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백담사를 멀리하고 한계령을 넘어 동해로 가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한계령을 넘자 갑자기 구름과 바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간혹 비를 뿌리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바로 그 시각에 산 너머 그 곳에서는 그 분의 49재가 열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은 나 말고는 모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앞을 바라보아야 하는 나에게는 비 구름 바람으로 다가오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마睡魔로 그 분의 영혼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국 몇 굽이를 돌지 못하고 차를 길 옆에 세우고 모두 내렸습니다. 그 순간 앞을 가리던 구름은 고갯마루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앞을 가리던 구름과 몰아치던 바람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누구 하나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햇빛이 나는 바람에 차에 묻었던 물기마저 말끔하게 말라 버려 내 말은 그야말로 설득력을 잃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굽이치는 길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 잠결에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는 어느 시인의 잠꼬대 같은 소리만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산비탈에서 어떤 이름 모를 나무에 핀 하얀 꽃이 언뜻언뜻 눈에 띄었습니다. 모두들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산에서 오래 지낸 어느 시인이 이것이 바로 산목련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뭇잎과 꽃잎 모두 물기를 방울처럼 달고 있었습니다. 꽃잎이 조금 벌어진 꽃은 땅을 향해 있었고, 아직 덜 핀 꽃봉리들은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가서서 꽃봉오리를 만지는 순간, 손끝에서부터 감전되듯 온몸이 파르르 떨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얗게 막 부풀어 오르고 있는 꽃봉오리가 왜 그리 단단한지, 부끄럽게도 사춘기 때 누나 몰래 밤중에 만져 보았던 그 젖몽우리가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마구 떨려 정신이 아득한 마당에 누군가가 히죽거리며, ‘가만히 보니 저것들이 혼자서 피어 있네’ 라고 내뱉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재치와 장난기가 함께 섞인 그 말에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 끝에 이게 웬일입니까. ‘바로 저 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갔습니다. 아, 그 시인님의 영혼이 오늘 저 젖몽우리 같은 산목련꽃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시인 김소월은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산유화>라는 시에서,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저만치’를 인간과 청산과의 거리, 혹은 비순수와 순수와의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물론 탁월한 해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거리가 어디에 존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과 구체적인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한 시인의 죽음에서 우리 스스로 갈등하고 고뇌하는 것이나, 산목련꽃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다’ 라고 하는 말에서 우리는 바로 스스로 마음의 한 끝에서부터 다른 끝까지 여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에 피는 꽃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듯이,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인간들도 저만치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잡다한 인간사에 얽혀 이리 어울리고 저리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산목련꽃이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단단한 마음을 붙들고 아무도 모르는 산골짜기에서 스스로 꽃피우며 살아가듯이,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산목련 하나 키우며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산목련 하나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