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데레바다 불교의 성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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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여연
1987년 05월 63호
인도의 저 위대한 전륜성왕의 후예인 아쇼카왕과 비련의 전설을 남긴 데바의 여인, 산티마을의 대탑(스투파)을 아쇼카로 하여금 세우게 한 그의 아들인 마인다(Mainda) 왕자가 이 남국의 섬 스리랑카에 건너와 불교를 전했다. 오랜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불교는 그 전통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싱할리족의 위대한 민족 종교로서 찬연하게 뿌리내려 오고 있다. 일년사시 사철 눈부시게 불타는 녹색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는 보석의 눈물이라는 어원에 맞게 꿈꾸는 듯한 꽃향기와 아름다운 자연은 풍요로 가득차 있다. 사파이어, 루비, 에머럴드, 그 풍요의 광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위대한 붓다의 진리가 그 민족의 구석구석에 민중의 가슴 속에 꽃향으로 넘치고 있어서 더욱 성스러운 것이다.
인도의 남단, 뱅갈만의 그윽한 곳에 포근히 안긴 섬, 맑은 이 나라는 평균 기온이 섭씨 26도로 뜨거운 인도보다도 대체로 기후가 쾌적하다. 적도이면서도 해양성의 기후로 비교적 선선한 편이며 건기와 우기의 구분이 뚜렷하여 민중의 삶에 많은 시련과 고난을 주는데, 이러한 기후와 더불어 독특한 풍토가 역사를 주체적으로 이어 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나라의 인구는 토착 민족인 싱할리족이 약 8백만, 남인도 타밀라두에서 남하 이주한 인디언인 타밀족이 3백만, 그리고 아랍계 무아족이 90만으로 각각 이루어져, 저마다 다른 언어와 풍속을 갖고 있으며 종교도 제각기 달라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들이 함께 하고 있으나 그 중불교가 이 나라 전체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필자가 이 나라에 머물렀던 83년에는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 패권 싸움이 영국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산물로 이주한 타밀족과 불교의 신앙생활로 살아온 싱할리족과의 종교 국지 전쟁으로 나타나, 신성한 이땅이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 분쟁의 2,3일 사이에는 약 2천여명의 귀한 목숨이 미-소 양국의 이데올로기 싸움의 희생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전쟁의 원인은 트링코말리라는 해변의 요새였다. 이 해변은 아주 특이한 지형으로서 레이다망에도 잡히지 않는 군사적 요충지인데,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그 지역애 사는 타밀족에게 소수민족독립을 정부에 요구하며 전쟁을 일으키면 무기를 공급해 주고 그뒤에 그 지역을 자치토록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트링코말리 요새의 사용을 약속받았다. 한편 미국은 미국대로 해변의 요새를 군사 기지로 장악하기 위해 현정부에게 무기를 공급함으로써 이 땅에 사는 민족들이 미-소양국을 대신한 대리전쟁을 치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나라는 1505년에 포르투칼의 해양진출로 일부가 정복당하기 시작하여 약450년간 유럽인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1505년에서 l657년까지 이곳을 지배한 포르투칼은 오랜 전통에 빛나는 불교의 진리에 따라 수행 생활을 해 온 불교도들의 신성한 자부심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으니 그들을 이교도로 몰아 박해를 가했다. 그들 식민지 제국에 의해 기독교가 들어오고 그들의 침투는 남부와 중부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고도(古都) 왕궁인 캔디시(이곳은 현재 부처님의 치아가 모셔져 있다)에서 콜롬보로 수도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도들의 박해로 말미암아 마인다에 의해 전래되어 오랜 세월 동안 끊어지지 않고 전수되어 온 위대한 붇다의 사상과 정통 계맥은 잠시 끊어지고 말았다. 그 뒤에 버마로 계맥은 이어져 불교가 부활되었지만, 이 땅이 1658년에 다시 프로테스탄트 교도인 네덜란드에게 침략을 당하게 되어 그들 침략자의 선교활동으로 열악해진 스리랑카의 불교는 갖가지 박해로 인해 더욱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끈질기게 불교 신앙의 부흥을 염원한 수도승들의 노력으로 태국과 버마에서 다시 고승들을 맞이하여 교단을 부흥시킴으로써 데레바다불교(근본 불교)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이 민족의 역사는 너무도 큰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끝나자 이어 1796년에서 1948년까지 영국 식민지 시대가 그 나라의 강토를 휩쓸었다.
대영제국의 통치 속에서 불교는 그들의 문화 정책 덕분에 어느 정도 제약은 받았으나 학문적인 발전은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의 문화 우월주의가 작은 부분의 감성적인 신앙 생활을 허용해 준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정치적으로는 식민지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스리랑카의 위대한 불교 정신을 그들 기독교 사상에 종속화시키자 하는 속셈이었다.
