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길이 생겨나고 넓어진다.
강원도 양양읍 선림원지 가는 길 또한 ‘논화-양양도로확장공사’ 로 산허리를 자르는 중이다. 초록이 걷어지고 흙은 황토가 드러난 산자락엔 비닐로 뿌리를 친친 동여맨 소나무들이 어디론가 옮겨지기를 기다리며 비스듬히 쓰러져 있다. 말그대로, 소나무들은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그 소나무를 걷어내고 산을 파헤쳐 넓히는 길은 그러나 사람이 걸어다니는 길이 아니라 자동차가 달려나갈 길이다. 길어깨에 흰 페인트로 사람하나가 겨우 다닐 만큼 인색하게 표시를 해 놓았지만, 구불구불한 산길을 획획 달려나가는 자동차의 위협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걸을 만한 폭은 못 된다.
강원도 양양읍 서면 황이리. 골짜기를 가로지른 자그마한 다리 어귀에서부터 사람이 걷기에 맞춤한 길이 나온다. 미천골 휴양림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다. 휴양림이 있는 곳은 하늘 아래 끝동네로 일컬어지던 오지다. 지금은 찻길이 니는 바람에 끝동네라는 말이 무색해졌지만, 간간이 차가 드나들 뿐, 골짜기를 끼고 난길은 저물녘이라선지 한적하다. 저물녘이라서 한결 누그러진 햇살이 대지에 나직하게 깔리고 골짜기의 물은 소란하지 않게 훌러내린다. 적송 붉은 줄기가 우뚝하고 산딸기는 길가 풀옆에서 저 홀로 붉게 영근다. 골짜기의 바위에 뿌리내린 어린 소니무도 제법 풍상 겪은 것처럼 늠연해 보이는 곳.
큰길에서 2 .1 킬로미터, 해를 등지고 걷다보면 완만하게 굽은길 모퉁이에서 무지개처럼 길 쪽으로 뻗어내린 돌축대가 드러난다. 선림원터다. 축대를 빙 돌아서면 돌계단이 니용다. 계단위는 풀기운 성성한 잡풀이 우북한 빈터다.
희다 못해 푸른 기운이 도는 개망초가 지천이고 달뜨면 달빛 안고 활짝 피어날 달맞이꽃이 아직은 단정하게 꽃술을 오므리고 있다. 질경이며 꿀풀, 칡넝쿨이 빈터에 다복다복하다. 저희 나름의 질서로 한철을 살아가는 그 풀!
사이사이, 천 년 넘게 한모습을 지탱해 온 돌들이 무심히 서 있다. 삼층석탑이며 석등, 부도와 탑비의 귀부 및 이수다. 선림원지에 남은 유물은 대부분 9세기에 조성된 것이다. 사림사沙林寺라고도 일컬어지던 이 절의 내력은 1948년, 절터에서 출토된 범종의 명문을 통해 밝혀졌다. 절터에 집을 지으려던 이가 부엌을 만들때 출토된 이 범종은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과 더불어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범종인데, 거기 새겨진 명문에 애장왕 5년(804)에 순응법사 등이 창건했다고 밝혀놓았다.
순응법사는 802년에 가야산 해인사를 창건한 스님이니, 선림원이 원래 화엄종의 사찰이었던 걸 추정할수 있게 한다. 뒷날 홍각선사가 이 절로 옮겨와 절을 중창하고 선종사찰로서의 면모를 다졌으니, 절터에 남은 유물 가운데 탑비며 부도, 석등 등의 유물은 홍각선사에 관련된 것들이다.
