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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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박정미
2001년 09월 235호
어릴 적 방학이면 곧잘 외가에 갔다. 창호지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머리를 누르는 낮은 천장, 호롱불 켜 놓고 외사촌 언니랑 보릿짚 땋기 하던 작은 방, 우물가에 있던 앵두나무, 아침이면 꿀꿀거리면서 잠을 깨우던 돼지, 빗방울이 흘러내리던 처마, 그 아래 평상에 앉아서 콩 볶아 줄 테니 비 그만 오라고 노래 부르던 곳.
할머니는 동네 잔치에 다녀 오실 때면 하얀 가제 수건에 음식을 싸서 저고리 소매 속에 넣어 오셨다. 음식의 물기와 할머니의 땀 때문에 수건은 눅눅해져 있었다. 할머니의 땀내가 배인 음식은 잔칫집에서 먹는 것만큼 맛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혼자서 집 지키고 있었을 외손녀를 위해서 음식을 싸 오셨다. 그 때의 내가 그 눅눅해진 음식을 맛있게 먹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은 없지만 나는 할머니께 맛난 음식을 한번도 대접해 드리지 못했다. 돈을 벌어야만 할머니께 맛난 음식을 사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돈을 벌기 전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셨을 때도 할머니께 정성들인 밥상 한번 차려 드리지 못했다. 뜨거운 밥에, 시원한 국에, 할머니 드시기 좋게 김치라도 맛깔스럽게 썰어서 밥상을 차려 드렸더라면 이리도 서운하지는 않을 터인데.
누가 맛난 거 사 주면 좋아했다. 껍질을 벗기면 향긋한 속살이 드러나던 바나나를 먹게 해 준 친구, 눈물나게 혀 끝이 아리던 생선초밥, 선배 언니의 남자친구가 사 준 티본 스테이크, 그리고 지난 봄에는 우리 동료의 신랑이 사 주었던 퐁듀. 지금보다 좀더 나이가 적었을 때는 처음 먹어보는 것, 내가 돈 내고는 사 먹을 수 없을 만큼 비쌌던 음식들을 먹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달라졌다. 비싸고 맛난 음식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감동을 주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차려 주는 밥상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배가 고플 때면 ‘그 식당에 그 음식’을 떠올리기보다는, 나를 위해 누군가가 차려 주었던 그 밥상이 더 그리워진다.
공부만 하느라고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는 가난한 선비에게 친구가 놀러왔다. 선비의 아내는 손님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칼을 자른다. 그 밥상을 대접받은 선비의 친구가 어찌 그 밥을 한끼의 배고픔을 해결한 것으로만 기억하겠는가. 자신의 귀한 것으로써 상대를 귀하게 대접하는 마음이 내게 밥상을 차려 준 친구들의 마음이 아닐까.
할머니께는 한번도 차려 드리지 못한 밥상을 나는 친구들에게서 여러 번 받았다. 대학교 시절 여름방학, 여러 과에서 모인 친구들과 처음 만나 9박 10일의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함께 여러 밤을 보낸 우리들은 그 후에도 여러 번 어울렸다. 그 해 겨울, 한 친구의 생일이었다. 그 친구는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고 친구 어머니는 안방에다가 큰상을 차려주셨다. 장성한 아들의 생일에 온 친구들에게 어머니는 정종까지 따끈하게 데워 주셨다. 푸짐한 상차림과 속까지 데워 주는 정종을 대접받은 우리들은 어머니께 감사했다.
초등학교 때의 친구가 신혼 살림을 차리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에게 갔다.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잤는데, 다음날 아침 친구는 부엌에 있었다. 톡탁톡탁 칼질을 하고 프라이팬에서 생선을 지져내고 내가 좋아하는 감자볶음을 만들어 아침상을 차려 주었다. 그 친구랑 여러 번 같이 밥을 먹었지만 그 한번을 제외하고는 식당에서 먹었거나, 배달을 해서 먹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밥상 때문에 친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나를 위해서 간을 보고 냉장고를 여닫고 행주를 들고 상을 닦았을 그 친구는, 나를 대접해 준 것이었다.
