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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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이상균
1999년 12월 214호
인류 문명의 찬란한 영광과 한계를 보여준 20세기가 저물어 간다. 20세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물질 팽창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에 올라 탄 인류는 오직 물질의 확장과 재분배에만 몰두해 왔다. 그리고 그 결말은 정신의 빈곤으로 이어졌다. 인류는 이제 정신의 빈곤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정신 문명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한국불교 역시 인류 문명 못지않게 수없이 많은 부침을 거듭해 왔다. 숭유억불이라는 오백 년의 긴 어둠을 뚫고 나온 한국불교는 근현대에 상상을 초월하는 생명력으로 과거의 불교의 위용을 확보했다. 다종교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불교는 여전히 제1 종교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이듯 불교도 포교라는 이름으로 사회 대중과 밀접한 거리와 공조를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종교간 포교 전쟁은 종교를 대중의 삶 깊숙한 곳까지 끌어 들이는 역할을 했다. 언론, 출판, 문화 중 가장 선두 주자는 단연 언론이다. 1960년 불교신문 창간을 필두로 80~90년대 연이어 불교계 신문들이 창간됐으며 이어 불교방송과 불교텔레비전 창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해인’, ‘불광’, ‘구룡’ 등 십여개의 월간지가 등장했고 그 이후 사찰마다 수많은 사보를 펴내기에 이르렀다. 비야흐로 불교언론의 황금기라 불릴 만하다.
불교언론의 태동은 1960년 불교신문의 창간이다. 한국불교의 외형적인 성장과 맞물린 불교신문의 창간은 불교의 대 사회적 위상을 높였으며 불교문화 현대화에 기여했다. 불교신문을 중심으로 법정스님, 고은, 이기영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지식인 층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기독교적인 성향을 지닌 서구문화의 흐름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불교와 불교문화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한걸음 나아가 불교 내부의 변화도 이끌어 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불교교리뿐만 아니라 다방면의 풍부한 교양을 갖춘 이들을 중심으로 불교문학과 불교출판은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불교신문은 척박한 풍토 속에서 인재를 배출해 각 분야로 내보내는 인재양성소 같은 구실을 했다.
그러나 불교신문은 급속히 팽창한 불교내부의 개혁 문제에 소홀히 하면서 불교 대중의 외면을 초래했다. 이와 함께 불교 내부의 분쟁은 또 다른 언론의 출현을 요구했다. 종단기관지라는 불교신문의 태생적 한계는 곧바로 법보, 주간, 대한불교, 현대불교의 창간을 불러일으켰다. 80년 후반 법보신문의 창간은 이러한 불교계 신문 창간 러쉬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창간 러시로 바야흐로 불교계 신문은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다변화 된 불교언론은 물적, 양적인 팽창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변화를 이뤄내지 못해 폭 넓은 대중을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불교언론의 주목할 만한 변화는 90년에 이뤄진 불교방송의 창사다. 불교방송의 창사는 소규모 자본에 의지하는 활자 매체에서 벗어나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언론매체로 질적, 양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밑거름이 됐다. 불교방송의 창사는 곧바로 이어진 불교텔레비전의 창사로 연결되는 내재적인 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국초기 서울, 부잔, 광주등에서만 전피를 내보내던 불교방송은 곧 대구, 청주 등을 개국했으며 강원도에 그 지국 개국 허가를 받아 조만간 전국방송망을 갖춘 대규모 방송사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불교방송은 전파매체의 특성에 맞게 대중에게 불교의 향기를 빠르게 전달한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시청각에 익숙해진 일반 대중들의 욕구는 곧 바로 불교텔레비전의 창시에 불을 당겼다. 2백여억 원의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불교텔레비전은 다 매체 시대에 총아로 불교 언론 매체의 새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정부의 잘못된 유선 채널 정책과 창사 이후 닥친 경제한파로 인해 최악의 경영난에 몰려 부도 위기에 몰려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현재 불교언론들의 최대 화두는 경영난 타개다. 