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그리고 1997년
1972년 시월 유신의 당위성이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선전 리플렛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 장소에 대량으로 갖다놓았다. 내가 전주로 이사온 바로 그해였다. 그렇게 질 좋은 종이로 맘 놓고 딱지를 접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딱지 안에 들어 있던 농촌의 모습을 기억해 보면 대강 이랬다. 푸르고 넓은 농장을 경계로 집들이 널찍이 자리하는 것부터가 그때 내가 살던 동네와 크게 달랐다. 정말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있었고, 거기다가 자동차와 트랙터, 경운기가 있었다. 얼마나 좋은 마을인가? 새마을! 그런 좋은 그림에다 우리는 좋은 이웃과 인심까지 있으니 앞으로는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가난하지도 않을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이버지가 당신도 떠나고 싶지 않던 고향을 굳이 자식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떠나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그 때에는 이런 의심과 의혹이 머리에 가득했지만 딱지치기에 이내 다시 빠져들어 그 고민과 혼란은 오래 가지 못했다.
l997년 자본은 정말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1997년 세계화를 주도하는 자본은 역시 1972년의 국가권력보다 세련된 방법과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최첨단 기술과 기법을 이용하여 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하고 뒤로는 병풍 같은 산이 둘러싸고 집은「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집을 짓고, 아이는 컴퓨터 통신을 통해 ‘쥬라기 공원’ 에서 놀고 있는 집을 광고하고 있다.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최첨단 기술과 지면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깊은 산속에 혼자사는 것 같은데 정보통신으로 거리를 극복하여 전혀 외롭지 않게 할머니의 걱정 속에서 밤늦게까지 쥬라기 공원에서 놀고 있는 것이 지본이 설계하는 l997년의 농촌의 모습인가 보다.
한국판 엔클로우저
아버지는 왜 새마을운동이 설교하는 바를 믿지 않고 정든 동네와 이웃과 동무들, 부모, 형제를 눈물 속에 둥지면서 떠났을까? 아버지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도시로 이사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농촌이 버림 받은 땅이라는 것일 따름이었다. 그것은 서구에서 근대 초에 시작된 엔클로우저. 농민들을 땅으로부터 몰아내는 것의 한국적 표현이었다. 곧 한국판 앤클로우저였다.
농민이 토지에서 대규모로 구축된 것은 우리 역사에서 두 번 있었다. 한번은 일본 제국주의가 시행한 토지조사 사업이었으며, 또 한번은 바로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중화학공업정책-이른바 국토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 그것은 농촌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형태로 추진되었다.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전제가 되는데 역사를 돌아보면 이는 농민에 대한 수탈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근대 초에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수탈이라는 폭력적이고 원시적인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l972년에는 농촌의 근대화, 선진화라는 개발정책의 미명 아래 세련된 형태로 진행되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1972년 우리 집을 필두로 히여, 그 동안 농사를 지어오던 뒷집 큰 형님, 흠실 아짐네 큰아들을 비롯해 동네 청년들이 하나둘씩 울산으로 부산으로 서울로 나갔다.
이렇게 새마을운동과 함께 내 고향은 완전히 분해되어 마을로서 기지고 있던 기능을 거의 잃어 버렸다. 농한기인 겨울에 마당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차양을 치고 결혼하는 사람도 더 이상없었으며, 혼례를 치른다 하더라도 식만 고향에서 할 뿐 다시 서울에나 광주, 부산 등지의 도시로 나가 버렸다. 결혼해서 눌러 사는 사람이 없으니 아이도 태어나지 않었고, 그러니 학교가는 아이도 없어 학교는 폐교의 위기에 몰려 있다. 그리고 이제 생명을 다한 노인네들의 북망산 가는 길을 배웅해 주는 장례식만이 간간이 있을 뿐이나, 그마저 이제 누가 꽃상여를 지고 저 뒷산까지 갈것인지가 걱정이다. 죽는길마저도 품앗이가 필요해야 하는지?
아버지가 쫓겨난 고향, 그러면…
우리 부모님들은 지본의 농민 구축이라는 엔클로우저에 쫓겨서 고향을 떠났다. 이렇게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과 농촌의 분해, 농업의 초토화 위에서 이룩된 산업화, 근대화 도시의 모습은 어떤가? 지역적으로는 도시와 농촌사이의, 산업적으로는 농업과 공업 사이의 불균형 발전 전략을 통해 성장한 자본은 여전히 세계화가 표방하는 국제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아직도 그 비용과 부담을 노동자와 고령화로 힘이 쇠진한 농촌에 전가하려고 한다.
그리고 도시는 이농에 의한 인구의 도시 집중및 인구의 과밀화에 따른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들은 주택, 환경, 교육 문제를 비롯하여 폭력 및 청소년의 사회 문제 등을 낳고 있으니, 여기에는 물론 다른 원인들도 작용하고 있지만 인구과밀이 그 원인의 한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시달려다 못해 도시살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농촌문제의 도시적 표현이고, 그 반대편인 농촌에도 이농에 따른 과소로 그와 똑 같은 범주의 농촌문제가 남아 있다.
지금의 체제는 불균형 발전을,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한쪽은 과밀로 인한 문제가 다른 한쪽은 과소로 인한 문제가 동일한 범주에서 다른 방식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동일한 원인을 갖는 두가지 문제는 불균형 발전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은 뜻밖에 간단하다. 도시와 농촌, 농업과 공업 사이의 균형적인 발전을 통해 지역과 산업으로써 농촌과 농업을 살릴 수 있다.
농촌과 농업이 다시 살아나야만 도시도 건전한 모습을 지켜 나갈 수 있다. 도시는 이제까지 한번도 스스로의 힘으로 지탱해 온 적이 없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뼈저린 성찰 위에서 도시인들이 농민과 농업, 농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함께 나설 때, 도시가 안고 있는 갖가지 심각한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물론 정부의 정책 담당자도 마찬가지이다. 우습기 짝이 없는 비교우위론을, 현실에서는 폐기된 지 오래인 경제학 교과서에만 남아 있는 비교 우위론을 금과옥조로 붙들고 있지말고,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현실 대신 교조를 붙들고 두 눈을 감아버린다면, 현실은 눈을 감고 그대들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口