절터 입구에 선 삼층석탑(보물제444호)은 기단의 면석에 팔부중상을 양각해 놓았다. 옥개석 귀퉁이가 깨어졌으나 단아한 신라석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석탑에서 산자락쪽으로 몇 발짝 다가들면 네모진 주춧돌로 금당터가 여실히 드러난다. 정면 세 칸 측면 네 칸의 아담한 규모이다. 금당터 뒤면에는 낮은 석축을 둘렀다. 잡풀사이로 사람들의 발길이 낸 좁다란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면 홍각선사의 사리를 안치했던 걸로 보이는 부도(보물제447호)가 놓여 있다. 파손된 채 뒷산에 있던 것을 수습하면서 절터로 옮겨 모셨다. 기단부만 남아 있는데 구름속에 용틀임하는 용의 사실적인 조각이 살아 꿈틀대고 팔각인 하대석의 안상에 하나 걸러마다 양각된 한쌍의 사자가 정답다. 그 앞에는 구름무늬며 꽃무늬가 정교한 석등(보물 제445호)이, 거기서 더 들어가면 조사당터 옆에 홍각선사 탑비의 귀부(보물 제446호)가 있다. 이수의 중앙에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홍각선사비명’ 이라는 글씨가 채 닳지 않고 남아있다. 네모에 가까운 거북의 등에는 귀갑무늬가 선명하고 웅크린 발톱이며 돼지꼬리처럼 해학적으로 올려붙인 꼬리가 천 년 뒤에도 웃음을 자아낸다. 원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비이니, 몇 년 전인가 무심코 뺄셈을 하다보니 꼭 1,111년 전에 만들어졌다. 귀부가 완성된 날과 그걸 바라보는 오늘 사이로 세월의 장대비가 죽죽 내리긋는 듯한 수치다.
선림원지의 유물들이 천 년 전의 정성 어린 마음이며 손길을 제법 잘 보존된 상태로 전할수 있는 건 이 유물들이 그 세월 동안 흙속에 파묻혀 있어서이다. 10세기 전반기의 산사태로 절은 고스란히 흙더미로 뒤덮였고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발굴되었으니 이 절은 백 년 남짓 지상에 머무르고 그 열 배쯤되는 시간을 어둠속에 묻혀 있던 셈이다. 그토록 오래 사라졌던 절의 유래를 짐작할수 있게한 범종은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출토된 지 일 년 만에 월정사로 옮겨졌으나 거기서 제 자취를 잃고 만다. 좀 더 잘보존하기 위해 옮겨 모신 월정사가 한국전쟁중에 불타버리는 바람에, 범종은 녹아내리다 만 조각만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남게 된다. 천 년도 넘게 어둠속에 묻혀 있던 범종이 왜 하필 이 땅이 피와 불로 뒤덮이기 이태 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게다가 하필 곧 불에 타버릴 월정사로 옮겨져 한갓 환영처럼 그리 빨리 제 모습을 지워 버려야했는지. 몇 년만 더 묻혀 있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한때 이 골짜기를 울렸을 범종의 이력을 되짚다 보면, 다시금 그리 될 수밖에 없는 무엇-인연-이라는 게 산을 덮어오는 이내처럼 어슴푸레 다가온다.
지상에 태어난 인연의 끝자락을 붙들고 어디서 온 것인지, 가없는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려 참구하던 선림원. “동쪽대 만월산에는 일만관음보살의 진신이 나타나 있고, 남쪽대 기린산에는 팔대보살을 우두머리로 한 일만의 지장보살이 나타나 있고, 서쪽대 장령산에는 무량수 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일만의 대세지보살이 나타나 있고, 북쪽 대 상왕산에는 석가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오백의 대아라한이 나타나 있고, 중앙의 대 풍로산에는 비로자나불을 우두머리로 한 일만의 문수보살이 나티나 있는 오대산. 그 산자락이 흘러내린 골짜기에 자리잡은 선림원 절터는 그리 너르지 않다.
산사태로 묻혔던 터답게 석축을 쌓은 뒤편은 밭게 산자락이 시작되고, 물 흐르는 골짜기 건너편에도 바로 앞산이 막아선다. 눈돌리려 동면으로 고개 돌리면, 앞산자락과 뒷산자락은 잘여민 옷섶처럼 아물려 있다. 그나마 조금 열린 곳은 서쪽이다. 서쪽은 산차락이 저만큼 멀찌감치 물러나 있어서 그너머 산자락까지 보여준다. 밤낮없이 화두를 들다보면 그 막막함에 내달리고 싶은 때가 어찌 없었으랴.
