 지 일년이 넘은 종법 제·개정안이 무려 다섯 가지에 달한다. 최근에는 이른바 ‘종회 5인방’ 이라는 의원들에 의해 비교적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근거를 바탕으로 한 총무원의 부정-사실여부는 아직 판명되지는 않았지만-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이를 객관적 시각으로 검토하기보다는 정치적 논리로 받아들이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11대 종회의 문제점은 이러한 갖가지 사건. 사태 말고도 종회의원으로서의 기본적 자질 부분에서도 지적받고 있다. 적어도 스무 명에 가까운 종회의원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상습적으로 회의에 불참하거나 회기 도중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 본회의에 앞서 상임위원회의 충분한 활동을 통해 종회를 효과적으로 운용해야 함에도 이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는 점, 종회의원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종단현안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종헌종법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점 등이 바로 자질과 관련해 거론되는 문제들이다.
지난 6월 9일 열린 126회 종회에서는 급기야 총무원장으로부터 ‘종회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는 지적을 종회 회의 석상에서 듣는 ‘모욕’ 까지 당하기도 했다.
“비구(니) OO는 종단과 사부대중의 법익을 증진할 중앙종회의원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 이라는 선서가 부끄럽지 않은 종회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종회의원 저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불교 전체의 이익을, 집단이나 단체보다는 종단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공심公心을 갖출 때에나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이제 11대 종회의 임기는 일 년 남짓 남아 있다.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불가佛家에 사자는 외부의 적이 아닌 몸 안에 생긴 벌레에 의해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 벌레를 잡는 일은 마땅히 종회의원들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벌레를 잡아야 할 사람과 벌레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종회의원들 모두가 지신의 활동이 불교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에 대해 두려운 마음으로 진지한 고민을 하기 바란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