그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스리랑카의 민중은 점차로 유럽 문명의 물질적 풍요에 탐닉되면서 식민지 정책에 동화되어 가는데, 일부 지식인들은 고난 받는 자기 땅의 역사를 인식하고 상실된 자기 문화를 주체적으로 회복하려는 역사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 운동의 주체적인 힘을 그들의 전통 종교인 불교의 ‘아힘사’ 정신에 두고서, 종교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 또 그들 민중이 살아남기 위해 불교 문화의 위대함을 민중 속에 구축하려고 그들은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싱할리족의 정신 문화의 모태인 불교를 회복하고 중흥시키려는 노력은 민족 수호 정신에 입각한 호국 불교로 연결되어 민족 해방 운동으로서의 독립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근세사와 유사하게, 그들 자신의 주체적인 역량에 의한 해방이 아니라 연합군의 승리가 가져다 준 결과로서 해방을 맞게 되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과 식민지 문화의 풍토속에서도 불교만은 끈질기게 그 민족과 민중의 정신 문화의 토양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스리랑카의 불교는 민중의 정신적 자양분으로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교육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크다. 대승 쪽에서는 그런 이 나라의 데레바다 불교(근본 불교)를 원시불교라고 업신여기는 우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대승을 주창하는 한국 불교에 비해 그들의 불교야말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민중의 깊은 삶 속에 함께 동참하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있음에랴.
스리랑카에서는 불교 축제에 모든 민중이 함께 동참한다. 매달 보름날인 ‘만월일’에는 온국민이 함께 민족적인 축제를 연다. 스리랑카와 같은 근본 불교의 나라에서는, 우리와는 달리, 세존이 태어나신 날도 오월 보름, 성도하신 날도 정월 보름, 입멸하신 날도 보름으로, 모두가 달빛이 온 하늘과 숲에 가득하고 바닷물이 바다에 가득 찬, 그리하여 온 세상이 달빛과 향기와 빛과 공기로 그득 넘치는 날에 그들 민족의 축제를 벌이며, 그러한 축제를 통해서 민족 공동체의 집단 의식을 갖는다. 망고 꽃우거지고 야자수 그늘 아래 휘영청 드리워진 달빛 아래서 온통 열기에 들떠 폭죽을 터뜨린다. 이 우주가 다시 태어나기라도 하듯 불꽃 휘날리며 그들의 전통 민속춤을 추고 100마리가 넘는 코끼리에 부처님의 치아를 모시고 가장행렬을 하여 온 민족이 한바다 된다. 끝없이 넓은 녹색의 사원 풀밭에 싱할리족 고유의 의상인 백의를 걸치고 앉아 법회를 갖는다. 수천의 신도들이 붉은 연꽃과 수련을 받쳐들고 불단에 공양 올리는 그 장관은 하나의 우주의 드라마이다.
수많은 종류의 연등, 그들의 전통 문화의 장식 문양이 그려진 등불들을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자기 집 정원 나무가지에 또는 문설주, 응접실, 골목길에 걸어 두어 불을 밝히고 집안 식구와 친척들과 함께 축제를 벌인다. 우리나라처럼 아무런 정성도 없이 만든 등을 돈주고 사고파는 상품 행위 따위는 일체 없다. 돈을 많이 내면 큰 풍, 적게 내면 작은 등을 달아 주어 등불에까지도 물질적 측량을 두어 빈부의 격차를 조장하는 폐단을 일삼는 우리나라의 성탄일 축제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도 스리랑카처럼 스스로가 정성스럽게 등을 만들어 자기 마음의 불꽃을 드리우는, 그리하여 이웃과 함께 하는 축체로 만들어야할 것이다. 또 그들은 잘사는 집에서는 넓은 정원에 연극 무대나 가설극장을 꾸며서, 못 살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생애를 영화로 방영해 주고 전생 이야기(Jataka story) 등을 연극 무대에 올려 무엇이 잘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맑은 자유를 가질 수 있는지를 그들 스스로 자각하게 해주는 보시 공덕을 베푼다. 또 인형극을 통해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진리를 알기 쉽게 전해 주고 있다.
오월 보름 부처님 탄생일에는 가난한 자에게 이틀 동안 평등 공양의 보시가 베풀어지고, 건강한 사람들이 병들어 아픈 자들을 위해 헌혈하는 행렬이 강물처럼 이어지고 있다, 너도나도 헌혈하려고 줄서 있는 행렬, 남을 위해 자기의 육신을 베풀려는 천진한 모습 속에서 거룩한 인간의 사랑과 평화를 느낄 수가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평소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수요일에 육식을 금하는 날로 정해 모든 정육점, 수퍼마켈에서 고기를 팔지않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성탄일은 거창하고 대규모화되어 형식적인 축제로 치장되어 가고 있다. 부와 물질로 표시되는 등퉁불켜기 싸움, 자기 등을 확인하려는 소유욕이 넘치는 이기심. 자기 등불만을 먼저 켜고 오래 타라고 소원하는 그 속에서 어떻게 대승의 자비를 볼 수 있겠는가!
비록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이며 문화적인 사치도 누리지 못하지만, 민중과 함께하는 공동체 의식,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민족의 축제 날인 성탄일, 그 속에서 우리 불교인들은 많은 것들을 성찰하여야 할 것이다. 배운 자들, 가진 자들은 자기만의 행복, 자기 가족만의 행복을 위해서 큰 등을 밝힐 것이 아니라 좀더 가지지 못한 쪽, 그늘져 있는 어둠의 저쪽,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자비와 구원의 등불을 드리워야 할 것이다. 그 등불들이 온 누리에 가득 찰 때 우리 민족의 암담한 현실이 좀더 밝은 길로 트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찬연하고 아름다운 등불을 따 이 민족이 하나가 되는 가슴 벅찬 통일의 길로 해방의 길이 열렸으면…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