몇 년 전에 뉴욕에 있는 선배 언니에게 간 적이 있다. 언니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맛깔스럽게 음식을 잘 해 냈다. 낯설고 물선 남의 땅에 있으면서도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언니의 음식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이 이용하는 수퍼에 가서 언니는 콩국을 사왔다. 더 고소한 국물을 내기 위해서 다시 체에 걸러 낸 콩국에 잘 삶아낸 국수를 말아 주었다. 그리고는 미리 삶아서 냉장고에 준비해 둔 고기를 한두 조각 썰어서 얹었다. 그렇게 한 상을 차려 주고 언니는 일을 나간다. 나 혼자 먹는 상이지만, 고소한 콩국, 쫄깃쫄깃한 고기, 그리고 작은 상이지만 언니가 신경 써서 골라준 그릇에 나무젓가락으로 먹는 그 맛은 일품이었다.
한번은 중국인 거리에 가서 큰 가재를 두 마리 사기도 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가재는 태평양산이지만 이것은 대서양산이라고. 맛에 일가견이 있는 언니는 대서양산이 훨씬 살이 부드럽고 맛나다면서 펄펄 끓는 물에 가재를 삶아냈다. 한번 삶아낸 가재는 빛깔이 붉게 변했다. 흰 빛깔의 접시에 가재를 내 오고 언니는 소스를 만들었다. 난 옆에서 상 닦고 그릇 나르고 수저 놓는 것 밖에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맛나게 먹었다. 언니는 엄마처럼 밥상 옆에 앉아서 가재살을 발라 주었다. 내가 밥숟갈을 뜨는 속도보다 언니가 살을 발라 주는 속도가 더 빨랐다. 처음 맛보는 가재요리였다.
언니네는 큰 상이 없었다. 두 명이 겸상을 하면 서로 무릎이 닿을 만큼 작은 상이었고, 그날 가재요리에도 특별한 찬은 없었다. 밥 한 그릇, 가재가 놓인 접시, 소스 그릇, 하지만 그 밥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순간 나는 행복하고 뿌듯했다. 언니가 차려 주던 밥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 맛이 그립고 배가 고파온다.
내가 언니의 밥상을 받고 돌아온 그해 겨울, 친구 둘이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특히 입이 짧은 친구가 타지에 가서 입에 맞지 않을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 입맛을 그리워할 것을 염려하여 친구들에게 밥을 대접하기로 했다. 서툰 솜씨로 그전에 한번도 실습한 적이 없던, 국을 끓였다. 무슨 국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간을 보면서 만족했던 것은 기억난다. 국을 끓이고 그 전날 미리 사서 소금기를 빼 두었던 꼬막으로 조림도 만들고 김치도 먹기 좋게 썰어 놓았다. 그리고는 후식까지도 만들었다. 밀가루 반죽에 아몬드 조각을 넣어서 오븐에 구워내는 과자까지 한 상을 차렸다. 뿌듯했다. 이 밥 먹고 나면 여행에서도 무사히 돌아올 것 같은 친구들을 보면서 스스로 우쭐했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 으레 점심 시간도 되기 전부터 배가 고파온다. 그러면 뭘 먹을까 궁리를 하고 어제와는 다른 것을 먹으려고 애를 쓴다. 색다른 게 없을까 궁리하지만, 여전히 어제와 같은 것, 그제와 같은 밥을 사 먹게 된다. 그럴 때면 우리 할머니가 싸 오셨던 눅눅해진 잔치 음식, 동아리 선배도 반했다는 칼솜씨를 뽐내면서 친구가 만들어 준 음식들, 언니가 발라 주던 가재살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그걸 먹던 기분을 내면서 먹어 본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배는 더 일찍 꺼지고 저녁때가 되기도 전에 배가 고파온다.
이렇게 더위가 계속되는 여름날, 언니가 해 주었던 고소하고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입안에 군침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