언론은 그 어느 분야보다도 철저하게 전문적인 분야지만 비전문 경영인들의 운영으로 말미암아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다. 이와 함께 새로운 세기에 맞는 불교 언론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이념적인 문제도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음은 불교출판이다. 불교출판은 어려운 한자로 이루어진 불교경전을 한글화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경전의 한글화는 일반 대중들에게 어렵다고 인식되어 있는 불교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이해시키는 데에 충분한 역할을 했다. 활발한 역경 사업으로 많은 경전이 일반 대중들에게 선보임으로써 경전이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
불교출판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경전, 영험담 등이고 또 하나는 ‘무소유’ 등 에세이류가 그것이다. 불교출판시장의 이중적인 흐름은 독자층도 뚜렷하게 둘로 갈라 놓았다. 불교를 믿는 신자들은 주로 영험담과 법문등에 관심을 기울 였고 일반 대중들은 스님들의 에세이를 즐겨 찾았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법정스님의 「무소유」 김성동의 「만다라」등 몇몇 에세이를 빼고는 베스트셀러가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은 열악한 불교출판계의 현실에 기인한다. ‘민족사’ ‘불교시대사’ 등 십 년 내외 명맥을 이어오는 출판사가 십여 개 정도며 그나마 전문 출판인력을 보유한 출판사는 얼마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짚고 넘어갈 것은 필진의 부족이다. 이미 대중적으로 각인돼 있는 몇몇 필진을 제외하고는 불교를 대중적으로 소화해 낼 필진이 없음은 불교출판을 더욱 어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불교출판의 주 재정원은 대개 스님 개인의 법문과 영험담 등 법보시용 출간이다. 제작비가 확보되는 법보시용 출판은 베스트셀러를 내지는 못했지만 불교출판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큰 힘이 됐다. 그렇지만 불교출판의 앞날은 밝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반 대중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부족한 필진을 확보하고 대중적인 수준에서 불교 전문 출판 영역을 확보한다면 불교출판의 미래는 밝다.
마지막으로 불교문화 부분이다. 불교문화의 출발은 문학부분이다. 60~70년대 승려 시인들이 일간지 신춘문예에 대거 등단 대내외적으로 필명을 떨쳤다. 승려 시인들의 활약은 불교문학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시 부분의 두드러짐에도 불구하고 김성동의 ‘만다라’를 제외하고는 소설 부분에서는 그 활동이 미미했다. 다른 분야보다 일찍 출발한 불교문학은 초창기를 주도했던 스님들이 대부분 2선으로 후퇴하고 고은, 김성동, 한승원 등 전통적인 주류와 정찬주, 성낙승, 민경현 등 2세대 불교 소설가들 손에 남겨졌다. 불교문학은 새로운 소재를 찾는 최인호, 송기원, 윤후명 등 일반 소설가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음악, 그림 등 불교문화가 일반에게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다. 법회용 찬불가로 시작한 음악 부분은 대부분의 사찰들이 전문 합창단을 둘 만큼 법회음악의 만개를 초래했다. 불교의식의 중심이었던 불교음악은 90년대 들어 김영동, 김도향 등의 명상음악으로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뮤지컬 등 현대음악과 접목을 시도하는 둥 폭 넓은 확장을 이뤄내고 있다. 영화, 연극, 그림, 만화부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선화를 중심으로 한 그림 부분은 대중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 그러나 수안스님, 원성스님 등 스님 화가들과 이왈종, 이철수 등 재가불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함께 불교의 전통적인 영역인 불화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대문화의 꽃이라고 불리는 영화, 연극, 만화, 부분에 있어서도 다른 부분과 상황은 비슷하다. 대규모 자본과 전문인력을 필요로 하는 이 영역들은 불교계 내에서는 거의 소화할 수가 없었다. 현재까지 대중에게 모습을 보인 대부분의 작품들은 일반 문화계에서 제작된 작품들로 불교를 올바로 담고 있었다기보다는 소재 주의에 국한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의 앞날은 밝다. 무궁무진한 소재와 시장의 잠재력은 이 부분들을 불교문화 포교와 맞물려 활성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