봇둑에 튼 물꼬처럼 열린 서쪽, 서방정토가 있다는 그곳으러 치닫던 마음은 그러나 겨우 산차락 두 개만큼만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거기, 산자락과 산차락이 이어지는 이음매를 턱하니 막아선 산에 그만 갇혀 버린다. 마음이, 외방으로 흐르려 하면 마음에 도리없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절터를 둘러싼 산자락은 정토를 밖에서 찾지 말고 제 안에서 찾으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걸핏하면 밖에 팔리는 마음을 이렇게 단속하게 만드는 곳이라서 이 곳을 참선도량으로 삼았을까. 흐를 곳 막힌 마음이 하늘을 올려다 본다. 능선들이 막아선 하늘은 타원형이다. 중심에서 멀어진 부분을 갈고 닦아 팽팽한 장력으로 둥글어지려는 수행자의 마음을 닮은 하늘. 원형을 지향하되 원형에 채 이르지 못한 타원형 하늘로 구름이 휘휘 지나간다. 그렇게 밖으로 향하려다 안으로 되돌아오고 안을 들여다보다 지칠 즈음, 그래도 막다른 곳만은 아니라고 물소리가 들려온다. 가장 낮게 흐르는 물처럼 마음을 낮추면 물 흐르는 소리에 실려 흘러갈수 있다고 그물이 흐르는 골짜기도 큰절 앞 개울에면 늘 그러하듯 쌀뜨물이 오십리를 흘러갔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미천米川골이라는 이름이 붙게 한 골짜기다. 쌀이 그만큼 귀하게 여겨지던 시절에는 쌀이 절살림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을 것이다.
쌀이 홀대받는 이즈막, 절살림 규모를 후세 사람들은 무얼로 전할 것인가. 골짜기의 맑은 물 은 하늘빛을 담으며 무심히 흐를 뿐. 골짜기 너머, 산자락 밭이며 거기 들어선 외딴집이 보인다. 그집 주변에 늘어선 토종벌통은, 절터에서 보아선지 언뜻 부도탑처럼 보인다. 그 곳으로 건너가려면 골짜기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바위들을 늘어놓아 만든 다리 사이로 물이 흐른다. 어떤 정검돌은 돌이 크고 돌과 돌사이가 좁아셔 마음 놓고 건너지만 이따금 돌과 돌사이가 성기고 그 사이를 흐르는 물살이 거세어 겁 먹고 머뭇거리게 만들던 어린 날의 징검다리들. 살아가는 일이 징검돌 하나하나 건너는 것과 다를바 없음을 은연중에 깨우쳐 주던 그 징검다리를 건너면, 개울가 소나무 앞에 ‘주의하세요. 개(견공) 주의. 뛰지 마세요. 주인 올림’ 이라고 쓰인 겸손한 표지판이 보인다. 맹견이 아니고 견공이라고 쓰는 마음이 궁금해서 밭사이로 난 좁다란 길을 오르니, 짖는 기세로 보아 맹견으로 여겨지는 개들어 우르르 달려나온다.
하나 둘 셋… 다섯 마리다. 두마리는 희고 세 마리는 누렇다. 토종벌을 치고 약초를 재배하며 사는 노부부가 키우는 개이다. 흰 개는 둘다 백구, 누렁이는 모두 도꾸 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막내 도꾸를 빼놓고는 덩치가 그만그만 하지만 이들은 무려 5대를 이룬다. 해마다 새끼를 한두마리만 낳는 어미 백구가 이룬 식구들이다.
그래서인가.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가장 먼저 놓아버리고 흙바른 벽에 기대며 느긋이 눈감아 버리는 견공은 세상을 살만큼 살아낸 어미 백구고, 울음 끝질긴 아이처럼 짖다말다 하면서 가장 늦게까지 소란을 피워대는 녀석은 올 봄 새로 태어난 막내 도꾸다. 제법 낯을 익힌 다음에도 생각난듯 간간이 짖어보는 막내 도꾸가 제 마음을 어미 백구만큼 너르게 둥글리려면 또 그만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막내 도꾸와 어미 백구. 그 사이 징검돌처럼 태어난 다른 개들. 한어미에게서 몸받은 그 개들의 각기 다른 개성을 보면서, 천성이며 그 천성을 받게 한 인연을 떠올리다가 문득 공안 하나가 궁금해진다. 무無라니. 조주스님은 왜 개에겐 불성이 없다고 하신 걸까. 막내 도꾸를 바라보는 어미의 눈빛은 무심한 듯 하면서도 저렇게 깊은데.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