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를 빚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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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문윤정
2001년 09월 235호
나는 만두 빚기를 좋아한다. 만두의 맛을 즐긴다기보다는 만두를 빚어내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초겨울부터 시작해 늦은 봄까지는 김치가 주재료인 김치만두를 만든다. 그러다 녹음이 짙은 여름이 되면 담백한 맛을 내는 편수와 규아상을 만들어 먹는다. 표고버섯과 두부, 숙주에다 주재료인 애호박을 넣어 네모지게 빚은 만두를 편수, 같은 재료에 애호박 대신 오이를 넣고 해삼모양으로 주름을 잡아 만든 것은 규아상 혹은 미만두라고 부른다. 사시사철로 만들어 먹는 것은 부추만두이다.
만두의 맛내기는 소를 만들 때 재료들의 물기를 꼭 짜는 것이며, 속이 보일 정도로 만두피가 얇아야 맛이 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듯이, 만두는 그야말로 모양새도 예뻐야 눈맛까지 더해서 입안에서 감칠맛을 낸다.
나는 친구로부터 만두 빚는 것을 배웠다. 십 수년 전, 이른봄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세간이 채 정리가 되지 않아 집은 어수선하기만 한데, 서울에서 생활한 것으로 따지자면 선배가 되는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서울생활의 길잡이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집에 겨울 신김치 있어? 너 서울에서 살려면 만두 빚는 것 배워야 한다.” 서울 생활과 만두 빚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친구와 함께 만두를 빚었다. 우리는 입시 공부로 바쁜 와중에도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생일이나 방학이 시작될 때면 조촐한 파티를 위해 서툰 솜씨지만 케이크도 만들곤 했었다. 우리는 벌써 추억이 되어 버린 옛일들을 이야기했다. 반월성과 미추왕릉을 우리의 놀이터로 삼아 놀던 이야기, 신라 문화제文化祭가 열리면 가을의 뜨거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행렬假裝行列을 따라다니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큼지막한 뜨거운 만두를 후후 식혀가면서 먹는 그 맛은 우리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 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공간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집들, 그리고 창문을 열면 하늘은 보이지 않고 피폐한 공기에 남루해진 앞집의 벽이 보였다. 그 벽은 내 마음에 또 다른 벽을 만들었다. 내가 선택한 삶이었건만 ‘나는 왜 여기에 있어야만 하는가?’로 시작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꽃망울이 툭툭 터지는 햇빛 찬란한 봄날에 나는 지독한 신맛을 풍기는 김장김치로 만두를 빚었다. 빚다 보면 마음은 어느 결에 고향 땅에 머물고 있었다. 사월이 되면 회양목의 달콤하고도 감미로운 꽃향기가 진동하는 우리 집이 그리웠다. 반월성의 높은 언덕에 아름드리 굵은 벚나무가 피워 낸 꽃들을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유백색의 별들이 나에게로 쏟아지듯 황홀감을 자아냈다. 황룡사지의 드넓고도 텅 빈 대지와 마주했을 때, 세월의 무게를 침묵으로 견디는 그 적막감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더 고적하게 가라앉은 느낌을 주는 풍광들, 박물관의 네모진 창을 통해 본 가을 풍경이 보고 싶었다. 내 발길 닿았던 곳이 그리워질 때면 훌쩍 떠날 수는 없고, 그냥 좁은 방안에서 만두를 빚었다. 보고 싶은 마음, 그리움의 향기들과 정경들까지도 만두 한 개씩마다 속을 꼭꼭 다져 그 안에 넣어 버렸다.
뭔가 들뜨고 빠르게 달려가는 서울의 낯선 곳에서 세월의 한켠으로 밀려난 듯 정체된 자신이 한심스러워, 과거의 기억 속으로만 퇴행하려는 그 마음이 만두를 빚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만두는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가 되었고, 지인知人들이 어디 멀리 떠난다고 하면 한끼 대접하는 음식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만두를 가르쳐 준 친구가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도 우리는 만두를 만들어 먹는 것으로 섭섭함을 달랬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국 땅으로 공부를 하러 가는 친구를 위해, 또 이민을 간다는 친지들을 위해 빚는 만두는 더욱 야무지게 끝을 아물린다. 만두를 정월에 먹는 것은 일 년의 복을 껍질에 싸서 먹으려는 의미가 있듯이, 한 번 결정한 일이라면 끝까지 잘해 내라는 무언의 응원은 만두 속으로 배어든다. 나는 만두 속을 꼭꼭 다져 볼록하게 만들고 그들의 희망이 달아나지 않도록 단단하게 감친다. 나의 지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 땅을 떠나갈 때 나는 만두를 빚었다. 어찌 만두로 아쉬운 이별의 정을 다 나눌 수 있을까마는, 나의 마음을 그렇게 전하는 것이다.
혼자서 만두를 빚을 때면 기억을 반추하거나 내 안에서 속살거리는 소리를 듣는 침잠의 시간이다. 하지만 어느덧 성장한 아이들이 동참을 하게 되면 작은 잔치라도 치르는 듯 흥겨운 시간이 된다. 둥근 피皮를 반달모양으로 아물리고서 주름을 잡아 두 번을 접으면 여러 겹의 꽃잎을 가진 장미꽃처럼 된다. 딸아이는 이것을 장미만두라고 부른다. 네모모양의 피皮에다 속을 넣고 양쪽 자락의 맞닿는 부분을 붙인 만두는 가방만두가 되고, 두 장의 세모꼴 피를 맞붙여 만든 만두는 별에 사는 ‘어린 왕자만두’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갖가지 이름을 붙여가며 신나게 만들다가도 싫증이 나면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내 장난을 치기 일쑤다. 하얀 밀가루를 얼굴이며 옷에 잔뜩 묻힌 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깔깔거리는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공작 시간이요, 유희의 시간이다.
차반에 줄 맞추어 가지런히 배열된 만두를 보면 내 마음속의 어지러운 생각들도 열 맞추듯, 정결해진다. 한 번 만들 때 넉넉하게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 얼려둔다. 냉동실에 가득 찬 만두를 보면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좋은 먹거리인 김치와 두부를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모양을 달리해서라도 많이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도 흐뭇해진다.
음식은 오감五感으로 먹는다고 하지만, 음식에 있어서 ‘멋’은 곧 ‘맛’이 아닐까 싶다. 음식의 맛을 내려면 첫째는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흠뻑 들어가야 한다. 나는 만두 한 개 한 개마다 손끝이 닿아야 하고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그 행위가 맘에 든다.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반항이라도 하듯 볼품없이 터져 버린다. 속을 드러내고 가로로 길게 누운 그 모양새를 볼 때면, 어쩐지 내 안의 감추어진 욕망들이 팽창해서 분출해 버린 듯하다. 터진 만두야 먹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내 안의 깊은 계단을 하나씩 타고 올라오는 그 욕망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나의 만두 빚는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은밀하게 숨어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투명한 시간이 될 것이다. 만두 속에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지인들에 대한 기억과 아이들의 풋풋하고 초록빛으로 가득한 희망도 넣고 싶다. 그리고 시골길에서 마주친 들꽃들의 향기도 가두어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